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는 행복한 결혼을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는 ‘두 사람이 얼마나 뜻이 잘 맞는가’가 아니라 ‘뜻이 맞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해결하는가’라고 얘기했다. 결혼에 대한 톨스토이의 생각은 신흥시장의 몇몇 다국적 기업들이 채택한 새로운 인수합병(M&A) 접근 방식에 깔려 있는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인수한 해외 기업을 통합하기 위해 서두르는 대신, 피인수 기업에게 독립적인 운영을 허락한다. 마치 소유권에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를 통해 인수 기업과 피인수 기업은 각자가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우리가 무간섭 접근 방식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인 파트너링(partnering)을 택하면 피인수 기업은 독립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며 독자적으로 조직을 운영할 수 있다. 인수 기업은 피인수 기업의 고위 경영진, 특히 최고경영자(CEO)를 내보내지 않고 인수 이전과 같은 권한과 자율성을 보장해준다. 인수 기업은 자사의 가치관을 하나의 지침으로만 제시할 뿐이지만 피인수 기업 내에 새로운 목적의식을 심어준다. 인수 기업은 제한된 일부 분야에서만 시너지 효과를 추구하며, 피인수 기업이 추진하는 사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시너지 효과를 추구할 분야를 세심하게 선택한다.
요컨대, 인수 기업은 피인수 기업을 전략적 동맹 관계에 놓여 있는 파트너로 대한다. 이를 통해 신흥시장의 다국적 기업들은 선진국 피인수 기업이 갖고 있는 조직적인 추진력을 전혀 위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다. 통합으로 생기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도 줄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인수 기업과 피인수 기업이 지식과 최고의 관행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도 있다.
인도의 AV 비를라 그룹, 마힌드라 그룹, 타타 그룹, 터키의 얼커 그룹, 중국의 뉴소프트, 브라질의 암베브 등 여러 개발도상국 출신의 대기업들은 이런 무간섭주의 M&A 방법을 사용한다. 타타 그룹이 한국의 대우상용차를 인수했던 지난 2004년, 타타 그룹의 라탄 타타 회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타타는 대우차를 한국에서 한국 기업처럼 운영하고, 한국인들에게 경영도 맡길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대우차는 인도의 타타 자동차와 함께 글로벌 파트너링업체의 일환으로 활동할 것이다.”
이런 파트너링은 최근 M&A의 특징으로 굳어지고 있다. 신흥시장 출신의 대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을 두고 펼쳐지는 인수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도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다. 터키의 얼커 그룹은 그간 세계 비즈니스계에서 그다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얼커는 2007년 세계적인 식음료 업체 캠벨 수프(Campbell Soup)의 계열사이자 프리미엄 초콜릿의 명가인 고디바를 인수했다. 얼커 그룹의 뮤랏 얼커 회장은 고디바 인수를 추진하고 있을 동안 왜 고디바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이미 많은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다. 내게 고디바는 초콜릿 시장의 스푼메이커 다이아몬드(이스탄불의 톱카프 궁전에 있는 86캐럿짜리 다이아몬드)다. 그 다이아몬드가 더욱 반짝이도록 윤을 내고, 펜던트도 만들고, 세계 곳곳에서 그 다이아몬드를 볼 수 있게 하고 싶다.”
얼커 회장은 인수를 추진할 때부터 벨기에와 미국의 합작회사인 고디바를 사사건건 간섭하는 방식으로 관리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 덕에 얼커 그룹은 고디바를 인수할 수 있었다. 마힌드라 그룹의 자동차 부품 부문 해외 인수 기획자인 헤만트 루스라도 파트너링 접근 방식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마힌드라 그룹이 인수한 유럽 기업의 경영 팀은 마힌드라 그룹 최고의 대변인이다. 우리가 인수를 시도하는 기업의 경영 팀이 걱정거리를 갖고 있다면, 이미 마힌드라 그룹에 인수된 기업의 경영 팀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만 마련해주면 된다.”
이런 접근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장담하기에는 아직 지나치게 이를 수도 있다. 역외 기업 인수는 성공 가능성이 낮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고무적인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총 204개 해외업체를 사들인 인도업체들의 재정 성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조사 대상 중 많은 인도업체들이 파트너링 방식을 사용해왔고, 상당한 주가 상승도 이뤄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발견하고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역외 기업 인수를 추진한 인도업체의 주가는 인수 후 평균 1.76% 상승했다. 다른 주요 요소들을 조정한 후의 수치인 만큼 역외 기업 인수가 주가 상승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역외 기업 인수가 주주 가치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이는 상당히 예외적인 결과였다. 1998년 독일 다임러는 ‘하늘이 맺어준 천생연분’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무려 360억 달러에 미국 3위 자동차업체 크라이슬러를 인수했다. 하지만 다임러는 애초에 기대했던 결과를 거두지 못했고, 결국 2007년 74억 달러에 크라이슬러를 매각하고 말았다.
역외 기업 인수를 추진한 인도업체의 고위 경영진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응답자들은 인수 결과에 만족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설문조사 방식은 7점 만점(‘강력하게 동의’할 때 7점) 중 주어진 문장에 동의하는 정도를 점수로 표시하는 것이었다. ‘이 인수를 실행하여 목표 중 대부분을 달성했다’는 문장에 대한 동의 수준은 평균 5.69점이었다. ‘인수의 결과 및 성과에 만족한다’는 문장에 대한 답은 5.47점이었다. 피인수 기업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최근 인도업체에 인수된 미국과 유럽의 10개 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에서 응답자 중 50% 이상이 새로운 기업 소유주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M&A가 진행된 후 직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최고 인재가 유출되는 사례가 흔하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이 결과 또한 무척 놀라웠다. 이는 신흥시장의 대기업들이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인수기업으로 성장한 원동력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난 2년 동안 세계 경제가 열악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신흥시장의 다국적 기업들은 파트너링 방식을 고수했다. 이들은 비용 절감 및 효율성 개선에 관해 피인수 기업을 지나치게 압박하지 않았다. 피인수 기업들이 경제위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상당한 경영 재량권을 줬으며 재정 지원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제 개발도상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선택한 재미있는 이 전술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다른 나라의 기업들도 M&A 후에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지 평가해봐야 한다.
파트너링,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인수를 진행한 후 기업들은 총 5가지 문제에 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M&A를 진행한 후 기업들이 전통적으로 택해온 통합 방법과 비교하면 파트너링 방식은 5가지 요소 모두 기존 방식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1) 조직 구조 인수가 끝나면 대부분 두 조직은 하나가 된다. 물론 목표, 절차, 보고 체계를 통합하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고, 영업비용 및 간접비를 절감할 수 있다. 사실 이는 대부분의 M&A가 이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상당수 신흥시장 출신 다국적 기업들은 해외에서 사들인 피인수 기업들을 흡수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피인수 기업들이 별도 조직을 유지하도록 허락했다. 심지어 자사와 유사하거나 관련이 있는 사업 부문에 속해 있더라도 거의 완전한 운영 자율성을 보장했다. 타타 그룹이 인수한 테틀리, 코러스, 얼커 그룹이 매수한 고디바, 브라질 직물회사 코테미나스가 사들인 스프링스 인더스트리즈는 소유주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3년 이상 독립 사업체로 운영되고 있다.
물론 피인수 기업의 독립성을 유지시키면 획기적인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인수 사례를 망쳐온 실수를 피할 수는 있다. 대개 두 기업이 통합될 때, 통합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인수 기업과 피인수 기업의 운영 및 비즈니스 활동에 혼란이 발생한다. 공통된 절차 및 보고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고 경영진이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그 과정 자체도 매우 복잡하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의 사기가 떨어지고 이직률이 급증할 때가 많다. 즉 작은 돈을 아끼려다 큰돈을 손해 볼 때가 많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