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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슬론 MBA스쿨은1914년 GM의 CEO였던 앨프리드 슬론이 설립했다. 수리 및 계량적 접근을 중시하는 실사구시 학풍을 지녔으며 혁신, 창업, 계량 분석, 정보기술(IT) 분야 등에서 세계 최고의 MBA스쿨로 꼽힌다. 매년 39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입학한다.
MIT Sloan School of Management (이하 ‘슬론’)의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혜 중 하나는 비즈니스 외의 다양한 분야 사람들을 접하고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회다. 1학년 첫 학기 동안 모든 학생들이 예외 없이 수강해야 하는 5개의 필수과목(회계학, 경제학, 커뮤니케이션, 조직 및 인사관리, 통계학/모델링)을 이수한 후 두 번째 학기부터는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평소에 하이테크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필자는 에릭 히펠(Eric Von Hippel) 교수의 ‘How to Develop Breakthrough Products and Services’라는 수업을 신청했다. 그저 제목에 이끌려 원천적인 기술력을 가진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효과적인 비법을 배워볼 수 있을까 하고 막연히 수업에 참여했던 필자는 한 학기 동안 ‘user innovation(소비자/사용자들이 주도하는 기술혁신)’이라는 콘셉트를 바탕으로 한 여러 흥미로운 상품들을 접할 수 있었다. 스포츠 장비들(스노보드, 스케이트보드, 윈드서핑)이나 의료장비들(Automated Radioimmunoassay Systems)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산악자전거(MTB)는 일반 자전거로 하이킹을 즐기는 유저들이 좀 더 내구성이 좋고 가벼우며 강한 제품을 필요로 하면서 생산됐다고 한다. 고무 타이어가 쉽게 닳아 없어지거나 경사진 길을 오르내릴 때 고장이 잦은 일반 자전거에 대한 불만족은 유저들이 직접 나서서 제품을 향상시키도록 자극했고 공공투자 유치를 통해 산악자전거가 제품화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수업의 마지막 프로젝트는 ‘user innovation’을 통해 상품화되고 기능이 향상된 제품들을 기술적인 면과 경제학적 측면에서 분석해 보는 과제였다. 필자는 레고(LEGO)사의 ‘Mindstorm’이라는 로보트를 주제로 리포트를 쓰기로 결정했는데 ‘Mindstorm’을 개발한 MIT Media Lab에서 연구 개발을 담당하는 박사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또 엔지니어링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했던 필자는 수업 전후에 잠시 시간을 내는 것만으로도 함께 수업을 듣던 엔지니어링 석사 및 박사 과정 친구들에게 전자공학이나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필자가 수강한 수업 이외에 슬론에서 다양한 배경의 동료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수업으로 ‘Making Progress in Product Design’이라는 과목이 있다. 비즈니스스쿨 학생들과 엔지니어링 전공자들, RISD의 산업디자인과 학생들은 하나의 팀을 이뤄 한 학기 동안 제품을 기획, 구상해 프로토타입(prototype)까지 제작하게 된다. 성공적으로 제작을 마친 제품들은 실제로 상품화돼 판매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Enlight’라는 태양광을 이용한 저가 램프는 전기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인도 지방의 6700만 가구에서 유용하게 쓰일 예정이라고 한다.
이 밖에 창업의 발판을 마련해 주는 ‘MIT $100K Entrepreneurship Competition(이하 ‘100K’)’은 미국 내에서는 이미 너무나도 유명한 창업 컨테스트로 매년 우승자에게는 창업 종잣돈으로 10만 달러의 상금이 주어진다. 다른 참가자들도 경연을 통해 총 35만 달러에 달하는 상금을 비롯해 각 업계의 비지니스 리더들에게 멘토십과 조언을 받을 수 있으며 ‘resource center’를 통해 창업에 유용한 정보들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시작하는 젊은 창업자들이 미디어를 통해 본인들의 비즈니스 모델 혹은 제품을 홍보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있다. 100K는 유독 엔지니어 출신들이 많은 슬론에서도 매년 가장 주목받는 이벤트 중 하나로 좋은 팀원들을 유치하기 위해 MIT 내 엔지니어링 프로그램은 물론 근교에 위치한 대학들을 통해 학생들 간 활발한 리쿠르팅과 교류가 이뤄진다.
Tech 분야가 아니더라도 슬론에서는 MIT 내외의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방면의 동료들과 함께 공부하고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MIT에서는 매년 1월 한 달간 ‘Independent Activities Period(IAP)’를 운영해 평소 흥미를 가지고 있던 일반 학과 공부는 물론 외국어, 스포츠 등 다양한 수업을 강의, 세미나, 워크숍 형식으로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필자가 특히 흥미롭게 느꼈던 수업으로는 ‘How to Win at Texas Hold’em Poker’와 ‘Distributed Leadership’이 있다. 포커 수업의 경우 Texas Hold’em을 할 때 극히 중요한 베팅 전략 및 확률법을 이론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200명 이상의 수강생들은 매일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 이어지는 토너먼트 형식의 온라인 포커 게임에서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들을 적용하게 된다. 이 토너먼트에서 가장 많은 포인트를 획득한 참가자는 상품과 함께 전문 포커 플레이어인 Michael McDonald에게 개인 레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이 강의는 MIT 내 다양한 프로그램의 학생들과 함께 포커를 즐기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색다른 묘미가 있는 수업이었다. 리더십 수업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여러 연령대의 학생들과 어우러져 서로의 경험담을 공유하고 다양한 팀워크 과제를 통해 성공적인 리더십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특별히 MIT에서 로봇기술을 담당하는 연구원이 가장 기억에 남는 팀원이었는데 전쟁에 쓰일 정찰로봇을 개발하고 테스트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이라크의 전쟁터에 가서 로봇연구팀을 이끌던 경험을 공유해 모두가 그의 위험천만하고도 색다른 경험에 감동했다.
많은 비즈니스스쿨 학생들이 흔히 말하는 ‘B-school bubble(비즈니스스쿨이라는 방울 속에 갇혀 밖의 세상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점을 아쉬워한다. 물론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CEO들의 강의를 듣고 친구들과 심도 있는 토론을 하는 등 비즈니스스쿨 내에서만도 누릴 수 있는 특혜들이 무궁무진하며 MBA커리큘럼에만 집중하기에도 2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필자에게는 이 ‘bubble’을 벗어나 엔지니어, 변호사, 디자이너 등 다양한 배경의 동료들과 함께 작업하고, 배움을 얻고,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던 시간이 가장 특별했던 경험으로 기억될 것 같다.
필자는 시카고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NERA Economic Consulting에서 경제 컨설팅 (Intellectual Properties / Transfer Pricing)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