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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A 통신

뉴욕패션의 전설, 한국 디자이너에 교훈 던지다

김시현 | 141호 (2013년 11월 Issue 2)

 

편집자주

 DBR은 세계 톱 경영대학원의 생생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MBA 통신’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명문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는 젊고 유능한 DBR 통신원들이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통신원들은 세계적 석학이나 유명 기업인들의 명강연, 현지산업계와 학교 소식을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바랍니다.

 

컬럼비아 경영대학원(Columbia Business School)은 체이스 맨해튼 은행(Chase Manhattan Bank)의 회장인 A. Barton Hepburn 1916년에 설립했으며 6개 아이비리그 경영대학원 중 하나다. 세계 금융 및 패션, 럭셔리, 리테일 산업의 중심지 뉴욕에 위치해 명사들의 초청 강연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재학생들의 기업 방문과 취업에도 유리하다.

 

9월 초 뉴욕 맨해튼에서는 뉴욕패션위크(Mercedes – Benz Fashion Week)를 비롯한 각종 패션 관련 행사가 한창이었다. 뉴욕패션위크는 미국패션디자이너협회(CFDACouncil of Fashion Designers of America)가 주관하고 메르세데스-벤츠가 후원하고 있는 유서 깊은 행사다. 링컨 센터 및 인근 지역에 대형 텐트를 설치해 1주일간 패션쇼 및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는 형식으로 진행돼 왔다. 파리, 밀라노, 런던과 함께 세계 4대 컬렉션으로 꼽히는 뉴욕패션위크에서는 오스카 드 라 렌타(Oscar de la Renta),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랄프 로렌(Ralph Lauren) 등 국내에도 잘 알려진 세계적인 디자이너들뿐만 아니라 뉴욕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신진 패션 브랜드도 볼 수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와 같은 세계인들의 패션 행사에 한국 디자이너 및 패션 브랜드의 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소규모의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ENK New York, Capsule Show와 같은 대표적인 트레이드 쇼를 통해 뉴욕 시장에 소개돼 왔다. 혹자는 한국 디자이너들의 해외 컬렉션에 모이는 관중들이 주로 현지에서 패션을 공부하는 한국 학생 및 아시아인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한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특히 올해 뉴욕 컬렉션에서는 각양각색 인종과 직업군의 관중들로 행사장이 가득 메워졌고 쇼가 끝난 후의 백스테이지는 한국 디자이너를 만나려는 매체 관계자 및 바이어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그런데 필자는 이들의 실질적인 세일즈 활동 및 성과가 궁금해졌다. 한국에 기반을 두고 뉴욕 및 파리 시장 진출 경험을 보유한 10 여 명의 디자이너들과의 이야기를 나눠 본 결과 초기 진입 단계임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단독 브랜드 매장을 가지고 활동하기보다쇼룸이라고 불리는 지역별 편집 매장을 통해 현지 세일즈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를 선보이는 뉴욕 현지의 편집 매장으로는 소호에 입지한 Opening Ceremony, 다운 타운의 Idiel Showroom, 브루클린의 Atrium 등이 있는데 이들 쇼룸에서는 수십여 개의 브랜드를 팔고 있다. 개별 브랜드의 입장에서는 점진적인 인지도 성장을 통해 단독 매장을 갖추거나 메이시스(Macy’s), 노드스트롬(Nordstrom)과 같은 미국 전역에 유통망을 갖춘 백화점 체인에 장기적으로 입점할 수 있는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이 최종 목표가 될 것이다. 이 같은 성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리테일 시장에서의 세일즈 성과가 뒷받침돼야 한다.

성장세를 타기 시작한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해외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판매고를 올리고 나아가 고급 장수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마침 필자는 컬럼비아경영대학원의 인기 강의 중 하나인 마크 코헨(Mark Cohen) 교수의 리테일 리더십과목을 이번 학기에 수강하고 있다. 이 수업은 럭셔리, 리테일, 패션 산업에 수십 년간 종사해온 최고경영자들을 초청 연사로 모시는 것으로 유명한데 필자는 그중에서도 뉴욕의 최고급 백화점인 버그도프굿만(Bergdorf Goodman)의 전 CEO이자 업계의 전설적인 아이콘인 아이라 니마크(Ira Neimark)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버그도프굿만은 삭스피프스애비뉴 백화점(Saks Fifth Avenue) 및 바니스 뉴욕(Barneys New York)과 함께 최고급 백화점으로 꼽힌다. 니마크는 늙고, 지루하고, 비싸고, 위압적(old, dull, expensive, intimidating)’이라고 묘사되던 버그도프굿만을 젊고, 흥미롭고, 비싸고, 위압적(young, exciting, expensive, intimidating)’인 매장으로 탈바꿈시킨 주역이다. 그는 또한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 도나 카란(Donna Karan), 마이클 코어스(Michael Kors) 등의 현 패션 업계를 이끌어가는 대표적 미국 디자이너들이 패션 산업에 첫발을 내디딘 시절부터 꾸준히 지켜보고 도움을 주고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강의 당일, 주홍빛이 도는 핑크색 셔츠와 남색 정장을 화려하게 맞춰 입고 나타난 니마크는 올해로 92세가 된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곧은 자세와 또렷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필자는 이 패션 구루의 강의와 질의 응답, 개별 인터뷰와 서신 교환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디자이너 브랜드의 리테일 부문 성공을 위한 팁을 본고를 통해 공유한다.

 

1. 현지 네트워킹

디자이너 브랜드는 가질 수 있는 한 최고로 높은 목표를 가져야 하며 이와 같은 목표 달성을 위해 끊임없는 아이디어 개발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디어 확보를 위해서는 타깃 시장 내 아이콘으로 인정받는 고급 잠재 고객들에게 꾸준히 접근하고 그들로부터 영감을 얻어 디자인에 반영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니마크는 자신도 다이애나 영국 황태자비,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 재클린 오나시스, 도널드 트럼프, 앤디 워홀, 마크 제이콥스, 펜디 자매 등 국적, 연령, 종사하는 분야를 불문하고 세계 유명 인사들과의 네트워크를 왕성하게, 꾸준히, 직접 개발해왔다. 그런 고급 고객들이 브랜드에 대한 영감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 브랜드들은 어떨까? 많은 한국 브랜드들은 디자이너가 갖고 있는 연예인 네트워크 역량을 통해 마케팅과 프로모션 활동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이 같은 네트워킹 활동이 한국 내 연예인의 범주에 그치지 않고 해외 시장 내 다양한 분야의 고급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니마크는 조언했다.

 

2. 적극성과 조직력

브랜드의 초기 성장 단계에서는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 프로모션, 유통, 재무 등 비즈니스 전반에 최대한 깊이 관여해 부족한 부분들(missing elements)을 항상 점검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1) 뚜렷한 개성과 일관성을 갖춘 브랜드 콘셉트 2) 재무적 뒷받침 3) 출중하고 민첩한 조직력이다.

우선 브랜드 콘셉트는 현재의 고객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공략하고자 하는 잠재 고객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것이 브랜드가 갖춘 고유의 개성과 만나는 접점에서 형성돼야 한다. 또한 브랜드 콘셉트에 대한 인지도가 재무적 성과로 연결되기 위해 바이어들을 적극적으로 리드하고 교육할 수 있어야 한다. 니마크는 패션 업계 바이어들을 군인(fashion soldiers)이라 표현하면서 어떤 디자인이 다가올 시즌에 성공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디자이너 및 브랜드 최고책임자이고 바이어들은 이를 시장에 실제로 알리는 역할을 담당하므로 적극적인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출중하고 민첩한 조직력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에 반응하기 위한 필수 요소다. 실용적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으로 유명한 마이클 코어스가 30여 년 전 버그도프굿만 백화점과 첫 미팅을 가졌을 때 그는 아직 제대로 된 자신의 라인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버그도프굿만 측에서 제시한 콘셉트와 타임라인에 맞춰 매우 빨리 가을 컬렉션을 제작해 낼 수 있는 역량을 강조해 입점할 수 있었다.

 

3. 쇼맨십

패션 산업 종사자는 디자이너와 리테일러를 불문하고쇼맨십이 충만해야 한다. 패션 산업의 소비자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이것은 새로운 디자인과 새로운 상품뿐만 아니라 관중을 흥분시키는 이벤트와 네트워킹 기회를 포함한다. 따라서 때때로 파격적인 형식의 프레젠테이션과 패션 쇼를 꾸준히 선보이고 새로운 모습으로 매장을 변신시키며 다음 세대를 리드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유한 연예인과 미디어를 통해 브랜드를 홍보해야 한다. 그래야 잠재 고객에게 감동과 드라마를 주고 이들을 충성 고객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

 

4. 긴 호흡

디자이너는 공략하고자 하는 시장에 일단 발을 들여놓고(“Get your foot on the door”), 머천다이저와 충분한 신뢰를 나누며 함께 작업해야 한다. , 시장 내 상품을 판매해 줄 머천다이저를 결정했다면 그들을 최대한 믿고 시간을 두어 결과를 지켜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단 판매고가 오르기 시작하면 해당 머천다이저와 중장기적 관계를 맺고 시장 내에서 긴 호흡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쌓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이후, 독립적 매장을 보유하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하면서 니마크는 현재 한국 디자이너들이 뉴욕 편집 매장과의 협업을 통해 리테일 시장 내 작은 목표부터 달성해 나아가는 방식을 칭찬했다.

 

수많은 한국의 디자이너 브랜드가 한국과 아시아 시장에서 이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재무적 성과를 올리고 있다. 한국 디자이너의 서구 시장 진출을 위해 정부기관 및 관련 단체들도 자금을 지원하고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려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오고 있고 개별 브랜드 역시 글로벌 시장의 기대에 부응해 참신한 디자인을 매 시즌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브랜드가 그저 지나가는 유행(fad)이 아닌 확고한 개성을 가지고 장수하는 고전(classic)으로 시장에 안착하려면 니마크의 조언처럼 현지 대중과 고급 고객의 관심, 각계각층의 지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향후 10, 한국 기반의 신생명품브랜드들이 글로벌 시장을 휩쓰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김시현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email protected]

필자는 연세대 학부를 거쳐 서울대에서 국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전략 컨설팅 사Booz & Company의 서울 및 베이징 사무소에서 기업의 성장 전략 및 M&A 프로젝트를 맡았다. 컬럼비아 MBA 입학 전 사모펀드Stonebridge Capital에서 럭셔리 및 소비재 부문 포트폴리오 관리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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