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화장품이 일본 여성들의 일상생활에 깊숙하게 파고들고 있다. 최근 일본 출장을 다녀오면서 든 생각이다. 출장 목적은 전속 모델인 장근석씨와 함께 고객감사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잠시 둘러본 도쿄의 화장품 상권은 경기침체와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생동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한군데만큼은 달랐다. 한류(韓流)가 징검다리를 놓은 우리 뷰티 제품에 대한 관심. 이는 고객감사 행사에서도 생생하게 느꼈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 많은 한류스타로 꼽히는 장근석은 능숙한 일본어와 화려한 퍼포먼스로 고객들의 열광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고객들은 행사가 끝난 뒤 필자를 알아보고 다가와 “근짱(장근석의 애칭), 네이처리퍼블릭 힘내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지난 2009년 출범한 네이처리퍼블릭이 세계 화장품 2위 시장인 일본에서 고객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데는 나름의 ‘3P 전략’을 염두에 두고 일본 진출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먼저 네이처리퍼블릭은 똑똑한 파트너(Partner)를 찾았다. 총판 파트너의 기준은 경험과 시스템을 갖춘 일본 회사, 그리고 한국 화장품 비즈니스에 정통한 회사로 정했다. 일본 시장만 아는 파트너는 한계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파트너를 정한 뒤에는 양사가 거침없이 논의하고 빠르게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모델 선정이다. 장근석이 일본 모델로 거론되던 올봄 그의 일본 내 인기도는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본사의 의견은 엇갈렸다. 파트너사는 여러 데이터를 근거로 장근석을 강력하게 추천했다. 협의 끝에 계약을 마치자마자 장근석의 일본 내 위상이 치솟아 시장 진입 때 커다란 힘이 됐다.
두 번째 전략은 핵심 타깃에 맞춘 프로모션(Promotion)이다. 네이처리퍼블릭은 국내 회사로는 화장품 진입 장벽이 높은 일본에서 최초로 고객초청 이벤트를 여는 만큼 타깃부터 신중히 정했다. 과거 우리나라 뷰티 브랜드 중 전속 모델과 함께 동남아 국가를 방문해 프로모션을 연 사례는 많았지만 수만 명에 가까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진행했기에 연예인 팬 미팅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네이처리퍼블릭은 규모에 연연하지 않고 타깃을 좁혔다. 자사 제품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고객에 한해 2000명만 초대했다. 프로그램은 장근석과 팬들이 교감하는 시간과 함께 브랜드를 충실히 소개하도록 편성했다. 고객 호응도와 집중도가 매우 좋았던 이유다.
마지막으로 앞서 소개한 두 전략의 바탕이 되는 제품(Product)이다. 넓게는 머천다이징 전략이라 볼 수 있다. 이미 대중화된 비비크림은 1개 품목으로 최소화해 선보이고 수출 제품을 신규 개발했다. 제품 기획 단계부터 현지 전문가들과 제형, 디자인을 꼼꼼하게 테스트해 결정하고 있다. 취향이 다르고 양국의 화장품 제조규정도 다르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3P 전략’은 6년 전 일본에 진출한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도 조금 다르게 시도하는 것들이다. K-POP으로 살아난 3세대 한류의 콘텐츠가 달라지고 소비층이 젊어졌기 때문이다. 지금 일본은 한류 열기가 한껏 달아올라 있고 불황으로 중저가 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우리 기술력도 세계 수준으로 발전했다.
이와 같은 환경이 조성된 일본은 네이처리퍼블릭 같은 신생 브랜드에는 편견이 없는 시장이다. 세계 트렌드에 민감한 일본에서 자기만의 전략으로 브랜드 경쟁력을 쌓는다면 글로벌 시장의 생존법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화장품 시장의 신화’로 불리는 정운호 대표는 1993년 세계화장품을 설립하며 화장품 업계에 발을 내디뎠다. 1996년 ‘식물원’ 브랜드를 출시했고 1999년 쿠지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2003년에는 자연주의 콘셉트의 더페이스샵코리아를 창업, 합리적인 가격의 브랜드숍 화장품 채널을 대중화했다. 2010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