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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의 굴욕’과 아주 오래된 진실

박재희 | 51호 (2010년 2월 Issue 2)
일본 도요타 자동차의 제동 장치 결함과 대대적 리콜 사태는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를 제치고 1위로 등극했던 이 회사에 몰락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안이한 자세로 일등에 안주하려 했고, 결함을 신속하게 인정하지 않고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던 잠깐의 실수가 모든 경영학자들이 가장 유망하고 경쟁력 있다고 인정한 도요타를 깊은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세계 최고의 품질이라고 자부했던 도요타 제품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무너졌다는 점이다. 비록 자본도 넉넉하고, 풍부한 인력도 있지만 사회적 신뢰가 붕괴되면 조직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공자의 ‘무신불립(無信不立)’의 철학이 적중하고 있는 듯하다.
 
<논어> 안연(顔淵) 편에는 공자의 제자였던 자공이 공자에게 국가 경영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내용이 나온다. 공자는 정치의 세 가지 중요한 요소를 들고 있다. 첫째 식량이다(足食). 먹는 것, 즉 물질적 자본과 경제가 안정돼야 한다. 둘째는 군대다(足兵). 자위력, 즉 병사들과 무기 등의 군사적인 힘이 있어야 한다. 셋째는 백성들의 신뢰다(民信之). 백성들이 지도자들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국가 경영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에서도 역시 중요하다. 물질적 자본(食)과 인적 자본(兵), 그리고 조직원과 사회의 기업에 대한 신뢰(信)는 한 기업의 생존과 발전에 필수적인 요소다.
 
자공은 공자에게 이 세 가지 요소 중에 부득이 한 가지를 빼야 한다면 무엇을 뺄 것인가를 물었다(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 何先?). 공자는 군대를 포기해야 한다고 대답했다(去兵). 자공이 나머지 두 가지 중에서는 무엇을 빼야 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공자는 물질적 자본을 포기하라고 하였다(去食). 공자의 논리는 간단했다. ‘옛날부터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죽어왔다. 그러나 백성들의 신뢰가 없으면(無信) 조직의 존립이 불가능하다(不立).’ 무신불립! 신뢰가 없으면 조직도 없다는 공자의 명쾌한 주장이다.
 
신뢰는 조직의 생존을 위해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덕목이다. 직원이 회사 경영자를, 경영자가 직원을, 주주가 경영자를, 협력 업체가 기업을, 소비자가 기업 제품을 믿지 못한다면 어떤 조직도 존립할 수 없다. 도요타가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품질도 아니고, 자본 확충도 아니다. 나아가 인력 조정이나 새로운 협력 업체의 육성도 아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의 제품에 대한 신뢰, 도요타에 대한 사회적 신뢰의 회복이다. 세계적으로 모든 자동차 업계와 자국의 자동차 회사를 육성하려는 국가의 타도 대상이 된 도요타가 리콜 사태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면 공자의 말대로 신뢰에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 기업이 세계 주식 시장에서 저평가되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신뢰의 부재라는 주장이 있는 것을 보면 확실히 신뢰는 조직의 경쟁력이며 가치다. 명품이 비싼 이유는 소비자들의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비싼 만큼 튼튼할 것이란 신뢰, 가격이 어디에서든 통일돼 내가 남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사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란 신뢰, 잘못된 물건에 대해 회사가 강력한 제재를 가할 것이란 신뢰, 훗날 중고로 팔아도 어느 정도 가치가 인정될 것이라는 신뢰 등 소비자가 느끼는 다양한 형태의 신뢰는 그 제품의 선호도를 높이는 동기가 된다. 공장이 불에 타서 모두 없어지고, 직원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져 없어져도 기업과 브랜드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남아 있다면 기사회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경영자가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조직원의 신뢰가 있다면 지속적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믿을 신(信)자, 신뢰는 비록 오래된 진실이지만 여전히 미래의 경쟁력이자 놓칠 수 없는 가치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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