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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국가브랜드 활용 방안

삼성이 덕볼 만한 국가브랜드는 없다? 멕시코 맥주도 길 찾았는데…

박재항 | 140호 (2013년 11월 Issue 1)

 

 

미국의 국가 이미지는 혀끝의 강렬한 미각에서 시작됐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초콜릿과 코카콜라, 과자 등단것을 한국은 물론 독일에도 뿌렸다. 소련이 1946 6월 서독에서 서베를린으로 가는 길을 통제하자 미국 등 서방측은 베를린에 필요한 물자들을 비행기로 보내는베를린공수작전을 감행했다. 서베를린으로 물자를 나르던 미군은건포도 폭탄도 떨어뜨렸다. 초콜릿과 사탕, 과자, 건포도 등을 작은 낙하산에 매달아서 비행기로 서베를린에 뿌렸고 서베를린 아이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초콜릿과 과자에 열광했다. 이런 모습은 한국전 당시 미군의 초콜릿에 열광하던 한국의 아이들과 비슷했다. 미국이라는 국가브랜드를 상징하며 많은 나라에 뿌려지던 달콤함의 정점에는 코카콜라가 있었다. 소설가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상류층으로 발돋움하려는 여성들이길거리에서 파는 냉차에 비해 엄청나게 비싸 아무나 마실 수 있는 음료가 아닌코카콜라를 마시면서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 미제는 어쩜 음료까지도 이렇게 맛있니. 왜 미국에 가려고들 그 야단인지 알 것도 같애.” 이 대목을 통해 코카콜라가 미국이라는 국가브랜드의 형성에 어떻게 기여했으며 반대로 미국이라는 국가브랜드가 코카콜라의 브랜드를 어떻게 강화시켰는지 잠시나마 엿볼 수 있게 한다.

 

미국이라는 브랜드를 만든 두 장군

 

미국에는 장군(General)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표적인 기업이 2개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 제너럴일렉트릭(GE)은 과거 경제적인 측면에서 미국이란 국가브랜드를 보여주는 아이콘이었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1953년 당시 제너럴모터스의 CEO이던 찰리 윌슨을 국방장관으로 지명했다. 국회 인준을 위한 상원청문회에서 한 의원이국익과 제너럴모터스의 이익이 충돌할 때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이냐고 질문했고 찰리 윌슨은미국에 좋은 것은 제너럴모터스에 좋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는 말을 남겼다. 제너럴모터스의 자동차와 함께 제너럴일렉트릭의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제품들은 미국적인 풍요의 상징이었다. 제너럴모터스는 2009년 정부의 구제금융으로 겨우 살아났지만 실질적으로는 파산했다. 파산의 조짐은 1980년대 초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로 연비가 좋은 효율적인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늘었으나 제너럴모터스는 그런 변화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1990년대 경영학계에서 실패사례로 가장 많이 거론되던 기업이 제너럴모터스였을 정도다. 필자가 2005년 미국의 어느 경영대학원 교수에게왜 제너럴모터스는 20여 년 동안 연속해서 실패사례만 만들어내고 있는가. 실패로부터 그렇게 전혀 배우지 못할 수가 있단 말인가라고 묻자 그 교수는 관료적인 조직과 문화, 조직이기주의, 거대한 몸집 등의 문제점을 거론한 뒤미국이 갖고 있는 모든 문제점을 제너럴모터스가 갖고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1980년대 제너럴일렉트릭의 CEO를 맡아경영의 신으로 추앙받았던 잭 웰치도 2000년대 초 퇴임할 때 모습은 씁쓸했다. ‘중성자탄 잭 웰치란 별명이 사람들의 입에 다른 긍정적인 칭호보다 자주 오르내렸다. 직원들을 무자비하게 해고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제너럴일렉트릭은 기업 슬로건 ‘We bring good things to life’처럼 생활에 좋은 것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자비하게 구조조정의 칼을 휘두르는 미국식 경영의 대표로 자리잡았다. 코카콜라의 달콤한 맛도 이미지가 변했다. 코카콜라는 패스트푸드와 함께 비만의 주범으로 지목을 받았다. 비만으로 호흡을 헐떡이며 영양불균형에 시달리는 미국인의 모습이 미국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 한편을 차지했다. 코카콜라의 전설적인 광고처럼세상 사람들에게 노래를 가르쳐주는것이나 맥도날드처럼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미국의 모습은 이미 색이 바랜 지 오래다. 제너럴모터스는 2012년부터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과거처럼 규모를 자랑하는 거만한 태도는 지양하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은 잭 웰치가 물러난 뒤 환경 부문에서 사업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등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코카콜라 역시 최근희망(Hope)’을 주제로 한 캠페인을 전개하며 부정적인 연상을 떨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애플, 미국 대신 캘리포니아를 브랜드로 활용하다

 

과거 미국의 국가브랜드와 동일하게 여겨지던 기업들은 현재 미국의 국가브랜드와 일정 부분 떨어져 있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미국이 위세를 떨치고 경외의 대상이던 시절과 비교할 때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그래도 이들 브랜드는 미국이 연상되고 미국을 상징하는미국의 브랜드라는 사실을 떨쳐버릴 수 없다. 애플과 모토롤라가 최근 광고에서 벌인 작은 다툼은 눈여겨볼 만하다. 올해 6월 애플은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캘리포니아의 애플이 디자인)’를 카피로 내건 광고를 대대적으로 집행했다. 애플의 강점인 디자인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미국이라는 배경은 너무 크고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애플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나 실리콘밸리는 협소하고 지명도도 떨어진다. 그래서 중간 형태로 캘리포니아를 내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캘리포니아만 해도 남북한을 합친 면적보다 두 배 가까이 크다. 그런데 7월 모토롤라가 ‘Designed by you. Assembled in the USA(당신이 디자인하고 미국에서 조립됐다)’를 내세운 스마트폰 광고를 시작했다. 애플에 딴죽을 걸면서도 함께 편승해 가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였다. ‘Designed by∼’ ‘Assembled in∼’는 모두 낯설다. 우리에게는 ‘Made in∼’이 익숙하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이 보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서 해외 생산을 늘려가는 상황에서 과연 ‘Made in∼’의 브랜드가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1990년대에 어느 미국 친구가 이런 질문을 했다. “파나소닉TV를 샀는데 태국의 마쓰시타 단지에서 생산된 것이면 일본제인가, 태국제인가?” 꼼꼼한 일부 일본 소비자는 제품 뒤에 새겨진 ‘Made in∼’이라는 생산지를 확인하고 좀 더 비싸더라도 일본에서 생산된 것을 샀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Made in∼’은 생산(조립)지와는 다른 측면에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노동환경 측면에서 국제적 시민단체들의 감시를 받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포츠용품 업체인 나이키다. 나이키는 전 세계 프로 스포츠 시장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압도적인 영향력에 힘입어나이키-미국의 브랜드 관계가 일정 부분 형성됐다. 하지만 나이키의 제조공장들이 주로3세계 국가에 설립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런 사실이 나이키의 브랜드 이미지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후 나이키의 비인간적이고 탐욕스런 모습이 또한 미국의 국가브랜드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애플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애플 제품의 상당수는 중국 팍스콘에서 생산된다. 팍스콘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으며 팍스콘 노동자의 자살 소식은 미국 언론까지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애플은 최근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캘리포니아의 애플이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조립한다)’란 표기를 하기 시작했다. 생산지를 확실하게 표기하라는 국제단체들의 항의에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반면 광고에서는 부정적인 연상을 가져올 ‘Assembled in China’라는 표기를 뺐다. ‘Assembled in∼’ ‘Made in∼’보다 좁은 분야에 낮은 등급의 인상을 준다. 지금은 ‘Made in∼’조차도 국가브랜드의 위상에 따라 변용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모토롤라는 미국이라는 국가브랜드를 자신과 일체화하려는 시도를 자주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무전기와 달에 처음 착륙했을 때 사용한 통신기기, 미식축구에서 코치들이 사용하는 송수신기 등을 광고와 홍보물에 활용했다. ‘기술 미국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대표적인 브랜드가 바로 모토롤라다. 그러나 휴대전화에서 1990년대 말부터 노키아와 애플, 삼성, LG 등에 밀리면서 모토롤라는 통신기기는 물론 제조 부문에서 뒤지고 있는 미국의 실상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최근미국에서 조립했다며 미국의 국가브랜드와의 연계를 다시 강화하고 있는데 역효과만 내지 않을까 예상된다. 우선 미국인들이 미국에서 조립된 제품에 이전처럼 좋은 점수를 주고 있지 않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런 경향이 더 짙다.

 

높아지는 원산지 오인지율

 

미국 마케팅 컨설팅업체인 앤더슨애널리틱스가 2007년 미국 375개 대학생 1000명을 대상으로 유명 브랜드의 국적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57.8%가 삼성전자를 일본 기업이라고 대답했다. 한국 기업이라는 응답은 9.8%에 불과했다. LG전자의 경우 41.9%가 미국 기업으로, 26%는 일본 기업으로 알고 있었다. 한국 기업이라는 응답은 8.9%에 그쳤다. 한국 제품을 다른 나라 제품으로 오인하는 비율도 86%로 핀란드(96%)와 덴마크(92%) 뒤를 이어 네덜란드와 함께 공동 3위였다. 핀란드 기업인 노키아를 일본 기업으로 알고 있는 응답자는 53.6%였고 덴마크 기업인 레고를 미국 기업으로 알고 있는 응답자도 61.1%에 달했다. 원산지 오인지(誤認知)율이 가장 높았던 기업은 노키아(Nokia)였다. 4.4%만이 노키아가 핀란드 기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앤더슨애널리틱스는미국 대학생들이 사용 제품의 국적을 잘 모르거나 미국이나 일본 및 독일 제품일 것으로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무지가 휴대전화 제조업체, 특히 한국 기업들에 노키아나 모토롤라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이런 분석을 그대로 적용하면 노키아가 1990년대 중반 모토롤라의 아성을 무너뜨린 것은 미국인이 원산지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삼성과 노키아를 일본이나 미국 기업으로 오인하는 사람은 각각 68.3% 66.2%로 비슷했다. 휴대전화와 MP3플레이어, 비디오게임, 스테레오, 컴퓨터, 자동차, 의류, 초콜릿, 시계 등 9개 품목에 대한 원산지 선호도는 일본이 휴대전화부터 스테레오, 자동차까지 5개 품목에서 1위였다. 미국이 3개 품목에서 1위였고 스위스가 시계에서 1위를 차지했다. 휴대전화 시장에서 일본의 존재는 미미하다. 일본의 소니와 산요, 파나소닉이 1990년대 말까지 미국시장에서 5위권을 차지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한국 기업들에 밀리기 시작했다. MP3플레이어도 소니의 워크맨(Walkman) 브랜드가 잊을 만하면 신제품을 출시하며 당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아이팟(ipod)에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일본이 휴대전화와 스테레오 등의 분야에서 선호도 1위를 기록하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광고 전문지 <애드버타이징 에이지(Advertising Age)>는 이런 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첫째, 원산지 이미지의 중요성이 떨어지고 있다. 특히 물리적인 국경을 넘어서 서로 소통하고 놀 수 있는 인터넷과 함께 자란 젊은 세대들은 원산지라는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원산지를 노골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마케팅은 갈수록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지리, 특히 미국 밖의 세계에 가장 무지하다. 아예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도 않는다. 일본의 경우도 2005년 일본지리학회에서 고교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언론에서 빈번하게 거론하는 국가의 위치를 골라내라는 조사를 했다. 대학생 43.5%가 이라크의 위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원산지 이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인가. 원산지의 이미지는 여전히 제품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다. 다만 과거와 비교할 때 전체적으로 영향력이 조금 떨어졌을 뿐이다. 원산지에 기초한 브랜드 만들기가 전혀 효과가 없다는 주장은 아니다. 원산지를 부각시키거나 숨기는 것은 내가 추구하는 브랜드 이미지와 관련해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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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재항[email protected]

    - (현)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 연구소장
    - 이노션월드와이드 마케팅 본부장
    -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 미래연구실장
    - 기아차 마케팅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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