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혁신
영업은 기업의 성과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 기업 내에서 가장 많은 인력이 소속돼 일하고 있으면서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부서 중 하나가 영업이다. 영업은 기업의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여겨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낙후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최근에 사회적 이슈가 된 남양유업과 대리점 간의 문제, 배상면주가와 대리점 간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 등이 이를 반영한다.
두 사건에서 겉으로 드러난 것은 영업현장에서의 밀어내기 행위, 상대에 대한 경시 행위, 오랫동안 관행처럼 이어져 왔다는 불공정 거래 행위 등이다. 또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갑을 문화와 단기 성과주의 집착 등도 문제의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밀어내기를 법으로 규제하고 갑을 문화 개선을 위한 노력을 벌인다 해서 고질적으로 누적돼온 관행들이 사라질 수 있을까. 이번 사건은 본질적으로 기업의 대리점 영업에 대한 전략의 부재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전략의 부재는 본사와 대리점 간 관계 설정의 부재와 일맥상통한다. 이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으면 이런 사건이 재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업 선진화도 요원하다. 이제 영업은 시대상황에 맞게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대리점과 본사의 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 관계로 재정립돼야 하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수립돼야 한다.
본사와 대리점 관계의 재정립
영업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는 ‘영업’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이번 불공정 거래 행위의 근본적인 원인은 영업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왜곡됨으로써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재 기업에 있어 대리점을 대상으로 하는 거래(‘간납’ 또는 General Trading(GT))는 막강한 유통력을 가진 대형 유통업체와 거래하는 것(‘직납’ 또는Modern Trading(MT))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통제가 쉬운 편이다. 거래 관계가 있을 때 한 당사자가 다른 당사자에 대한 통제가 어려우면 ‘협상’을 해야 한다. 반면 통제 가능하면 상대방을 ‘지배’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일부의 기업은 대리점을 ‘지배’하려 든다. 거래관계에 있어서 일단 ‘지배’의 관계가 성립되면 언제든 마음 먹은 대로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방치’된 상태로 놔두기 또한 쉽다.
일반적으로 대리점은 영업과 물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영업 전략이 없는 상태에서 본사는 대리점과의 관계 설정에 힘쓰기보다는 대리점의 영업과 물류 기능을 지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이 나타난다. 이런 체제를 개편해서 본사는 영업을 담당하고 대리점은 물류를 담당하게 하는 식으로 서로 간의 역할을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지배와 방치의 관계가 아닌 협력과 조화의 관계를 이룰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역할에 대한 조정이 있어야겠지만 역할을 바꾸는 절대기준은 ‘고객 서비스 향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어야 한다.
대리점의 측면에서도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대리점 스스로가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경우다. 양면성이라는 것은 “대리점은 내 사업이니 본사가 간섭하지 말아달라”는 주장을 펴기도 하지만 때로는 “왜 본사가 잘 돌봐주지 않는냐”라는 상반된 요구를 동시에 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양면성은 본사나 대리점 양자 간 서로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이 부분이 명확해진다면 비정상적인 대리점 압박이나 저급한 거래관행도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 ‘장사꾼’과 ‘사업가’의 차이는 투자를 하고 안 하고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대리점 성공에 있어서 중요한 핵심사항 중의 하나는 대리점 주가 자신을 ‘사업가’로 규정하고 자신의 사업 성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느냐의 여부다. 여기서 투자라는 것은 단순히 자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과 시간, 열정이라는 무형의 투자도 포함한다. 대리점의 거래 당사자인 본사 또한 재원을 마련해 일정 부분 대리점의 성장을 위해 건전한 투자를 해야 한다. 이것이 본사와 대리점 간 상생의 본질이다. 만일 본사도 단순한 장사꾼처럼 투자를 하지 않고 대리점 또한 그러하다면 양자 간의 관계에는 희망이 없다.
협력과 조화의 중요성
본사가 대리점을 ‘지배’하는 조직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증상이 있다. “영업을 잘 한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이상하게 변질되는 것이 하나다. 실제 본사가 대리점을 지배하는 조직에서는 대리점에 대해 밀어붙이기를 잘하는 직원이 “불도저와 같은 실행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또 영업을 ‘단순, 무식, 과격’이라고 정의하는 조직도 마찬가지다. 이는 영업을 비하하는 표현같지만 이런 말이 자주 나오는 조직들은 대체로 대리점을 압박하는 직원을 더 우대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런 조직에는 밀어내기를 잘하거나 대리점 손목을 비트는 영업이 만연해 있을 확률이 높고 심지어 대리점을 압박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마치 ‘특수 활동’으로 미화되기도 한다.
대리점(또는 가맹점)과 거래를 하는 데 있어서 종종 “우리가 남이가?”라는 표현을 쓰는 사례를 볼 수 있다. 이는 대리점과 본사 간 협력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들리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남과 나를 혼동하는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즉, 기업에 전속된 대리점주가 ‘거래 파트너’와 ‘직원’의 경계선에서 애매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어떤 상황에서는 남이고 어떤 상황에서는 나와 같다고 여겨지면 거래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고 사심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 이런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5C를 바탕으로 한 관계 재정립이 필요하다.
사회적 자본: 신뢰사회를 대변하는 표현인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대리점과 본사 간에도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거래에 있어서 ‘사회적 자본’은 “투명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협력과 조화”를 말한다. 대리점과 본사의 공동 목표는 시장을 확대하고 고객만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대리점을 관리하는 영업의 초점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을 확충하는 활동에 맞춰야 한다. 본사와 대리점의 관계가 ‘사회적 부채(Social Debt)’가 돼서는 안 된다.
5C: 구체적으로 대리점을 관리하는 영업사원의 역할과 교육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다. 영업사원의 역할은 5C로 요약할 수 있다. 5C는 통제(Control), 조정(Coordination), 조언(Counseling), 소통(Communication), 컨설팅(Consulting)을 의미한다. 남양과 배상면주가 사건은 영업사원의 역할이 ‘왜곡된 통제(Control)’에만 국한됐기 때문에 발생했다. 많은 기업들은 영업사원들의 역할이 5C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시키지도 못했고 이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여건도 마련하지 않았다. 영업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기업이라면 영업사원의 역할정립과 교육훈련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관계설정을 위한 전략적 결정
기업 본사와 대리점 간 제대로 된 관계설정을 위해서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전략적인 방향설정을 도와줄 수 있는 세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첫 번째 사례는 본사와 대리점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한 예다. 세계적인 소비재 식품기업인 N사는 PSP(Pure Saving Plan)라는 프로그램을 가동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PSP프로그램에서 본사는 고객에게 보다 큰 가치를 줄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을 구성하고 고객은 PSP프로그램에 따라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본사로 직접 주문을 하며, 대리점은 본사가 주문받은 패키지를 고객에게 배달하며 현장 서비스를 충실히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 포인트는 본사와 대리점의 역할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데 있다. 본사는 영업을, 대리점은 물류를 담당하는 형태로 역할을 명확히 정의하면 협력적 비즈니스 관계를 구축할 수 있으며 불필요한 문제를 막을 수 있다.
두 번째는 대리점의 규모에 대한 의사결정 사례다. 최근 국내 굴지의 식품기업인 P사는 300여 개의 대리점을 165개로 줄이면서 대리점의 대형화를 꾸준히 유도했다. 대리점의 숫자가 줄어들었지만 매출과 수익성은 오히려 높아졌다. 큰 대리점과 작은 대리점은 경영방법, 고객 서비스의 질, 클레임 대처 방법,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수준 등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기업은 대리점의 규모, 성장단계, 처한 상황 등에 따라 전략적 관리 방향을 정한 뒤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리점의 성장을 유도해서 사업가형 대형 사업파트너로 변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규모가 작은 생계형 대리점으로 구성하되 지역 범위(Coverage)를 잘게 쪼개서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세 번째는 대리점과의 거래 관계에서 프로세스와 투명성을 높인 사례다. 최근 몇몇 기업에서는 본사 영업사원이 대리점주가 사용하는 발주 시스템에 아예 접속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단순한 조치지만 본사 영업사원이 발주 시스템에 접속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대리점으로 밀어내기를 막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거래 투명성을 높이는 의미 있는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영업조직의 힘은 영업을 할 수 있는 전략(Plan, 기획력), 구조(Do, 조직력)와 평가(See, 동기부여)의 선순환에 의해 발현된다. 구태의연한 영업을 선진화하려면 이 세 가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상생의 시대다. 기업은 높은 투명성과 윤리성을 요구받고 있다. 이제는 ‘영업’이 선진화돼야 한다. 불합리한 영업 관행이 기업에 치명적 위기를 주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 영업 신진화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최용주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email protected]
필자는 ‘사회적 자본’을 주제로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 제약회사 및 식품회사의 현장사업본부장 및 부사장, IBS컨설팅그룹 대표를 역임했으며 학계(Academy)와 업계(Business), 컨설팅(Consulting) 분야에서 두루 경력을 쌓았다. 현재 aSSIST 교수이자 기획협력처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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