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 간 한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경영 이론으로 ‘블루오션 전략’을 꼽을 수 있다. ‘재빠른 추격자(fast follower)’에 머무르던 많은 한국 경영자는 기존의 경쟁 틀에서 벗어나 새 시장을 개척하라는 블루오션 전략의 메시지에 열광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새 시장을 힘겹게 개척한 기업이 어이없게도 모방에 치중한 후발 주자에 밀려난 경우가 적지 않다. 저가 화장품 시장을 개척한 미샤의 비즈니스 모델을 거의 그대로 따라한 더페이스샵이 선전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일은 자주 발생했다. 제너럴 모터스(GM)는 자동차 생산성 혁명을 불러일으킨 포드를 따라잡았고, IBM은 메인프레임시장에서 유니박을 제쳤으며, 복사기 및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 후발주자이던 캐논은 선도적 혁신 기업을 모두 제치는 괴력을 발휘했다.
많은 경영학자가 어떤 조건 또는 어떤 전략을 취할 때 모방 기업이 혁신 기업을 따라잡는지에 관해 연구해 왔다. 선두 기업이 오만에 빠졌거나, 기술 또는 고객 수요 등 환경이 급변하거나, 전략적 차별화에 성공한 경우 모방 기업의 약진 현상이 자주 발생했다.
최근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미시간대 로스 비즈니스스쿨의 센딜 K. 에티라즈(Sendil K. Ethiraj) 교수 연구팀이 ‘모방적 시장 진입이 성과에 미치는 영향(Performance effect on imitative entry)’이란 제목으로 공개한 워킹페이퍼(working paper, 수정·보완 작업이 진행 중인 논문)가 그것이다. 연구팀은 미국 제약업체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모방 전략을 취한 후발 주자의 시장 진입 시기가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했다.
논문 저자들은 모방 기업이 너무 일찍 시장에 진출할 경우 불확실성에 따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불리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너무 늦게 진출하면 선두 기업이 시장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브랜드 파워를 확보함으로써 모방 기업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다른 조건이 같다는 전제 아래에서 시장 진입 시기가 모방 기업의 성과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연구팀이 미국 제약업체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모방 기업의 시장 진입 시기가 늦을수록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한 연구팀의 설명은 이렇다. 선두 기업이 혁신적 제품을 출시한 후 시간이 지나면 그들이 사용한 기술이 무엇인지, 어떻게 시장에서 성공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유출된다. 따라서 후발 주자는 이를 토대로 선두 업체와 유사한 제품을 손쉽게 만들 수 있을 뿐 아니라 선두 업체를 능가하는 제품도 출시할 수 있다. 선두 주자가 기술적 장벽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후발 주자가 더 차별화한 제품으로 선두 기업을 위협할 수 있다.
에티라즈 교수팀의 연구 성과에 대해 모방 제품 출시 시기를 무작정 늦추는 것이 좋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선두 업체의 성공 요인을 확실히 파악, 이들을 능가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시간을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특히 산업마다 시계바늘 돌아가는 속도가 달라 무작정 시기를 늦추는 게 어떤 경우엔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연구팀의 성과는 혁신 성공 기업에도 시사점을 준다. 선도 기업은 현재의 성공에 만족하고 혁신 노력을 게을리 할 경우 더 차별화한 제품으로 추격하는 후발 주자에게 언제든지 자리를 내주게 된다는 사실을 의식해야 한다. 블루오션을 찾기도 어렵지만 지켜내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어려운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