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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정조를 통해 본 리더십

조급증에 다혈질 ‘막말대왕’ 정조 “골통 늙은이” 운운 신하 막 대하다 신뢰 잃다

노혜경 | 184호 (2015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흔히 정조는 조선후기 중흥을 이끈 군주로학자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성품도 온화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실제 정조의 성격은 다혈질에 흥분을 잘했고 조급했다. 게다가 직선적이어서 대신들이나 학자들에게도 질타와 욕설을 퍼붓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정조는 자신이 대학자라고 자신하며 주변 학자들을 무시하고 군사부일체라는 말을 확대해석해서 자기가 임금인 동시에 모든 신하와 백성의 스승이라고 자처했다. 이런 태도는 관료들에게 결코 신뢰감을 줄 수 없다.

 

편집자주

영조와 정조가 다스리던 18세기는 조선 중흥의 시대라 불립니다. 하지만 이런 타이틀은 결코 쉽게 얻어진 게 아닙니다. 노론과 소론 간 권력 투쟁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즉위한 두 왕은 군왕의 소임이란 특정 당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도탄에 빠져 있는 조선과 백성을 위해 있는 자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당시로선 너무나 혁명적인 선언인 탓에 수많은 방해와 반대에 직면했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혜와 용기, 끈기로 무장해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끌어 낸 두 임금, 영조와 정조의 기록을 통해 진정한 리더의 자질에 대한 통찰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

 

 

요즘 언론에 부하에게 막말하는 공무원, 시의원, 경찰서장 등을 고발하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막말한 높은 분에게 대기발령이 나기도 하고, 이른바갑질을 한 것에 대해 두고두고 욕먹는 경우도 많다. 뿐만 아니라의 입장에서 갑질의 유형과 빈도를 분석하는 기사도 자주 실리고 있다.

 

조선시대는 어땠을까? 사극을 보면 관료들 사이에서 상관이 마구 하대하거나 막말을 하고 상대방은 존대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조선이 신분제 사회이고 위계질서가 엄했으니 상관이 하급자에게 더 세고 무섭게 대했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 쉽다. 드라마를 보면 영의정이 좌의정에게, 좌의정은 판서에게 각각 반말을 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그러나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관료들 사이에서 상관이라고 막말은커녕 하대하는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자신보다 품계가 낮다고 해도 서로 같은 관료요, 양반이었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도 서로 존대했다. 하대는 신분적으로 낮을 때만 가능했다.

 

‘막말’ 대왕 정조

조선시대 역대 왕들 중에서 가장 반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임금이 바로 정조다. 정조는 조선후기 르네상스를 이끈 학자적인 군주, 개혁의 군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성품도 온화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정조실록>에 드러나는 정조는 정치행위를 주로 기록한 역사서인 만큼 성격이 적나라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상당히 무게감 있고 백성을 사랑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 정도가 나타나 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공개된, 심환지(노론 벽파의 수장)에게 보낸 정조의 편지 297통을 보면 뜻밖의 반전을 알 수 있다. 바로 정조의 가감 없는 성격과 언행이다.

 

정조는 스스로태양증이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적이며 흥분을 잘하고 조급했다. 그 때문에 화병도 자주 나고 가슴에 심한 통증도 발생한다고 스스로 진단했다. 신하들에게도 자신의 병증을 고백했다. 심환지에게는나는 태양증이 있어 부딪히면 바로 폭발한다고 했고, 훗날 아들 순조의 장인이 되는 김조순에게는옳지 못한 짓을 보면 바로 화가 치밀어 얼굴과 말에 나타나며, 아무리 억누르려고 애를 써도 태양증 기질을 고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런 직설적인 성격으로 인해 정조는 주변의 고관은 물론 후대에 명성이 자자해진 학자들에게도 질타와 욕설을 퍼붓고 있다.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뢰하던 측근, 서용보에 대해 정조는호래자식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이 사람은 그저 돌아가는 세태만 지켜보며 숨어 있구나. 진짜 호래자식이네! 안타깝다. 요즘에 하는 꼴은 점점 더 앞뒤 분간을 못하고 있으니 어쩌겠어!” 심지어 원로대신인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에서조차경은 이제 머리 허연 늙은이가 되었네 그려. 조정에서는 높은 지위에 있고 나의 신임도 두텁지. 그런데 매번 그 입을 촉새처럼 놀려서 문젯거리를 만드니, 그대는 정말 생각 없는 꼴통 늙은이구려. 너무너무 답답하다라고 써 보냈다.

 

이 사건의 전말은 당시 관료 중에 물의를 일으킨 자가 있었는데 심환지가 이 사건을 서용보에게 알려주자, 정조는 자기가 서용보에게 말하지 않은 내용까지 말을 옮겼다고 노발대발한 것이었다. 정조는 심환지에게생각 없는 늙은이라고 핀잔을 준 것으로도 부족했는지앞으로 경을 대할 때는 내가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 방법밖에 없으니 정말 우습게 됐다. ‘이 떡 먹고 이 말 말아라!’라는 속담을 머릿속에 박아 놓는 게 어떤가라고 비아냥대기까지 했다. 아무리 임금이지만 나이 많은 정승에게 속담까지 들먹이며 대놓고 깎아내리는 것은 좀 심하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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