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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을 바라되, 최악에 대비하라

김호 | 40호 (2009년 9월 Issue 1)
1969년 7월 21일 새벽(한국 시각)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에 도착했으니 올해로 꼭 40년이 됐다. 하지만 인류의 달 착륙이 성공하기까지는 커다란 희생이 있었다. 1967년 1월 27 아폴로 1호에서 불이 나 발사대에서 훈련 중이던 3명의 우주 비행사가 숨졌다.
 
이 사고로 미국 상원에서 청문회가 열렸다. 한 상원의원이 “왜 화재가 발생했는가?”라고 묻자, 당시 우주 비행사 자격으로 청문회에 참석했던 프랭크 보먼은 “상상력의 실패 때문”이라는 의외의 답을 했다. 그는 “비행 중 일어날 수 있는 화재 상황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했지만, 누구도 지상에서의 화재 발생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상상력은 창조적 경영뿐 아니라 위기관리에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위기 사건이 일어나기 전 위험 요소를 찾아내고 관리하는 데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사실 기업들이 겪는 불행한 사건들의 대부분은 미리 예상할 수 있다. 맥스 베이저먼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저서 <90일 안에 장악하라(The First 90 Days)>로 유명한 리더십 컨설턴트 마이클 왓킨스는 위기 사건들을 ‘예상 가능한 놀라움(predictable surprises)’으로 규정한다. 미리 조직적으로 ‘배드 뉴스(bad news)’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게 문제지, 일단 미리 따져본다면 ‘생각지도 못했던 위기’란 그리 많지 않다는 말이다.
 
앞서 가는 기업들은 조직의 위기관리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상상의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상상의 기술 1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배드 뉴스는?
위기관리에 사용하는 상상의 기술은 쉽게 말해 ‘부정적 상상의 기술’이다. 위기 사건을 예방하는 데 낙천적·긍정적 사고는 ‘독약’이다. 즉 ‘괜찮겠지…’ ‘설마 일이 그렇게까지 악화되겠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위기관리 전문가들이 많이 인용하는 게 바로 ‘머피의 법칙’이다. 농담처럼 말하곤 하는 법칙이지만, 사실 이 법칙의 중요한 의미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개발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한다는 데 있다.
 
위험을 다루는 보험회사 직원이 만든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한 번의 위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29번의 유사 사건과 300번의 잠재 징후가 있다고 한다. 당신의 기업에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위기 역시 비슷한 패턴을 따르게 마련이다. 모든 기업에는 항상 수많은 징후들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에서는 징후를 발견한 직원이 훈련되지 않거나 어디에다 보고해야 할지 몰라서, 혹은 말해봐야 좋을 것 없다는 정치적 이유로 이에 대해 눈감아버린다.
 
2006년 3월 롯데월드는 놀이기구 탑승자 추락 사망 사고라는 위기를 겪은 뒤, 사죄의 의미로 무료입장 행사를 준비했다. 하지만 이들은 상상의 기술은커녕 상식적인 준비도 하지 못했다. 결국 수용 인원 2만 명을 훌쩍 넘은 10만 명이 롯데월드에 몰려 수십 명이 부상당하고 말았다. 무료입장 행사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표를 받기 위해 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예상했더라면 미리 인터넷 추첨 등을 활용해 혼란을 막을 수 있었다. 게다가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준비가 안 돼 있던 임원은 “시민들의 문화 의식이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라는 어이없는 발언으로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배드 뉴스를 찾아내기 위해 기업은 3가지 방법을 쓸 수 있다. 첫째, 자사에서 지난 5년간 발생했던 배드 뉴스의 연표를 만들어라. 매년 배드 뉴스가 반복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비슷한 위기 사례가 반복되는 경우도 흔히 발견된다. 둘째, 동종 업계에서 과거 3∼5년 동안 발생했던 위기 사례를 찾아봐라. 다른 회사에서 일어났던 위기는 언제든 우리 조직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셋째, 이슈 인덱스(issue index)를 만들어라. 앞의 2가지 조사와 현재 사업 환경(예를 들어 정부의 정책 변화, 소비자들의 최근 만족도 조사 등)을 고려해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이슈들을 가려내고, 이들의 우선순위와 범주를 정하는 것이다. 필자의 경험에 따르면 한 기업에서 향후 12∼18개월 동안 발생할 수 있는 이슈는 최대 10∼15개 정도이며, 우선순위 이슈는 보통 5개 내외에서 결정된다. 우선순위 이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초 자료다.
 
실제로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위기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사례를 살펴보자.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 A는 중요한 신제품 출시를 1년 앞두고 이슈 인덱스를 만들었다. 여기서 이슈란 미래에 자기 조직에 배드 뉴스가 될 수 있는 잠재적 이슈를 말한다. 신제품 출시를 담당하는 각 부서에서 팀장급으로 ‘브랜드 보호팀’이라는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했다. 그리고 동종 업계에서 과거 제품 출시 과정에 일어났던 각종 위기 사례들을 조사했다. 또한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위기관리 가이드에도 실렸던 이안 미트로프와 무랏 알파슬란의 ‘내부 테러리스트 게임’을 활용해 부정적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했다. 즉 제품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에서 부정적으로 볼 수 있는 이슈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이슈 개발 게임’을 활용해 이를 분류하고 우선순위를 나눴다. 주요 이슈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개발됐다.
 
베이저먼과 왓킨스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실험을 제안한다. 자신과 동료들에게 “현재 우리 조직에서 위기로 발전할 수 있는 예상 가능한 놀라움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롯데월드에서 무료입장을 담당한 팀이 이 질문을 놓고 한두 시간만 토의를 했더라면 앞의 경우와 같은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다. 헨리 키신저는 “(잠재) 이슈를 무시하는 것은 (실제) 위기를 초대하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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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호

    김호[email protected]

    - (현) 더랩에이치(THE LAB h) 대표
    - PR 컨설팅 회사에델만코리아 대표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공인 트레이너(CMCT)
    -서강대 영상정보 대학원 및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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