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최고 흥행작인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영화의 재미와 사회적 이슈를 동시에 다룬 수작이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먼저 양해의 말씀을 드린다. 본 칼럼에는 영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101칸의 열차가 빙하의 세상을 돌면서 벌어지는 영화 속의 장면은 갑(甲)과 을(乙)의 대립을 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앞 칸에 탄 갑(甲)의 사람들과 꼬리 칸에 탄 을(乙)의 사람들, 엔진으로 묘사되는 성스럽고(sacred) 신성한(divine) 갑(甲)과 그 신성함에 세뇌된 을(乙), 그러나 영화는 열차가 전복돼 파괴되고 갑(甲)의 몰락과 을(乙)의 죽음으로 끝난다. 갑(甲)과 을(乙)의 동반몰락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다만 갑을(甲乙) 갈등과 대립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 관계자체를 끝내고 열차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만 생존에 성공한다. 갑(甲)과 을(乙), 어느 편도 완전한 승자는 아니었다.
사회가 갑(甲)과 을(乙)의 문제로 떠들썩하다. 영화의 결론대로라면 마지막은 동반몰락이다. 몰락의 가장 큰 이유는 교만이다. 나는 영원하다고 생각해 교만하고 안심하는 순간 어느 누구도 승자로 남을 수 없다. 강한 자는 약한 자를 가볍게 보다가 결국 약자에게 넘어지고, 높은 자는 낮은 자에게 교만하다가 낮은 자 때문에 몰락한다. 큰 자는 작은 자를 멸시하다가 결국 작은 자에게 발목을 잡힌다. 교(驕)! 이 한 글자가 결국 몰락의 징조요 이유다.
‘내가 귀하다고 밑에 사람 천시하지 마라(勿以貴己而賤人), 내가 크다고 작은 사람 멸시하지 마라(勿以自大而蔑小), 내가 강하다고 약한 사람 무시하지 마라(勿以恃勇而輕敵).’ <명심보감>에 나오는 구절이다. 세상은 귀하고, 강하고, 클수록 더욱 낮추고 겸손해야 오랫동안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겸손은 높고 크고 강한 자를 지켜주는 호신부(護身符)다.
실학자였던 이덕무(李德懋) 선생은 선비들이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 생각을 적은 사소절(士小節)이란 글에서 교만이야 말로 천박하고 아둔한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말하고 있다. ‘믿는 구석이 있다고 교만을 떠는 사람은 천박한 사람이다(有所挾而驕 淺也), 믿는 구석도 없으면서 교만을 떠는 사람은 멍청한 사람이다(無所挾而驕 昏也).’ 힘 있고 강하다고 교만을 떠는 사람은 인성이 천박해 상대할 사람이 못되고, 힘도 없고 가진 것도 없으면서 교만을 떠는 사람은 멍청하고 아둔한 사람이라는 지적이다. 요즘 몰락하는 기업이나 사람들을 보면 강하고 힘센 것만 믿고 경거망동한 사람들이 많다. 모든 것이 다 잘된다고 방심해 영원히 잘될 줄 알고 교만하게 사업한 기업은 이미 몰락의 길을 걷고 있고, 지금의 권력이 영원하다고 착각해 가서는 안 될 길을 걸은 사람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모두가 교(驕), 일자(一字)를 잊고 산 결과이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는 이미 탈선을 알리는 신호가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다. 북극의 얼음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고, 나라 간의 대립과 종교의 갈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길로 내 몰리고 있다. 노사 간의 갈등을 넘어 노노 간의 갈등은 불안한 미래를 예측하게 해 준다. 본사와 대리점, 기업과 협력업체 간의 힘겨루기는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고, 기성세대와 신세대들은 각자 할 말이 많다. 교만은 강한 자나 약한 자 모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가장 경계해야 할 것임에 분명하다. 교(驕)! 일자(一字)를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할 것이다. 교즉사(驕則死)! 세 글자를 새기면 더욱 좋다.
박재희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성균관대에서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새로운 미래사회 가치를 연구하고 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내고 현재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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