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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名에서 使命을 읽다

‘싸고 좋으면 통해’ 미니멀리즘 뚝심

신현암 | 236호 (2017년 11월 Issue 1)


2017년 7월 말, 무인양품(無印良品, 일본에서는 ‘무지’라 통칭) 유라쿠초(有楽町)점이 재개장했다. 무인양품 브랜드야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으니 뭐가 대수냐 하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이 매장은 향후 무인양품이 나아갈 방향을 얘기하고 있다. 음료와 식사(cafe & meal)가 가능토록 하고, 책 2만 권을 들여놓은 게 벌써 2년 전이다. 지금은 매장 안에서 신선한 농산물과 작은 오두막집까지 팔고 있다.

도쿄에는 유라쿠초점 외에도 특색 있는 매장이 몇 곳 더 있다. 하라주쿠(原宿) 근처에 있는 무지 파운드(Muji Found)라는 매장은 1983년에 건립된 1호점 자리를 그대로 쓰고 있다. 31평으로 작은 면적이지만 1호점인 탓에 마니아들 사이에선 무지의 ‘성지’로 통한다. 이곳은 무지와 같은 철학을 지닌 다른 나라의 제품을 발굴해 전시하고 판매한다. 2017년 가을에는 한국, 중국, 대만, 홍콩 등 동아시아 상품을 소개하고 있다. 도쿄역 근처에 있는 무지투고(Muji To Go)라는 매장은 여행용품만 판다. 취급 상품의 범위가 좁은 만큼 다양한 제품이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인양품을 만든 쓰쓰미 세이지(堤清二)는 세이부(西武)그룹 창업자의 둘째 아들이다. 
1964년 창업자가 급사하면서 회사의 핵심 부문인 부동산과 철도를 이복동생인 쓰쓰미 요시아키(堤義明)가 물려받았다. 당시 이류 백화점에 불과했던 세이부백화점을 물려받은 세이지는 절치부심해 1970년대 이후 세이부백화점을 명문 백화점으로 키운다. 아울러 세이유(西友, 양판점), 패밀리마트(편의점) 등 다양한 유통업체에 진출하면서 막강한 유통그룹으로 사세를 확장한다.

세이지는 1960년대 말 미국 시어즈&로벅(Sears & Roebuck) 사무실을 구경하면서 우연히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한다. 몇몇 직원들이 카메라 40여 대를 모아 놓고는 굳이 필요하지 않은 고급 기능을 제거하면 어느 정도 가격 하락이 가능할지 토론하고 있었던 것이다. 메이커에 유통업체가 원하는 수준의 제품 생산을 의뢰하고, 생산자 브랜드가 아닌 유통업자 브랜드를 붙이겠다는 토론 내용은 세이지가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는 10여 년이 지난 1980년 회사 내 임원진과 외부 전문가 집단을 불러 모아 만든 PB(Private Brand) 상품이 오늘날 무인양품이다. 당초 세이유 매장에서 판매하다가 인기를 끌자 1983년부터 전용 매장을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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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양품이란 문자 그대로 ‘브랜드는 없지만 좋은 품질의 제품(No Brand, Good Product)’이라는 뜻이다. 브랜드 제품은 가격이 비싸다. 물론 이유가 있다. 소비자 머릿속에 자사 브랜드를 각인하기 위해 상당한 광고비를 쓴다. 포장지마저도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근사하다. 무인양품은 이 비용을 절약했다. 아울러 상품의 본질에만 집중했다. 제품 출시 당시 광고 슬로건 또한 “이유 있게, 싸다”였다. 브랜드 제품이 비싼 이유가 있다면 무인양품은 똑같은, 아니 그 이상의 품질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값이 싸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군더더기를 버리고 기본에만 충실했기 때문에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는 합리적인 설명도 잊지 않았다. 이 메시지는 소비자들에게 큰 공감을 일으켰다. 그 결과 최초 40개에 불과했던 무인양품 제품 가짓수는 오늘날 7000여 개로 늘어났다. PB로 탄생한 탓에 제품 브랜드가 먼저 등장했고 회사는 1989년에 설립된다. 무인양품과 같은 좋은 제품을 꾸준히 만들겠다는 의지로 사명을 지었다.

양품이란 무엇인가? 무인양품은 “좋은 제품에 대해 미리 준비된 정답은 없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좋은 제품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훌륭한 생산 파트너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고, 소비자의 관점에서 좋은 제품의 새로운 가치와 매력을 탐구하고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품의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추구하는 전통은 37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이어진다. 그 비결은 뭘까? 무인양품의 아트디렉터였던 다나카 이코(田中一光)는 20세기 일본 최고의 디자이너로 손꼽힌다. 그는 2002년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감지한다. 그리고 자신처럼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디자이너 하라 켄야(原研哉)에게 무인양품의 아트디렉터 자리를 내준다. 다나카가 단순함(simple)을 추구했다면 하라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내려놓고 비움(empty)의 경지까지 파고든다. 창업자는 5년 전에, 1대 아트디렉터는 15년 전에 각각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무인양품의 기본 철학은 40년 가까이 변함이 없다. 강한 사명(使命)을 지닌 기업은 이래서 대단
하다. 

신현암 팩토리8 대표 [email protected]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성균관대에서 박사(경영학) 학위를 받았다. 제일제당에서 SKG 드림웍스 프로젝트를 담당했고, CJ엔터테인먼트에서 근무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및 사회공헌연구실장을 지냈다. 저서로 『브랜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공저)』 『잉잉? 윈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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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현암

    신현암[email protected]

    팩토리8 연구소 대표

    신현암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경영학)를 받았다. 제일제당에서 SKG 드림웍스 프로젝트 등을 담당했고 CJ엔터테인먼트에 근무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및 사회공헌실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설렘을 팝니다』 『잉잉? 윈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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