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브랜드 관리 이론에 따르면 어느 한 기업 또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정체성은 최대한 단순화시켜 일관되게 가져가야 한다. 하지만 이런 상식이 깨지고 있다. 브랜드 정체성을 멀티화하는 이른바 ‘멀티 브랜드 페르소나’가 필요한 시대다. 최근 오랜 역사를 지닌 브랜드가 전혀 다른 감각으로 브랜드 이미지 리뉴얼에 나서거나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브랜드들이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내놓는 현상은 브랜딩 역시 멀티 페르소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브랜드도 민첩하고 유연하게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어야 하는 시대다.
부캐는 대중문화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는 키워드다. 부캐 열풍의 대표 주자는 개그맨 유재석이다. 유재석은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변신해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라섹(라면 끓이는 섹시한 남자)’ ‘유르페우스(유재석+오르페우스)’ ‘유고스타(유재석+링고 스타)’ 등 여러 개의 부캐를 선보이며 부캐 열풍을 주도했다. 최근에는 가수 이효리, 비와 함께 ‘싹쓰리’라는 그룹을 만들어 ‘유두래곤’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비단 연예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다양한 일반인 부캐도 등장했다. 특히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의 대중화는 보통 사람들도 부캐를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 낮에는 변호사, 약사, 직장인인 일반인들이 저녁에는 SNS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거나 유튜브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는 일이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게 됐다.
그런가 하면 소비 시장에서 멀티 페르소나 트렌드는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편백족의 등장과 다양한 굿즈의 인기 등을 들 수 있다. 편백족은 필수적인 생활에 들어가는 예산을 절약해서 명품이나 값비싼 물건을 사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과거에는 최저가에 대한 수요가 있는 서민층과 고가의 사치품에 대한 수요가 있는 상류층을 소득 수준 기준으로 나누는 것이 익숙했지만 멀티 페르소나 시대에는 단순히 소득 기준으로 소비 유형을 나누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소비 양극화 대신 소비 양면화가 대중화된 것으로 멀티 페르소나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캐릭터나 굿즈의 인기 역시 멀티 페르소나 트렌드로 나타난 현상이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덕질’에 몰입하거나 다양한 취미를 갖는 경향이 있는데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다양한 캐릭터와 굿즈의 인기다. 취미 정체성이 중요해지면서 자신의 다면적 정체성을 소비로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부캐를 통해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거나 취미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모습은 더이상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브랜드나 기업도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멀티 페르소나 현상이 개인을 넘어 비즈니스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 또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기업 스스로의 정체성을 ‘멀티’화하는 멀티 페르소나 마케팅에 앞 다퉈 참여하고 있다.
원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오고 재미를 불러일으키고 직접 참여케 하는 시대, 본업보다는 부업이 주목받고, 본캐릭터보다는 부캐릭터가 뜨는 시대를 기업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대리만족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부캐를 만들어 참여하고 멀티 페르소나를 트렌디하게 끌고 가는 개인과 기업들, 그 이면에는 현대사회의 변화상과 그 변화에 적응해가는 과정이 자리하고 있다. 좀 더 내면적으로 파고 들어 이런 현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이고, 개인이나 기업들은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을지 논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