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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마케팅: 레드불의 문화 마케팅

익스트림 스포츠 하면 레드불! 음료를 팔기보다 문화를 창출하다

이종성 | 236호 (2017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모기업의 이름이 구단 명칭에 포함돼 있는 한국이나 일본 프로야구와 달리 북미나 유럽의 프로스포츠 구단은 기업의 이름을 노골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너지 음료 회사인 레드불은 사실상 모기업 홍보수단으로 프로 축구 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각종 익스트림 스포츠 대회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등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면서 에너지 음료회사의 업종을 재정의하고 나선 것이다. 에너지 음료 자체의 유해성 논란 때문에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던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면서 소비자들에게 레드불을 마시는 행위 자체가 ‘쿨’ 하다는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있다.
 

올 5월 유럽 프로축구 시즌이 끝날 때쯤 UEFA(유럽축구연맹)는 고민에 빠졌다.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서 레드불 잘츠부르크가 우승했고,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는 레드불이 구단 소유권을 갖고 있는 RB 라이프치히가 준우승을 차지해 두 팀이 2017∼18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출전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다. UEFA 규정에 따르면 동일한 회사 또는 개인이 운영하는 두 팀이 UEFA 주관 대회에 동시 출전할 수 없다. 승부 조작의 위험성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6월 UEFA는 두 팀의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을 허용했다. UEFA는 레드불 잘츠부르크의 경우 에너지 음료 회사인 레드불이 원래는 구단주였지만 현재는 스폰서에 불과하기에 공정 경쟁에 문제가 안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UEFA가 상업주의에 굴복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이 비난의 근본적 원인은 레드불이 두 팀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기업 또는 후원사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레드불은 왜 유럽 축구 무대에선 유례를 찾기 힘든 방식으로 축구 클럽을 운영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레드불 오너의 취향 등 여러 측면이 작용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에너지 음료회사가 갖고 있는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문화창조’와 관련이 깊다. 위대한 전통으로 지속되고 있는 기존의 구단 운영방식의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통해 레드불의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시키고자 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을 이해하기 위해 축구단 운영과 함께 레드불 스포츠 마케팅의 또 다른 축인 익스트림 스포츠 후원을 먼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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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트림 스포츠’ 후원으로 젊은 층에 쿨 이미지를 확립한 레드불

1987년 디트리히 마테쉬츠(Dietrich Mateschitz)가 오스트리아에서 창업한 에너지 음료 회사 레드불은 1990년대 에너지 음료 시장의 급팽창과 맞물려 함께 성장했다. 주로 젊은이들이 클럽에서 격정적으로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보드카 폭탄주를 만들 때 사용하면서 입소문을 타고 매출 규모가 비약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카페인과 타우린 성분 함량이 높은 음료에 대한 각국의 규제가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그 선두에는 프랑스, 덴마크, 노르웨이가 있었다. 이 가운데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가 큰 프랑스는 레드불 판매 전면 금지 조치를 고수하다가 EU(유럽연합)의 규정 때문에 2008년 이후 판매를 허용해야 했다. 독일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를 포함해 일부 주(州)에서도 레드불 콜라에서 코카인 성분이 추출됐다는 이유 때문에 판매가 금지되기도 했으며 13억 인구의 인도에서는 레드불 판매가 여전히 불가능하다.

일부 국가가 이처럼 전면적으로 판매를 막고 있다는 것도 기업 입장에선 리스크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은 레드불이 청소년 유해 음료로 분류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10∼18세 청소년들이 전체 레드불 매출의 약 68%를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치명적인 일이다. 실제 영국 학교 시설 내에서는 레드불을 판매할 수 없게 돼 있으며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에서는 청소년들에게 판매가 금지돼 있는 상태다.

이와 같은 문제 때문에 레드불은 일반 매체에 집행하는 단순한 제품 광고의 한계를 일찌감치 직감했다. 레드불이 대신 내놓은 전략은 익스트림 스포츠 대회 개최나 스타 선수의 인도스먼트(endorsement) 계약 등을 통해 새로운 스포츠 문화를 만들어 내는 일이었다. 단순한 에너지 음료 회사가 아닌 새로운 스포츠 문화를 창출하는 기업으로 인식되고자 했던 셈이다.

특히 극한 상황에서 도전을 통해 짜릿한 쾌감을 얻을 수 있는 익스트림 스포츠는 젊은 층이 좋아하는 종목이라는 점에서 레드불에는 더욱 매력적이었다. 레드불은 절벽 다이빙, 비행기 레이스, 스노보딩 대회를 연거푸 개최해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레드불이 익스트림 스포츠 문화를 만들어 내는 기업이라는 점을 혈기왕성한 젊은 층에게 어필하면서 청소년 유해 음료라는 기존 이미지는 조금씩 희석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출신 스카이다이버 펠릭스 바움가르트너가 레드불의 후원을 받고 지난 2010년 지상 39㎞ 상공에서 자유 낙하에 성공한 사건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활용한 레드불 마케팅 전략의 정점이었다. 레드불이 1년에 스포츠마케팅 비용으로 쏟아붓는 예산의 약 10%에 해당하는 3000만 달러를 들여 준비한 자유 낙하 이벤트는 유튜브 영상 조회 수만 4000만 건에 달하는 등 전략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축구 제국’ 창조에 시동을 건 레드불

레드불은 익스트림 스포츠뿐 아니라 직접 포뮬라1(F1) 레이싱팀을 창단하는 등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의 큰손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에너지 음료 시장의 급성장에 발맞춰 좀 더 대중적인 콘텐츠가 필요해졌다. 그래서 시작한 레드불의 원대한 꿈은 글로벌 축구 제국을 만드는 것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스포츠 콘텐츠인 축구를 활용하겠다는 의미였다.

레드불 본사가 위치한 오스트리아에서 첫 시동이 걸렸다. 레드불은 2005년 SV 카지노 잘츠부르크팀을 인수했다. 인수하자마자 팀의 명칭을 FC 레드불 잘츠부르크로 바꾸고 지금까지의 클럽 역사를 모두 지웠다. 심지어 클럽 홈페이지에 1933년인 팀 창단 시기를 레드불이 인수한 2005년으로 표기하기도 했다. 과거 클럽의 역사와 단절된 새로운 팀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같은 방식까지 사용했다는 점이 이들의 전략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레드불의 자금력을 바탕으로 FC 레드불 잘츠부르크는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지만 UEFA 주관 대회에 나갈 때는 제약이 있었다. 팀 명칭과 로고에서 당시 모기업이었던 레드불(현재는 스폰서)을 사용할 수 없게 하는 UEFA의 규정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FC 레드불 잘츠부르크는 UEFA 주관대회에 나갈 때 FC 잘츠부르크라는 명칭을 달고 경기에 출전해야 했다.

1년 뒤 레드불은 빠르게 성장하던 미국 축구 시장에 진출했다. 레드불은 FC 레드불 잘츠부르크 때와 마찬가지로 뉴욕/뉴저지 메트로 스타스팀을 인수해 ‘뉴욕 레드불스’로 팀 명칭을 바꿨다. 후원기업이나 모기업의 이름이 팀 명칭에 들어가는 것에 익숙지 않았던 미국 프로 스포츠계에서는 이 같은 시도를 좋은 시선으로만 보지 않았다. 스포츠 후원기업은 대개 경기장 내 광고, 유니폼 스폰서, 스타급 선수와 인도스먼트 계약을 맺는 식으로 마케팅을 하는 미국 프로 스포츠의 전통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레드불의 목표는 ‘전통에 대한 도전’이었다. FC 레드불 잘츠부르크가 클럽 역사에 대한 도전이었다면 뉴욕 레드불스의 창단은 미국 프로 스포츠 문화에 대한 도전이었다. 레드불은 결국 이를 통해 레드불이라는 브랜드를 더욱 대중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이 와중에 리그의 확장이 절실했던 MLS(북미프로축구)는 실용적인 측면에서 뉴욕 레드불스를 허용했다.

흥미로운 점은 레드불과 함께 글로벌 축구 제국 창조에 나선 시티풋볼그룹(City Football Group)도 뉴욕 시장에 관심을 쏟았다는 것이다.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이자 아랍에미리트의 억만장자 만수르가 세운 시티풋볼그룹은 2013년 뉴욕 레드불스의 라이벌인 뉴욕시티 FC 창단에 최대주주로 참여했다. 모기업의 이름이 시티풋볼그룹이라 팀 명칭에 ‘시티’를 넣은 것도 레드불과 닮은꼴이었다.

 

독일 축구 전통에 도전하는 RB 라이프치히

현재까지 레드불 글로벌 축구 제국의 핵심은 독일 분데스리가클럽 RB 라이프치히다. 2016∼17 시즌 1부 리그에 승격한 이 팀은 모든 축구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한때 분데스리가 1위를 달리다 결국 바이에른 뮌헨에 이어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RB 라이프치히의 플레이 스타일은 에너지 음료 회사인 모기업의 이미지와 매우 흡사하다. RB 라이프치히는 에너지 넘치는 압박 축구를 구사해 올 시즌 돌풍을 일으켰다. 과거 위르겐 클롭 감독(현 리버풀 감독)이 도르트문트에서 구사했던 게겐 프레싱(Gegenpressing, 전방위 압박축구)을 재연해 낸 셈이다. 상대방에게 공을 내줬을 때 빠르게 압박을 가하는 이 스타일은 이제 RB 라이프치히의 전매특허가 됐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RB 라이프치히의 정체성 이상으로 팬들의 관심을 끈 부분은 RB 라이프치히 클럽의 소유 구조와 팀 명칭 자체였다.

분데스리가는 클럽 소유구조에 대해 엄격하다. 그 어떤 기업이나 개인도 기본적으로 축구 클럽 지분의 50% 이상을 소유할 수 없다. 모든 클럽에서 최대주주는 팬이어야 한다는 철학이 반영된 제도다. 이 규정 때문에 구단 운영의 전권을 직접 행사하려고 하는 해외 자본이 독일 축구 클럽에 투자하기 어려웠다. 반대로 무분별한 해외 자본의 침투를 막고 여러 가지 구단 운영 정책 등에서 팬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티켓 가격을 결정하는 데도 팬들의 영향력이 매우 커 티켓 가격이 대체로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RB 라이프치히는 이 같은 분데스리가 규정에 우회적으로 도전했다. 우선 명목상 RB 라이프치히의 최대주주는 팬이다. 하지만 그들의 힘은 매우 제한적이다. RB 라이프치히에서 매년 구단운영과 관련된 중요 결정을 할 때 투표할 수 있는 회원은 17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욱더 문제가 되는 점은 RB 라이프치히의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1000유로를 내야 한다. 하지만 유료 회원이 된다고 하더라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회원이 되는 방법에 대해 클럽은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이를 두고 사실상 레드불이 RB 라이프치히 운영에 대한 전권을 휘두르기 위해 꼼수를 쓰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팀 명칭은 꼼수의 결정판이다. 기업의 이름을 팀 명칭에 쓸 수 없는 분데스리가의 규정 때문에 레드불은 라이프치히 앞에 접두사처럼 RB라는 약자를 붙였다. RB는 ‘Rasen Ball’의 약자다. 굳이 번역을 하자면 ‘잔디에서 하는 공놀이(축구의 비유적 표현)’라는 뜻이다. 모기업 레드불을 연상시키는 팀 명칭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만든 이름이다.

독일 축구의 전통에서 벗어나 있는 RB 라이프치히는 그래서 독일 축구 팬들의 ‘공공의 적’이 돼 버렸다. 심지어 우승을 밥 먹듯이 해 다른 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질투의 대상인 바이에른 뮌헨과 함께 축구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팀이라는 평가까지 내려졌으며 원정경기 때는 팬들의 야유도 심심치 않게 나올 정도다. 이쯤 되면 RB 라이프치히는 레드불이 노이즈 마케팅을 위해 인수한 팀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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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구 동독 지역 축구 열기를 부활시킨 RB 라이프치히

하지만 RB 라이프치히의 구단 운영 방식을 특수한 상황에 맞춘 전략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 이유는 RB 라이프치히의 연고 도시가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는 구 동독 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 동독 시절 중심도시 중 하나였던 라이프치히는 짧은 통독의 환희를 만끽한 후 안타깝게도 긴 경제적 침체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1989∼98년에 전체 도시인구의 20%에 해당하는 10만 명의 시민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속속 도시를 떠났고 이 사이 지역경제는 무너졌다. 라이프치히는 다른 많은 구 동독의 도시들처럼 지역 축구 클럽을 후원할 수 있는 기업을 찾기가 매우 힘들었고 이 빈자리를 레드불이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실제로 RB 라이프치히가 모기업인 레드불의 홍보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에 대해 홈 팬들은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분데스리가 최고 부자 구단 바이에른 뮌헨은 아우디, 아디다스, 알리안츠, 도이체텔레콤 등 대기업의 후원을 받을 수 있지만 라이프치히나 구 동독 지역 클럽들은 기업의 후원을 받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라는 주장이다. 결국 구 동독 지역에 위치한 축구 클럽들이 서쪽의 클럽들과 경쟁하려면 RB 라이프치히와 같은 모델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구 동독 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소외의식이다. 경제 또는 사회적 소외는 말할 것도 없고 축구 면에서도 구 동독 지역은 최근 주류에서 벗어나 있었다. 우선 2016∼17시즌 RB 라이프치히가 독일 프로축구 정상급 무대인 분데스리가에 승격한 것은 2009년 구 동독 지역 클럽이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한 이래 처음 있는 사건이었을 정도다.

또한 통독 후 초기에는 동독 지역에서 태어난 축구 선수가 독일 국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경우가 꽤 있었다. 미하엘 발락, 베른트 슈나이더, 옌스 예레미스 같은 구 동독 출신으로 독일 국가대표팀에서 비중 있는 활약을 했던 선수는 이제 찾기 힘들다. 지난 2014년 월드컵에서 독일 대표팀으로 출전한 구 동독 출신 선수는 토니 크로스가 유일했다. 이 때문에 독일 정론지 디 차이트는 “그 어떤 사회 분야에서보다 구 동독 지역이 소외된 부분은 다름 아닌 축구”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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