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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지제(千丈之隄): 개미구멍이 큰 둑을 무너뜨린다

박재희 | 143호 (2013년 12월 Issue 2)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말이 피부에 와 닿는 세상이다. 탄탄하다고 생각돼 누구나 믿었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서 무너지기도 하고, 잘나가던 사람이 어느 날 끝도 없이 추락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무리한 사세 확장과 돌려 막기 회사채 발행으로 결국 불행을 자초한 어느 대기업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을 더욱 확인시켜준다. 갑자기 무너지는 것이 어찌 기업과 사람뿐이겠는가? 잘나가던 나라도 변화하는 세상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경제가 피폐해지고 사회가 근간부터 흔들리는 것을 보면 어느 누구도 방심하고 영원한 생존을 무작정 기다릴 수만은 없는 시대다.

 

기업이 무너지고, 잘나가던 사람이 추락하는 것은 결코 큰일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평소에 하찮게 여기고 별 볼일 없다고 무심코 지나친 것이 원인이 돼 암담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잠깐 방심해 잘못 투자한 곳에서부터 기업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행동 하나 때문에 더 이상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것을 보면 큰 문제보다는 작은 문제에 더욱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큰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반드시 조그만 전조들이 있다. 그래서 미래에 닥칠 화를 미리 막는 사람들은 큰일이 터지기 전에 보이고 느껴지는 조그만 조짐들에 눈과 귀를 기울인다. 큰 지진이 일어나기 전엔 많은 조짐들이 있기 마련이다. 짐승들은 미리 그 조짐을 느끼고 피하는데 사람은 그 조그만 조짐들을 무시하고 아무런 대책 없이 있다가 결국은 큰 재앙을 당한다. ‘천 길 높이의 큰 둑(千丈之隄)도 사소한 개미구멍이 커져서 무너지는 것이며(以螻蟻之穴潰), 백 척 높이의 큰 집(百尺之室)도 굴뚝 아궁이에서 시작된 불이 원인이 돼 잿더미로 변하는 것이다(以突隙之烟焚)!’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재앙의 기원에 관한 글이다. 개미나 땅강아지가 파놓은 조그만 구멍을 발견했지만 무시하고 지나쳤기에 큰 둑이 어느 날 무너지게 되고, 아궁이의 불씨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에 궁궐 같은 큰 집이 어느 날 불타서 전소되는 화를 입게 된다. 별것 아니라고 그냥 지나쳐 버린 조그만 일들이 더 이상 걷잡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일이 커지기 전에 미리미리 작은 구멍을 메우고 작은 불씨를 끄는 게 상책이다.

 

사람이 길을 가다 넘어지는 이유는 큰 바위나 산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나뭇가지 하나 때문이듯이 평소에 방심했던 문제가 결국 무너지고 추락하는 이유가 된다. ‘사람은 산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는 없다(人莫躓于山). 개미 언덕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다(躓于垤).’ 청나라 심덕잠(沈德潛)이 편찬한 <고시원(古詩源)>에 수록된 글귀다. 지난 역사를 보면 나라가 망하고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이유는 외적의 침입이나 엄청난 자연 재해가 아니라 그 나라 내부의 조그만 문제들이 쌓여서 망하는 경우가 많다. 국론의 분열, 기득권층의 이기심, 지도자들의 부패, 이런 것들이 결국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었다.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 안에 잠재된 예비된 재앙의 불씨를 제대로 끄지 못하면 결국 큰 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천 길 높은 둑도 조그만 개미구멍이 커져서 무너지고, 길 가던 사람이 개미 언덕에 걸려 넘어진다는 글귀를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 무심코 지나치는 개미구멍이나 개미 언덕은 없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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