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럽이 발표하는 ‘세계 감정 보고서’에 따르면 ‘부정적 경험 지수’는 2006년 24에서 2021년 33까지 증가했다. 전 세계적으로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기업에서 분노는 ‘비용(cost)’으로 계산된다. 사원들의 분노는 노사 갈등으로 이어지고, 소비자들의 분노는 매출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분노를 어떻게 통제하느냐는 성공적인 경영의 열쇠다. 폭발적인 분노를 ‘자산(asset)’으로 사용하는 사례를 이미 ‘분노 산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분노 산업의 성공적인 열쇠는 분노의 ‘조절’이 아닌 ‘조장’이다. 특히 한국 사회에선 정치가 대표적인 분노 산업이 되고 있다. 한국인들이 현재 느끼는 가장 큰 갈등 인식은 ‘여당과 야당의 갈등’, 즉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다. 한국 사회의 정치 양극화와 정치 과잉 현상은 곧 정치 유튜버의 수익으로 이어지는 등 분노가 돈이 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 소개
필자는 서울대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근무했다. 스탠퍼드대(Stanford University)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국제대학원 연구교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쳤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개봉한 대니 보일 감독의 영화 ‘28일 후’는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서로를 닥치는 대로 죽이고 정부와 사회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된 영국의 상황을 묘사한다. 끔찍하고 잔인한 화면 구성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영화지만 분노가 바이러스의 형태로 감염된다는 설정의 신선함 덕에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그땐 그저 흔한 좀비 영화의 하나로, 감독의 상상력이 다소 엉뚱하고 기발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 후 분노가 어떻게 우리 사회를 집어삼키는가를 생각하면 보일 감독의 예지력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그는 분노라는 감정의 폭발적 전염성에 일찍이 주목한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보자. 여성 혐오, 성소수자 혐오, 노인 혐오, 아동 혐오, 조선족 혐오, 무슬림 혐오 등 혐오의 새로운 변종들이 끝도 없이 생산된다. 인터넷에는 온갖 혐오의 언사가 넘쳐나고 정치는 분노를 부추겨 세를 규합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실제로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통해 드러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건의료빅데이터에 따르면 ‘습관 및 충동 장애’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2010년 4375명에서 2021년 7715명으로 증가했다. (그림 1) 습관 및 충동 장애는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정신질환으로 분노조절장애가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분노조절장애로 진료받은 사람은 2015년 1721명에서 2019년 2249명으로 5년 동안 30% 이상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