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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영학회 Business Round Table

융합의 시대, 전략은 옵션일 뿐…

한인재 | 60호 (2010년 7월 Issue 1)
 
한국경영학회와 한국CEO포럼이 1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개최한 ‘산업융합시대의 전개와 기업전략의 새로운 접근’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컨버전스(융합)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무엇보다 시나리오적 사고와 유연한 대응, 전방위적인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아일보와 동아비즈니스리뷰(DBR), 딜로이트 컨설팅 후원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는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한정화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최경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정수진 AEA인베스터즈 자문역, 김억 딜로이트 컨설팅 이사 등 경영학계와 산업계 임원 80여 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자들은 경쟁이 격화하고 업종 간 장벽이 무너지면서 산업과 기술의 융합 트렌드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며, 이런 환경에서 기업이 생존하려면 전략적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섣불리 예단해선 안 되며 여러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경영환경 변화에 맞춰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조직이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의 정답만을 예측하고 전략을 수립해 자원을 집중 투입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토론자들은 융합의 시대에 성장은 외부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다른 기업들과 협력함으로써 다양한 기술과 제품, 사업 영역을 창조적으로 결합시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서 온다고 강조했다. 또 산업 융합을 뒷받침할 정부의 법령과 정책이 선진국에 비해 5년 이상 뒤떨어져 있어, 한국 기업들이 상용화 및 표준화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융합의 시대
김경준 딜로이트 대표는 기조 발제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로 기술과 기술의 결합 또는 제품과 제품의 결합이라는 의미로 활용돼왔던 컨버전스(융합)의 범위가 시장, 산업, 학문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과 출판업을 결합시킨 아마존 킨들과,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에 콘텐츠와 유통망까지 결합시킨 애플 아이폰이 대표적 성공 사례다. 김 대표는 “애플 아이폰은 제품 자체 시장뿐 아니라 앱스토어라 불리는 콘텐츠 시장을 창출했다”며 “2008년 애플의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판매량 기준으로 3%에 불과했지만 매출 기준으로는 15%, 영업이익 기준으로는 40%를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애플이 보유한 자체 핵심 제조 기술은 없지만 외부의 기술과 디자인, 아이디어를 창조적으로 결합해 감성적 가치를 극대화했다는 주장이다.
 
김 대표는 국내에서 융합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 스크린골프를 꼽으며 “스크린골프는 한국이 앞서 있는 디스플레이, 센서 등 정보기술(IT)과 스포츠 사업을 융합시켜 연 1000억 원에 달하는 시장을 창출했다”고 말했다.
 
 
딜로이트 컨설팅에 따르면, 향후 융합산업 시장은 2005년 277억 달러(약 24조 원) 규모에서 2015년 1628억 달러(약 202조원) 규모로 6배 가까이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정보기술(IT)과 나노기술(NT)의 융합이 창출할 시장의 규모만도 980억 달러(약 122조 원)에 달할 것이란 예상이다(그림1).
 
 
유연한 전략과 협력 마인드가 성공의 열쇠
김 대표는 “융합을 통해 변화하는 산업 구조 속에서 새로운 경쟁구도가 발생하며, 이는 시장 간 경쟁과 기업군 간 경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만 하더라도 애플의 앱 스토어 진영과 구글의 안드로이드 진영 간 경쟁으로 전개되고 있다. 즉 개별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여러 기업의 연합군 간의 경쟁이다.
 
김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특정한 예측을 근거로 전략을 수립해 실행하다보면 예측이 틀렸는데도 전략을 계속 실행하는 ‘전략적 모순’이 나타날 수 있다”며 “미래의 전략적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전략을 옵션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이사는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융합의 시대에 적응 발전하기 위해서는 내부의 기술 자원과 외부의 지식 자원을 결합시켜 새로운 혁신모델을 창출하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돈과 시간을 쏟아야 하는 ‘하이테크(high-tech)’보다는 내부와 외부의 기술과 서비스를 잘 엮어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는 ‘하이패키징(high-packaging)’이 중요한 시대라는 설명이다.
 
기업의 융합 전략에 대해 정 자문역은 “융합의 실마리를 기업 내부에서부터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한 회사 내에서도 다양한 기술과 제품이 존재하는데 이를 융합하기 위한 임직원 간의 협업과 최고경영진의 독려, 인센티브 체계가 미흡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실 기업 내 융합도 어려운 상황에서 계열사 간 융합, 나아가 외국 기업까지 포함하는 외부 협력사와의 융합을 추진하기는 요원하다는 지적이다.
 
융합 만능주의의 부작용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최 교수는 “단순한 기능 결합과 융합은 구분해야 한다. 여러 가지 기능들을 물리적으로 모아놓으면 오히려 꼭 필요한 핵심 기능의 사용이 불편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스마트폰에 멀티게임플레이어를 결합시켰으나 오히려 핵심 통화 기능이 불편해져 소비자의 외면을 받은 노키아의 ‘N-Gage’를 들었다. 또 TV에다 프린터 기능을 넣는 것과 같이, 비용만 올라가고 소비자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례도 지적했다. 융합은 공급자 시각에서의 단순한 기능이나 기술의 결합이 아니라 소비자 시각에서 접근해 1+1 이상의 혁신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최 교수는 “기술 선점과 표준 선점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최고의 기술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며 “기업 전략에서 융합 트렌드는 ‘기술 공학’이라기보다는 ‘소비 과학’ 측면에서 접근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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