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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by Map

경험은 제품보다 강하다

송규봉 | 130호 (2013년 6월 Issue 1)

 

 

편집자주

DBR은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거나 혁신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하는 ‘Management by Map’ 코너를 연재합니다. 지도 위의 거리든, 매장 내의 진열대든, 선수들이 뛰는 그라운드든 공간을 시각화하면 보이지 않던 새로운 정보가 보입니다. 지도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지혜와 통찰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불황기에 증가하는 것들

 

불황기에 지갑은 닫힌다. 씀씀이가 줄어든다.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가장 먼저 영향을 준 곳은 당연히 뉴욕의 맨해튼이었다. 금융위기 이듬해 맨해튼의 주택 매매와 임대 거래는 20%가 줄었다. 맨해튼 중심가의 오피스 계약은 이듬해 봄철에만 23%가 감소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기처럼 뉴욕시민들은 물건을 사기보다는 다른 대안을 통해 만족감을 찾기 시작했다.

 

불황기에 늘어나는 분야가 있다. 대학원 응시율과 입학률이 올라갔다. 특히 신학대학원이 그렇다. 뉴욕에 있는 유대신학교와 유니언신학교의 박사 과정 응시자는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두 배가 늘었다. 유니언신학대 부학장 알랭 실베리오(Alain Silverio)불황기는 사람들을 더 영적으로 만든다고 강조했다. 뉴욕시가 운영하는 정신건강 상담전화의 신청자도 전년 동월 대비 13.4%가 늘었다.

 

불황기에 뉴욕시민들은 TV 시청에 2시간을 더 쓰고 집안일에 102분을 더 할애했다.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의 방문객이 늘고 문화예술 프로그램의 수강생은 5% 증가했다. 같은 기간 브루클린음악아카데미(BAM)가 진행하는 작은 라이브공연의 참석자는 25%, 예술영화관 관객은 15.5%가 증가했다. 경제위기 후 가장 두드러진 증가 추세는 자원봉사단체에서 확인됐다. 뉴욕의 무료급식단체(Citymeals-on-Wheels)에는 자원봉사 신청자가 32%나 증가했다. 경제위기는 사람들을 더욱 성찰하게 만들고 가족, 예술, 이웃에 대해 더 적극적인 태도를 만들어 주었다.1

 

영혼이 따라올 시간

 

인디언은 종종 질주하던 말을 멈춘다.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너무 빨리 달리면 영혼이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즐겨 인용하는 이야기다. 2007년 제주올레 길은 탐방객 3000명으로 시작했다. 2008 3만 명으로 늘어난 올레 탐방객은 2009 26만 명으로 폭발적으로 늘더니 2010 78만 명, 2011 109만 명을 넘긴 후 2년 연속 100만 명을 넘겼다.

 

우리는 어디에서 뒤처진 자신의 영혼이 따라올 수 있는 여유를 갖는가? 산림과학원과 충북대 연구팀이 숲길 걷기의 정신적 효과에 대한 공동연구를 발표했다. 성인을 대상으로 숲길과 도심을 걷게 한 뒤 정신적, 심리적 상태를 조사했다. 숲길을 걸은 후 인지능력이 20% 이상 향상됐고 우울감, 분노, 피로감, 혼란 등의 정서가 긍정적으로 변화했다.2

 

등산과 산책은 자연, , 소리, 바람, 공기 등 다양한 물리적 환경 속에 인간의 스트레스와 심리적 피로감을 감소시켜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걷기의 신체적 효능은 훨씬 더 많은 연구결과로 뒷받침되고 있다. 경제적인 부담도 적고 부상의 위험도 낮다. 매일 할 수 있으며 650개 근육과 206개의 뼈들이 모두 균형 있게 사용된다. 장시간 할 수 있고 폐활량과 지구력을 향상시키며 당뇨병과 고혈압에 도움이 크다.3

 

서울시민의 도보관광 참여의향은 96%로 압도적이다. 서울의 주요 거리에서 1026명을 대상으로 11 면접조사한 결과다. 시민들은 문화체험, 자연감상, 사색과 정신적 안정을 위해 걷고 보고 느끼길 원한다.4  서울시민의 걷기 열망은 500㎞ 떨어진 바다 건너 제주에서도 확인됐다. 제주올레 길 도보관광객에 대한 설문조사를 보면 서울시민의 비중이 3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5  바람 따라, 풍경 따라, 발길 따라 잠시 딴 세상으로 다녀오는 것이다.

  

 

 선호하는 여가활동 1순위

 

한국인의 여가시간을 들여다보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풍경이 드러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성인 남녀 5000명에게 물었다.6  ‘지난 1년간 가장 많이 이용한 여가공간이 어디였나라고 묻자 식당(33.7%), 근린공원(26.7%), 집주변 공터(21.3%)라고 답변했다. 일상적인 동선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답변이다.

 

여가시간에 주로 무엇을 하는지 중복응답으로 물었다. 1 TV 시청(77.8%), 2위 산책(31.2%), 3위 낮잠(23.6%), 4위 인터넷(23.5%), 5위 등산(19.4%)순이다. ‘희망하는 여가공간은 어디인가물었다. 1순위가 산(19.3%), 2순위는 식당과 근린공원(16.2%), 그 다음으로는 영화관(15.2%)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년 사이 유형별 여가활동 참여도를 비교해 보면 관광활동, 취미오락활동, 스포츠활동, 사회활동, 문화예술활동은 상당히 줄어들고 휴식은 2배 이상 큰 폭으로 늘어났다. ( 1) 금융위기 이후에 변화의 폭은 더 두드러진다. 등산은 한국인이 TV 시청 다음으로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여가활동이다. 40대부터 등산을 즐기는 비중이 빠르게 올라가 50대에 정점을 이룬다. TV 시청은 소득이 낮을수록 비율이 높지만 등산은 소득 수준과 크게 상관없이 두루 즐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도의 오름현상과 강원도의 내림현상

 

경기도의 주요 관광지 262개의 5년간 방문객 데이터를 분석했다. 골프장(79), 놀이시설(13), 문화시설(46), 사적지(28), 숙박시설(28), 자연·휴양(44), 체험·마을(24)로 구분했다. 2008년 경기도 주요 관광지의 누적 방문객 수는 6253만 명이었다. 동일한 262개 장소의 2012년 누적 방문객 수는 7053만 명으로 800만 명이 늘어 12.8%의 증가율을 보였다. 경기도에서 방문객의 상승을 주도한 관광지는 헤이리예술마을(파주), 김치스쿨(고양), 아트밸리(포천), 허브마을(안성) 체험·마을로 분류한 곳이다. 무려 252%의 증가율을 보였다.

 

강원도의 주요 관광지 245개의 5년간 방문객 데이터도 동시에 분석했다. 골프장(9), 놀이시설(15), 문화시설(37), 사적지(15), 숙박시설(61), 자연·휴양(63), 체험·마을(14), 해수욕장(31)의 데이터를 집계했다. 2008년 강원도 주요 관광지의 누적 방문객 수는 8896만 명이었다. 동일한 245개 장소의 2012년 누적 방문객 수는 7772만 명으로 1124만 명이 줄어 -12.6%의 감소율을 보였다. 전체적인 감소 추세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의자연·휴양은 늘었다. 특히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무릉계곡, 치악산 등 수려한 산세와 계곡이 있는 곳에 방문객이 크게 증가했다. ‘문화시설중에서는 역사안보전시관(화진포), 참소리박물관(강릉), 애니메이션박물관(춘천), 만해마을(인제) 등 문학관, 박물관, 식물원 등에 발길이 크게 늘었다. 바다는 줄어들고 산은 늘었다.

 

 

 

 

아웃도어, 가파른 상승세

 

등산과 걷기 열풍은 아웃도어 패션으로 번지고 있다. 국내 아웃도어 시장은 성숙기를 지나 금융위기 이후 꺾일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2006 11000억 원에서 2011 58000억 원으로 6년 동안 아웃도어 시장은 5배 넘게 성장했다.7  히말라야를 넘나들던 전문 등산복은 이제 도시 한복판으로 내려와 중고생들의 겨울 교복이 되고 주유소 아르바이트생의 작업복이 되거나 중장년들의 평상복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한국 아웃도어 시장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규모다. 수많은 아웃도어 브랜드의 본고장이며 인구 8000만 명이 넘는 독일보다도 한국 시장이 더 커진 것이다. 일본(2조 원)과 비교해도 큰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해외 브랜드의 국내 진출은 더 늘어나고 있다. 국내 브랜드의 상승세도 가파르다.

 

규모와 성장세가 모두 확인된 아웃도어 시장에는 당분간 후발 브랜드들이 추가적으로 더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캠핑 브랜드와 기존 아웃도어의 확장 브랜드도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정 고객을 겨냥한 전문화와 특화시장을 개척하고 선점하려는 노력도 치열해질 것이며 유통채널의 다각화도 시도될 것이다.

 

그러나 아웃도어의 성장은 어디까지 지속될 것인가? 불황의 징후에도 불구하고 아웃도어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이면에는 다른 씀씀이는 줄이더라도 등산과 트래킹에 필요한 용품만은 제대로 채비하고 싶은 소비자들의 선택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웃도어 브랜드 입장에서는 성장세가 꺾일 것을 대비한 전략을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

 

 

[사진1] 미국 REI 덴버매장의 실내 암벽등반 시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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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과 교육을 녹여내다

 

REI는 미국의 생활협동조합 아웃도어 전문기업이다. 2012년 매출액은 2조 원을 기록했다. 회비 20달러를 낸 평생회원이 1100만 명이다. REI는 지난 3월 말 128번째 매장을 오픈했다. 이 매장의 크기는 2600㎡로 국내 일반 아웃도어 매장보다 약 10배 이상 크며 종업원 수는 약 50명에 이른다.9  자사의 등산복과 등산화만을 주로 파는 국내 매장과는 달리 아웃도어 활동에 필요한 제반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지도와 캠핑 전문서적을 파는 코너가 따로 있다.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가 고객들과 맺고 있는 관계와 REI가 맺고 있는 관계를 비교할 때 몇 가지 짚어볼 메시지가 있다. 물론 출발부터 디자인과 제품 판매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국내 상황과 아웃도어 마니아들의 동아리에서 출발한 REI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럼에도 REI에서 배울 것이 있다면 일상활동 속에서 고객들과 호흡해나가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의 활용이다.

 

REI 1938년에 창업했다. 미국 서북부 지역으로 이민을 온 유럽 출신 등산동호회 회원 21명은 얼음이 쌓인 산악등반을 위해 장비를 찾다가 유럽에서 물건을 주문했지만 원하는 제품을 찾을 수 없었다. 동호회가 소박한 제조회사로 변모하게 된 스토리다. 회사는 성장했지만 동호회 문화는 여전하다.

 

REI 웹사이트는 판매도 권장하고 있지만 동시에 REI가 자체 개발한 여행상품과 교육프로그램의 비중이 강조되고 있다. 매장별 아웃도어 관련 교육, 캠핑, 행사, 그룹여행 등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역 공동체와의 친밀함을 높이고 있다.

 

덴버 지역의 REI 행사 소개 페이지를 들어가 보았다. 등산(Climbing), 탐험(Navigation), 아웃도어 피트니스, 아웃도어 사진촬영, 계곡카누(Paddling) 등으로 분류돼 있다. 올봄 시즌 야외활동으로는 GPS 탐험반, 등산기초반, 야생화 사진반, 나침반·지도 실습반, 암벽등반 교실이 있다. 가족들을 위한 하이킹, 트래킹, 바이킹 등 프로그램도 다양하다.(사진 2)

 

REI 덴버 매장은 원래 작은 화력발전소였다. REI가 문을 닫은 화력발전소를 인수해 매장으로 리모델링한 것은 단지 친환경 이미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발전소의 높은 층고를 이용해 고객체험을 극대화하기 위한 체험마케팅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사진 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REI 덴버매장에는 거대한 암벽등반 연습장이 설치돼 있다. 덴버 시민들은 비가 오는 날이나 한겨울에도 REI 매장에 들러 암벽등반을 연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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