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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요구하는 기업가의 등장, 최강 미국의 원천이 되다.

한근태 | 232호 (2017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미국의 힘의 원천을 들여다보면 결국 돈에 있다. 글로벌 금융의 중심은 뉴욕이고 그중에서도 뉴욕증권거래소가 최강의 파워를 자랑한다. 금융 다음은 기술이다. 미국이 강국이 된 것은 기술적인 혁명이 몇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발명가였던 사이러스 홀 매코믹이 이런 혁명을 이끈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처음으로 자동 수확기를 만들었고 이를 계기로 농업혁명이 일어났다. 미국이 강자가 된 것은 시대에 필요한 기업가들의 등장이었다. 이들은 기술을 새로 개발하거나 이미 나온 기술을 적극 활용해 기업으로 발전시켰다. 기업이 움직일 수 있도록 금융도 함께 발전했다.
 

누가 뭐래도 현재 최강의 국가는 미국이다. 군사력은 물론 경제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마디에 주가가 요동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미국은 언제부터 이렇게 강한 국가가 됐을까? 이렇게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가 이들로부터 배울 점은 무엇일까? 이번 호에 소개할 책 <달러 이야기>를 읽으면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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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힘

강하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돈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미국이 강한 건 돈이 많기 때문이다. 힘도 바로 돈에서 나온다. 전쟁은 어떤 면에서는 누가 돈을 많이 갖고 있느냐를 대결하는 장이다. 미국의 힘은 돈의 힘이다. 미국이 강한 이유는 금융이 강하기 때문이다. 미국 힘의 원천은 달러의 힘이다. 달러를 찍어낼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의 중심은 뉴욕이고 그중에서도 뉴욕증권거래소다. 증권거래소는 독립전쟁의 산물이다. 전쟁이 끝난 후 제퍼슨과 해밀턴은 재정정책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특히 전쟁채무 처리방법을 놓고 갈등을 빚었고 해밀턴은 남부가 요구하는 수도 이전 수용의 대가로 채무인수법안 통과를 매듭지었다.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수도를 이전하는 조건인데 철저한 정치타협의 산물이다. 당시 뉴욕시민의 상실감은 컸다. 워싱턴 대통령조차 뉴욕에 계속 머물기를 원했지만 국가 분열을 막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뉴욕이 모든 걸 잃은 건 아니다. 이때 발행한 8000만 달러의 채권이 월가 탄생의 기반이 됐기 때문이다. 1783년 전쟁이 끝나고 국공채와 은행주 중심으로 증권거래가 보급되면서 운하주, 보험주가 인기리에 거래됐다. 1790년 독립전쟁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 대규모 국채를 발행했는데 그게 본격적인 채권시대의 개막이다. 그러다 1794년 24명의 거래인과 상인들이 수수료와 거래방법을 결정하고 주식경매시장을 개설하기로 합의한다. 그것이 버튼우드협약이고 뉴욕증권거래소의 기원이다. 전쟁, 전쟁으로 인한 채무문제, 국채의 발행 등이 오늘날 뉴욕거래소를 만든 것이다. 전쟁이 없었다면 증권거래소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은 중앙은행의 탄생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은 실제는 민간이 소유하고 있다. 이 역시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보통 국채는 전쟁을 위해 발행하는데 이게 한계에 이르면 문제가 된다. 아무도 사질 않기 때문이다. 전쟁을 위해 돈이 필요했던 영국의 윌리엄 3세는 120만 파운드의 국채를 발행하고 싶었는데 살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그때 유대인들이 기발한 발상을 한다. 돈을 모아 빌려주는 대가로 은행권을 발권할 수 있는 민간은행 설립 허가를 요구한 것이다. 120만 파운드의 자본금을 모아 은행을 세우고 이 자본금을 모두 국왕에게 대부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출자액만큼 은행권으로 교부 받아 지불권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금괴를 맡기고 그만큼 돈을 찍는 것이니 밑질 게 없다. 이미 유대인은 발권력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왕은 120만 파운드를 연이자 8%로 빌리는 대신 이자만 지급하고 원금은 영구히 갚지 않아도 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꼴이다. 이렇게 해서 민간은행이 은행권에 대한 독점 발권력을 소유하고 중앙은행으로 전환한다. 이게 중앙은행의 시작이다.

1811년 중앙은행의 외국자본 비율은 1000만 주 가운데 700만 주로 70%를 차지했다. 영란은행의 대주주 네이선 로스차일드를 비롯한 유럽의 로스차일드 가문이 미국 은행의 대주주가 됐고 이때부터 유대 자본이 미국 자본을 주도하기 시작한다. 미영전쟁은 누구의 승리랄 것도 없이 끝났지만 미국은 백악관이 불타는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전쟁 중 불환지폐 남발로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경제공황이 시작되자 4대 대통령인 제임스 매디슨은 다시 중앙은행 설립을 승인한다.

그런데 7대 대통령인 앤드루 잭슨은 중앙은행 설립을 반대했다. 그는 서민들이 은행을 지배하고 통화공급 결정권을 갖는 민주적 화폐경제를 주장했는데 현실은 잭슨의 생각과는 반대로 엉망이 됐다. 중앙은행이 없어지자 주정부 면허 은행과 인가 없이 세워진 자유 은행들이 각자 은행권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중앙은행 폐지로 통화 조절 기능이 상실되고 통화량이 많아지자 실물경기는 호황처럼 보였지만 증권 시세가 오르고 서부에서는 땅 투기 열풍이 불었다. 게다가 위조지폐까지 출현했다. 화폐 발행 은행이 700개가 넘고 저마다 특색 있는 돈을 만들다 보니 일반인들은 어떤 달러가 진짜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아마 3분의 1은 위폐였을 것이란 추측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오늘날의 중앙은행이 만들어진다.

 

기술의 힘

금융 다음은 기술이다. 신기술 개발 능력이다. 기술력이 앞서야 강국이 된다. 미국이 강국이 된 것은 기술적인 혁명이 몇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발명가였던 사이러스 홀 매코믹이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처음으로 자동 수확기를 만들었고 이를 계기로 농업혁명이 일어난다. 만약 이게 없었다면 그 넓은 땅에 어떻게 농사를 짓겠는가? 매코믹은 미국 농업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머리 깎는 바리캉에서 힌트를 얻어 이 기계를 만들었는데 이로 인해 생산성이 무려 15배나 올랐다. 그는 돈 없는 농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처음으로 할부 판매 방식도 고안했다. 미리 농기계를 주고 수확철에 돈을 나누어 갚게끔 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목화와 씨를 분리하는 톱니형 조면기의 발명이다. 이를 발명한 사람은 예일대 출신의 엘리 휘트니다. 이전에는 면화씨를 일일이 손으로 발라내야 했고 이를 위해 많은 노예가 필요했는데 이 기계의 등장으로 생산성이 무려 1000배 이상 올랐다. 이후 미국은 세계 최대의 면화생산국으로 등극한다. 1830년에는 영국 원면 수요의 4분의 3을 미국이 공급하고 1971년까지 무려 150년간 원면의 최대 공급자 역할을 한다. 산업혁명으로 면화 수요가 커지면서 노예 수요가 증가했고 노예의 가치도 올라갔다. 1790년 300달러로 살 수 있던 흑인 노예가 1850년에는 2000달러를 주고도 사기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노예 숫자는 65만 명에서 320만 명으로 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흑인 노예를 쓰는 대농장의 증가로 남부와 북부의 이해관계가 달라졌다. 노예를 둘러싼 이해의 상충이다. 북부 공업지대는 공장을 돌리기 위해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는데 그러려면 남부 농장에 있는 흑인 노예들이 풀려나 자유로운 임금노동자가 돼야만 했다. 이게 97만 명의 사상자를 낸 남북전쟁의 시작이다.

미국은 산업혁명 등으로 1848∼1855년에 10년 이상 호황이 지속된다. 철도주식과 국공채의 수요증가로 자산이 증가한다. 그러다 1857년 세계 최초의 공황이 온다. 미국은 영국 자본을 불러들이기 위해 수입관세를 내리는 등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남북전쟁이 시작된다. 전쟁은 돈이 많이 든다. 남북전쟁도 그렇다. 링컨은 금 없이 화폐를 찍을 수 있도록 의회를 설득한다. 결국 담보 없이 20년간 연 이자 5%의 이자가 붙는 국채를 발행한다. 1861년에는 10달러를 최초로 찍었는데 그걸 ‘그린백’이라 불렀다. 1
그린백 4억5000만 달러가 금을 대체하면서 자금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했다. 풀린 돈이 군수산업, 철도, 도로 건설 등으로 흘러가 북부가 남부를 누르고 승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린백달러는 인플레이션을 가져왔지만 화폐통일이란 뜻밖의 효과를 냈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휘관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은 1868년 46세의 나이로 18대 미국 대통령이 된다.

그런데 사실 북군의 승리는 그린백과 국채 덕분이다. 금융 시스템과 재정 수입 덕분에 승리한 것이다. 이들은 부족한 돈을 국채 발행으로 해결했다. 전쟁기간 중 북부 물가는 60% 오르는 데 그쳤는데 남부는 무려 4000%나 올랐다. 남부는 전쟁에서 지기 전에 인플레이션으로 먼저 무너졌다. 과도한 화폐와 국채 발행, 무리한 징병제도가 원인이다.

전쟁과 경제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남북전쟁으로 미국 경제는 크게 발전한다. 우선 철도의 건설이다. 1862년 군대 수송과 보급을 위해 더 많은 철도가 필요했는데 남북전쟁이 그 필요성을 만들어냈다. 교신을 위해 수천 마일의 전선이 가설됐다. 석탄, 증기, 철의 3대 동력이 미국을 바꾸었다. 축음기를 비롯해 전구, 전화, 타자기가 발명됐다. 자동차도 만들어졌다. 법도 일정 역할을 했다. 1마일 철도를 놓는 회사에 사방 1마일의 땅을 주어 건설재원으로 쓰게 하는 철도법, 국유지를 주에 불하해 주립대학을 세울 재원을 마련한 모린법, 텅빈 서부에 주민 유치를 위해 개척자에게 거의 무상으로 160에이커 (20만 평)의 땅을 주는 홈스테이법, 노예를 해방한 수정헌법 13조 등등이 그것이다.

물류도 경제에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뉴욕이 그렇다. 오늘날 뉴욕을 만든 힘은 이리운하와 유대인이다. 운하건설로 오대호와 대서양 사이의 배편이 가능해졌다. 운송비 부담이 사라지자 중서부 곡물이 동부해안과 유럽시장으로 빠르게 진출했다. 반대로 공산품은 동부에서 서부로 옮겨졌다. 뉴욕의 큰 도시는 대부분 운하 옆이다. 알바니, 스키넥테디, 유티카, 시러큐스, 코닥과 제록스의 도시 로체스터, 버펄로 등 모두 운하 때문에 생겨난 도시들이다.

미국은 1902년 파나마를 콜롬비아로부터 떼어냈다. 파나마운하 건설은 1896년 공화당 정당 정책이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최단 해로가 시급했다. 그렇지 않으면 장장 1만5000㎞를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만든 게 파나마운하다. 파나마 건설권을 따내기 위해 콜롬비아와 협상을 했는데 난항을 겪자 파나마 지역 독립운동을 선동하고 이를 지원했다. 그리고 군함으로 위협해 파나마 지역을 콜롬비아에서 떼어냈다. 파나마공화국 독립이다. 1902년의 일이다. 대가로 운하 양측 8㎞를 받는다. 일시불로 1000만 달러를 주고 매년 운하 사용료로 25만 달러를 추가로 주기로 한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해에 완공한 이 운하는 2000년 1월1일 파나마로 이양했다.

1917년은 중요한 해다.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고 11월 혁명으로 레닌이 정권을 장악한다. 그해 4월6일 미국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1918년 독일이 지면서 전쟁은 끝이 난다. 미국의 참전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왜 미국은 뒤늦게 참전을 했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독일 잠수함이 미국 상선을 공격했기 때문이지만 사실은 다른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중동 석유와 군수업체들의 참전 종용이다. 당시 석유가 나오기 시작한 중동을 유럽에 넘겨줄 수는 없었고 전쟁 특수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1차 대전 후 가혹한 베르사유조약이 만들어진다. 거기에 더해 대공황이 독일을 강타하면서 독일 경제는 최악이 되는데 이때 히틀러가 등장한다. 대중 연설에 능한 히틀러는 베르사유조약 타파를 구호로 독일 국민의 마음을 샀고 케인스의 예언대로 독일이 복수의 칼을 뽑은 것이 2차 세계대전이다. 미국은 참전을 원했다. 하지만 루스벨트는 전쟁 안 하는 걸 구호로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참전을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다. 방법은 전쟁을 유도하는 것뿐이다. 일본을 상대로 다양한 도발적 조치를 취했다.

미국 내 일본 자산을 동결했고, 파나마운하의 사용을 금지시키고, 일본에 대한 무역봉쇄 조치를 단행했다. 무엇보다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을 금지한다. 석유의 66%를 미국에 의존하던 일본엔 치명적이다. 진주만 공습 11일 전인 11월 26일 미국은 일본에 최후통첩을 보낸다. 무역봉쇄를 푸는 조건으로 중국, 인도차이나로부터 완전 철수할 것, 독일 이탈리아 동맹에서 탈퇴할 것 등이다. 일본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미국의 의도는 명확했다. 일본의 도발을 유도해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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