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의도’와 ‘쉬운 해결책’이 결합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대체로 비극이 생깁니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2년 이상 고용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시행했더니 2년 만에 대량 해고가 일어난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런 현상을 ‘코브라 효과(cobra effect)’라고 부릅니다. 영국 정부가 식민지였던 인도의 강한 독을 가진 코브라를 없애기 위해 코브라를 잡아오는 사람에게 보상급을 지급했습니다. 초기에 코브라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코브라를 대량으로 사육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영국 정부가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자 인도인들은 쓸모가 없어진 코브라를 방사해버려 이전보다 훨씬 많은 코브라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쉬운 해결책을 모색하다가 부작용을 경험하는 사례는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엔론 사태 이후 미국 정부는 샤베인옥슬리법을 제정해 이사회에 사외이사 숫자를 과반 이상으로 하고 내부 취약점을 평가해서 규제당국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했습니다. 법이 워낙 강력해서 지배구조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몇 년 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고 금융기업들이 대거 도산하면서 내부 통제에 실패한 지배구조 문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실제 심각한 위기를 겪은 시티그룹은 18명의 이사 가운데 사외이사가 무려 16명이나 되는 등 제도적 측면에서만 보면 최고의 구조를 갖췄습니다. 하지만 위기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훌륭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는데”라는 자부심이 실질적인 통제 노력을 소홀하게 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지배구조와 관련한 한국에서의 논의도 코브라 효과가 떠오릅니다. 지배구조 자체로만 보면 KT나 포스코가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기업 모두 정권 교체기마다 CEO가 바뀌는 등 후진적인 ‘외풍(外風)’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다수 주주의 권리를 보장해주면 오히려 대주주 중심의 피라미드 구조가 더 강화되고 그 반대의 정책을 폈을 때 분산구조가 나타난다는 역설(逆說)도 주목할 만한 현상입니다(p. 74).
지배구조는 기업의 경쟁력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국가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파괴력이 강한 이슈입니다. 지금처럼 서구식 소유경영 분리가 ‘정답’이라거나 독일식 노경협의의 방식이 ‘정답’이란 시각은 위험합니다. 이렇게 쉽게 현실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 순간 코브라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역사와 한국적 상황에 부합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쩌면 개별 기업마다 해법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슈인데도 단일한 해법을 찾으려는 헛된 노력을 해온 것은 아닌지도 반성해봐야 합니다.
어떤 형태의 지배구조를 도입할지 고민하기 전에, 왜(why) 이 논의를 하는지부터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다수의 한국 대기업은 3세 경영 체제로 이전하는 과도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기업의 규모가 이전에 비해 훨씬 커졌고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기본적인 윤리를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대 수준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거수기(擧手機)’나 바람막이 이사회는 장기적으로 오너 경영자, 기업, 소액주주 모두에게 좋지 않습니다. 선진국에서도 사외이사 비율이나 이사회 운영방식과 같은 제도보다는 실질적인 내용, 즉, 이사의 역할과 전문성 강화, 장기적 비전 제시 능력 등을 키우기 위한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이사들은 전문적인 식견을 갖고 있으며 지금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회사의 상황과 시장 환경 변화를 이해하고 장기 전략을 조언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역량을 토대로 실질적인 가치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이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는 한국형 지배구조 모델을 찾기 위해 관련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았습니다. 이사회의 구체적인 운영 방안과 한국적 대안을 찾기 위한 이번 리포트를 토대로 지배구조를 경쟁우위의 원천으로 만들기 위한 혜안을 얻어 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