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학술지에 실린 연구성과 가운데 경영자에게 도움을 주는 새로운 지식을 소개합니다
Behavioral Economics
“하면 안되는 줄 알지만…” 윤리부조화 심리를 ‘윤리지킴이’로
Based on “Ethical Dissonance, Justifications, and Moral Behavior” by R. Barkan, S. Ayal, and D. Ariely (2015, Current Opinions in Psychology)
무엇을 왜 연구했나?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는 매년 세계 각국의 부패 정도를 부패인식지수라는 통계치로 발표하는데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 최하위에 속해 왔고 개선의 여지도 찾기 힘들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 중 부정부패와 연관된 세부 항목에서도 매우 부끄러운 성적을 기록했다. 세부항목 중 정치인 신뢰는 140개국 중 94위, 기업경영윤리는 95위, 정책 투명성은 123위, 공무원 의사결정의 편파성은 80위였다. 부정부패는 국제사회에서의 부정적 평판에 그치지 않는다. 반부패 선진국들의 경제공동체인 유럽연합(EU)의 부패로 인한 연간 사회적 비용이 EU의 연간 예산 또는 EU 회원국 전체 GDP의 1%와 맞먹는다고 한다. 부정부패의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고 이에 대처하지 않으면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벽을 쌓는 것과 같다. 적과 싸워 이기려면 적과 나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의 대응을 보면 적을 알려는 노력도, 나를 알려는 노력도 모두 부족해 보인다. 비윤리적 행위의 전후과정을 보여주는 윤리부조화 현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무엇을 발견했나?
윤리부조화는 절대적 윤리 기준을 지키려는 내적 자아와 비윤리적 행위(거짓말, 뇌물, 사기, 횡령, 차별, 폭력 등)로부터 얻어지는 (또는 획득한) 이익이나 만족감이 충돌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윤리부조화는 크게 기대 윤리부조화와 경험적 윤리부조화로 나눌 수 있는데 전자는 비윤리적 행위를 행하기 전에 일어나는 윤리부조화를 말하고 후자는 비윤리적 행위를 실제로 행한 뒤에 일어나는 윤리부조화를 일컫는다.
기대 윤리부조화는 개인이나 사회로부터 지탄 받을 만한 비윤리적 행위에 노출되거나 유혹됐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비윤리적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비윤리적 행위를 했을 때 얻게 될 정신적, 물질적 이득을 저울질하는 자신과 절대적 윤리 기준에 비춰 용납하기 어려운 비윤리적 행위를 거부하려는 또 다른 자신 간의 갈등현상이다. 궁극적으로 비윤리적 행위가 가져다주는 이익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경험적 윤리부조화의 단계로 넘어가기도 하지만 비윤리적 행위의 유혹에 빠지기 전에 거치는 갈등과 고뇌로 말미암아 그러한 유혹을 예방하는 윤리지킴이 역할도 톡톡히 한다. 경험적 윤리부조화는 기대 윤리부조화에서의 심리적 갈등이 사리사욕을 위한 비윤리적 행위로 이어지고 이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를 느끼는 상태다. 기대 윤리부조화든, 경험적 윤리부조화든 일단 윤리부조화의 상태에 접어들면 갈등과 고뇌가 시작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자기 방어적 정당화(Justification)가 진행된다.
정당화는 다양한 형태로 은밀히 나타난다. 누구나 선의의 거짓말은 자주 하며 살 것이다. 이웃에서 이사 왔다고 떡을 가져왔는데 맛이 없다고 “참 맛이 없네요”라고 인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찐 직장상사를 비만이라고 자극하기보다는 건강해 보인다고 치켜세우며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도 흔치 않다. 자신만을 위한 거짓말은 용납하기 어렵지만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거짓말의 혜택이 돌아간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혜택을 받는 타인이 다수일 때는 더욱 그렇다. 거짓말쟁이라는 지탄의 대상에서 별안간 타인을 배려하는 이타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재벌들이 국민과 국가경제를 앞세우며 정치적 야망과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행태도 선의의 거짓말이 의도적으로 적용된 예라고 볼 수 있다.선의의 거짓말이 더욱 발전된 형태가 ‘로빈후드 논리’다. 누가 봐도 비윤리적인 행위(예: 폭력)가 사회적 약자가 아닌 갑질을 하는 사회적 강자에게 행해지면 정의로운 행위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고전소설인 ‘홍길동전’이나 요즘 영화 ‘베테랑’을 보면 ‘로빈후드 논리’가 많이 묻어 있다. 로빈후드 논리가 극단적으로 적용되면 인민재판식 행위를 초래할 수도 있다.
비윤리적 행위를 한 뒤에 오는 죄책감을 극복하는 원초적 정당화 방법이 자신에 대한 신체적 처벌이다. 금식이나 금욕을 한다든지, 침례나 고해와 같은 죄를 씻는 상징적 행위를 사용하기도 하고 항균제가 포함된 티슈로 손을 닦는 행위로도 죄책감이 경감된다는 연구도 있다. 공격적인 방어기제도 있다. 자신의 비윤리적 행위를 숨기기 위해 다른 이들의 비행을 들추고 비난하는 경우다. 바람직하지도 않고 장려할 일도 아니지만 권력과 지위를 통해 비윤리적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현상도 있다. 사람들은 권력을 가지거나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게 되면 높은 윤리성(도덕성)도 함께 쟁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오랫동안 전 세계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007시리즈’의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는 ‘살인면허증’을 가지고 세계평화에 누가 되는 적은 가차 없이 황천길로 보낸다. 민주, 문명사회에서 살인면허증이란 공개적으로 존재하기 불가능하지만 우리의 정신세계에는 비슷한 종류의 면허증이 있다.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정당화의 한 기제로서의 윤리면허증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에 행한 선행은 일종의 윤리크레디트를 제공하고 이는 나중에 저지르는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면죄부 역할을 한다.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흑인 후보를 지지하는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직원채용 시 흑인을 포함한 소수그룹을 차별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 느끼고, 환경 친화적 상품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에 덜 민감하며, 과거에 기부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현재 기부에 인색한 경향이 있다.
연구결과가 어떤 교훈을 주나?
윤리부조화는 피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다. 그러나 그 내면에는 윤리적으로 살려는 본능적 바람이 있다. 비윤리적 행위의 유혹에 항상 노출돼 있고 그 유혹에 어렵지 않게 빠지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행위를 적대시하는 절대적 윤리 기준을 가지고 있다. 비윤리적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안간힘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비윤리적 행위를 그만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윤리부조화 안에는 부끄러운 민낯도 있지만 윤리적 사회에 대한 희망도 공존한다. 비윤리적 행위가 행해지기 전에 그 행위에 저항하고 예방할 수 있는 ‘넛지(Nudge)’식 예방법은 부지기수다. 좋은 예로 십계명이나 윤리강령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부정행위가 예방되고 자율적으로 관리비를 지급하도록 마련한 항아리 위에 부릅뜬 두 눈을 그려 넣는 것만으로도 관리비를 속여 내는 사람들이 급감한다. 실제로 부정행위가 발생한 경우에는 정당화를 부정당화(Unjustify)시킬 수 있는 ‘행위에 대한 책임(Skin in the Game)’을 묻는 시스템 개발이 필수적이다.이를 위한 정계, 재계, 학계의 협력이 절실하다. 부정행위 및 그 정당화를 무력화시킬, 은밀하면서도 광범위한 넛지 시스템이 기업과 관공서, 학교와 가정에서 가동되는 미래를 꿈꿔본다.
곽승욱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mail protected]
필자는 연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와 텍사스공과대에서 정치학 석사와 경영통계학 석사, 그리고 테네시대(The University of Tennessee, Knoxville)에서 재무관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타주립대 재무관리 교수로 11년간 재직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행동재무학/경제학, 기업가치평가, 투자, 금융시장과 규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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