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간 유한킴벌리를 공동으로 운영해 온 킴벌리클라크와 유한양행이 갈등을 빚고 있다. 최근 킴벌리클라크가 4대3인 이사회 구성 비율을 5대2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려 하자 이에 반발한 유한양행이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것이다. 유한킴벌리의 지분 70%는 킴벌리클라크가, 나머지 30%는 유한양행이 보유하고 있다.
유한킴벌리는 1970년 양사가 합작법인으로 설립한 이래 성장을 거듭해 생활용품 시장에서 확고한 지위를 굳혔다. 사회공헌 활동에도 앞장서 존경받는 기업, 일하고 싶은 기업에 꾸준히 뽑혀 왔다. 모범적 협력의 대명사로 손꼽혀 왔던 만큼 이 회사에서 파트너 간 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42년 모범 합작기업 깨지나’와 같이 42년이라는 오랜 합작 기간에 초점을 맞춘 반응이 많았다. 킴벌리클라크가 더 많은 배당금과 기술사용 로열티를 요구해 양사 간 갈등이 불거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외국 기업의 이익 빼가기’ ‘사회책임경영 약화 가능성’과 같은 우려도 제기됐다.
이런 반응은 전략적 제휴의 목적과 제휴 파트너 간 역학 관계에 대한 피상적 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제휴 관계의 지속 기간은 제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일 뿐 목적 그 자체가 아니다. 더욱이 이 사례에서 파트너 간 이익 불균형 문제가 드러났다면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서라도 전략적 미숙함 또는 실책에 대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전략적 제휴의 목적으로는 첫째, 비용(생산비용 및 거래비용) 절감이 있다. 둘째, 진입 규제 회피, 시장지배력 강화와 같은 시장구조적 동기를 들 수 있다. 셋째, 기술, 특허, 경영·마케팅 노하우와 같은 필요 역량의 확보가 있다. 글로벌화로 경쟁이 심화되고 반독점 규제가 강화되면서 특히 세 번째 목적인 역량 확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전략의 대가인 게리 하멜(Gary Hamel)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기업 간 제휴는 상대방의 지식과 역량을 흡수하는 과도기적 도구라고 간주했다. 협력의 안정성이나 장기적 존속은 협력 성공의 증거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협력의 종료가 성공적인 학습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기업 간 제휴 관계에서는 파트너 간 ‘learning race(학습 경쟁)’가 벌어진다. 핵심 지식과 기술, 노하우를 보유한 측은 명목상 지분율이나 이사 구성 비율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누가 상대방의 지식을 더 많이, 더 빨리 흡수했느냐에 따라 파트너 간 역학 관계도 바뀐다.
유한킴벌리 사례로 돌아가서 킴벌리클라크 측의 판단을 추정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첫째, 한국에서 생산하는 비용 우위는 상당히 희석됐다. 둘째, 시장 지식과 마케팅 노하우는 이미 충분히 얻었거나 그 가치가 감소했다. 그렇다면 성장 정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래의 예상 이익을 키우기보다 우위에 있는 역학 관계를 활용해 현재 가져갈 몫을 늘리는 게 낫다.
한편 유한양행 측의 전략적 대응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42년 동안이나 외국 기업과 합작을 해왔는데 예전보다 더 많은 기술 사용료를 내야 하고 더 많은 이익을 떼어줘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을 보고 하멜 교수와 같은 학자들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다. 물론 킴벌리클라크는 연구개발과 특허 보호로 유명한 기업이다. 하지만 합작투자라는 지식 습득에 최적인 환경이 42년간 지속돼 왔는데 상대방의 기술과 노하우를 배울 시간이 부족했다면 할 말이 없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면서 해외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에 나서고 있다. 필요한 기술과 지식, 아이디어를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인수합병, 합작 투자, 기술 제휴, 인력 확보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하는 건 당연하다. 이때 무엇을 언제까지 얻을지를 명확히 하고 지식을 습득하고 흡수하는 역량을 충분히 높이는 일이 우선시돼야 한다. 하멜의 말처럼 기업 간 경쟁이 ‘역량을 향한 경쟁(competition for competence)’이라면 그 승패를 가르는 키워드는 학습이다.
한인재 경영교육팀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학위를 받았다. AT커니 등 컨설팅 회사에서 금융•보험•정보통신•헬스케어 업체의 신사업 및 해외진출, 마케팅 전략, CRM, 위기관리 컨설팅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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