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진 서울대 인문대학장(국사학과 교수)은 ‘인문학의 위기’를 ‘인문학 열풍’으로 바꾸면서 관련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기업체 고위 경영자 및 고위 공무원, 정치인 등을 대상으로 지난해 가을 개설한 인문학최고경영자과정(AFP·Ad Fontes Program)은 수강생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 과정의 이름인 ‘Ad Fontes’는 ‘원천으로’라는 뜻의 라틴어로 그리스, 로마의 인문적 전통을 되살리자는 르네상스 시대 지식인들의 구호에서 따왔다.
‘강의의 감동’ 회의서 얘기하기도
AFP과정은 ‘역발상’에서 나왔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이미 많이 나온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위기라는 말에 동의 할 수 없었습니다. 인문학이 다른 부문, 특히 기업에 해줄 말이 많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창조경영이나 크로스오버, 융합 같은 것에서 인문학 빼고는 말이 안 되잖습니까? 그래서 정면승부를 해보자는 승부욕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난해 9월 1기 수강생 39명이 모였다. 이철우 롯데쇼핑 사장, 김인철 LG생명과학 사장, 백경호 우리CS자산운용 사장, 이계안 국회의원 등 쟁쟁한 CEO와 유명 인사들이 포함돼 있었다. 1기생들의 호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수업을 듣고 난 후 ‘인문학의 팬’을 자처하는 이들이 줄이어 나타났다. 수업료가 비싸다고 투덜대던 모 기업 사장은 자기 회사의 이름을 ‘인문학적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어떤 분은 전날 밤 들은 강의에 감동받아 다음날 아침 간부회의에서 인문학 이야기를 했답니다. 그러자 간부들은 ‘사장이 이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더군요. 그런데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니 회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어느새 쌍방향 대화가 가능해졌답니다. 폭넓게 이야기하면서 좋은 아이디어도 나오고, 결과적으로 경영에 도움이 된 것이죠.”
AFP 과정의 효과는 수강생들의 화술(話術)에서도 나타났다.
“외국 CEO나 지도자들은 유머를 활용하거나 감동을 주는 연설을 잘 합니다. 국내 지도자들의 연설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죠. 그런데 이 수업을 듣고 난 뒤 말하는 능력이 많이 늘었더군요. 과정이 끝날 때쯤 대부분 아주 멋지게 연설들을 하십니다. 아마 수업 시간에 들은 여러 이야기로 ‘재료’가 많아져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인문학은 인간성 회복 위한 학문
이 학장은 인문학의 가장 큰 가치는 ‘사회정화 기능’에 있다고 강조했다.
“인문학은 사회를 성찰하는 눈을 키워줍니다. 세상을 넓게, 그리고 보통 때와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해주지요. 성찰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게 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성을 회복하게 해줍니다. 그런 면에서 인문학은 사회의 ‘기반’입니다. 바닥이 잘 다져지면 경제지수 올리는 데 급급할 때보다 사회가 더 빨리 발전할 수 있습니다. 개별 기업 차원에서도 인문학을 통해 사업을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서울대 인문대학은 AFP 과정의 수혜층을 확대하기 위해 올해 여름부터 언론 및 출판계 인사와 교사, 일반인을 대상으로 두개의 인문학 과정(100명 규모)을 개설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