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데뷔한 신예인 이경 작가가 SF 엽편소설을 연재합니다. SF 장르의 인기는 인공지능, 로봇과학과 같은 과학기술이 바꿀 미래에 대한 대중들의 큰 관심을 보여주는 문화적 트렌드입니다. ‘콩트(conte)’라고도 불리는 엽편소설은 ‘나뭇잎 한 장’에 비유할 정도로 아주 짧은 분량에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담아내는 문학 양식입니다. 짧은 스토리를 읽으면서 작가의 SF적 상상력을 따라가는 동시에 신선한 영감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20X2년 6월22일
메타 오피스로 전면 출근한 지도 벌써 1년째가 되었다. 우리 회사 메타 오피스는 실제 사무실을 그대로 가상현실 내에 복제한 공간이다. 전면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청계천 뷰부터 사무실 전경, 심지어 데스크 배치까지도 똑같은 모양이라 로그인할 때마다 새삼 놀라곤 한다. 인적 교류에 의한 상호작용 시너지를 위해 아예 층별로 복제하는 시스템을 택했기 때문에 다른 팀 아바타들까지 복작복작한 거, 그래서 이 가상현실 안에서도 오고 가며 마주칠 때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는 것도 똑같고 말이다. 그러니 메타 오피스 체제로 전환된 후 사실상 내 생활에서 바뀐 것은 지옥 같은 출퇴근길에서 벗어난 것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도 삶의 질이 이렇게나 비약적으로 상승하다니!
메타 오피스가 아니었다면 이곳 강릉에서의 한 달 살이도 영원한 버킷리스트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아침에도 강릉 교동의 제일 유명한 베이커리에 다녀왔다. 관광객이 몰리기 전 이른 아침, 아침거리로 진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갓 구운 크루아상을 사서 돌아오는 작은 행복. 여기서 한 달 살이를 하고 있지 않았다면 결코 맛볼 수 없는 행복이다.
1년 전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도 여긴 서울과 달리 하루가 여유롭게만 느껴진다. 오늘 퇴근 후에는 경포 해변에 앉아 저녁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 한 캔을 따야겠다. 달맞이 맥주의 행복이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 하루도 파이팅!
6월23일
망했다. 망했다. 망했다.
구현 가능한 표정이 제한돼 있는 모니터 속 아바타인데도 팀장님이 화내시는 건 너무 무서웠다. 당신 도대체 누구야?! 하고 소리 지르셨을 땐 정말 스피커가 터지는 줄 알았다. 사실 오피스는 실제로 터졌지……. 팀장님이 사태를 파악하자마자 메타 오피스를 강제 종료했으니까.
그런데 진짜 망한 건 내일 아침 9시 본사에 세팅된 긴급회의다. 진짜 망했다. 빨리 기차표를 예매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