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Q 아이스 치킨
작년 초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 및 후쿠시마 원전 폭발에 따라 원자력 발전소 가동 중단이 이어지면서 일본 전역은 심각한 전력 부족에 시달리게 됐다. 아이러니하게 이러한 전력 부족 사태는 일본 요식업계에까지 영향을 끼쳤는데 그 대표적인 트렌드가 더운 여름철에 잘 팔릴 수 있는 신개념 냉(冷) 메뉴의 개발이었다. 냉규동, 냉도넛 등 업체별로 다양한 냉메뉴가 쏟아지는 가운데 프라이드치킨 업체도 이러한 ‘역발상’에 동참했다.
아이스 치킨의 유래 - 역발상의 시작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14개 점포를 운영 중인 ‘유메유메도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치킨 전문 브랜드이자 특색 있는 제품으로 명성이 높다. 이 회사는 ‘히야시 치킨’이라는 차가운 치킨 브랜드를 개발했다. 이 ‘아이스 치킨’은 섭씨 180도에서 25분간 튀겨낸 치킨에 특제 카레와 스파이스를 버무려 영하 25도에서 30분간 얼려 완성된다. 냉동실이나 냉장실에 보관했다가 즐기는 차가운 치킨으로 ‘프라이드 치킨은 바삭하게 튀겨 따뜻하게 먹어야 한다’는 기존의 통념을 한순간에 깨버리는 신제품이었다.(사진1)
출시 이후 이 제품은 입소문을 타고 나름 성공적인 판매고를 올리면서 도쿄, 후쿠오카 지역의 유명 백화점에까지 입점할 정도로 다양한 판로를 확보했다. 이러한 신개념 트렌드는 국내 최대의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BBQ를 통해 지난 8월 한국 시장에도 소개됐다. BBQ는 그동안 국내 치킨업체 최초로 미국, 중국, 스페인 등 세계 43개 국의 프랜차이즈 사업에 진출했고 매장 또한 일반 배달형, 테이크아웃형, 호프형, 멀티콘셉트 카페형 등으로 세분화해 운영하는 등 혁신적인 사업모델을 꾸준히 도입해 온 성공기업이다.
BBQ가 출시한 ‘아이스 치킨’ 신제품은 일본에서 유행한 제품 콘셉트를 차용하긴 했으나 ‘역발상’ 콘셉트의 독특함과 일본에서 검증된 사례라는 점에서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실제로 메뉴 개발을 주도한 BBQ 세계식문화연구소 담당자는 출시에 앞서 “치킨의 맛과 온도에 대한 상식을 파괴한 신제품으로 기존 치킨 전문점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이색 메뉴여서 고객들의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출시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이 제품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매출부진이라는 측면에서의 정량적 기준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진 2>에서 볼 수 있듯이 광고와는 다른 제품의 실제 모습과 소비자들이 블로그를 통해 드러낸 제품 평가 내용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이스 치킨이라면서 획기적 신제품이라더니 정말 새롭더군요. 식은 간장 치킨 맛이었습니다. 거기에 뜯을 곳도 별로 없어서 (부위를 정확히 모르겠지만 모든 조각의 가운데에 뼈가 있었습니다.) 배도 부르지 않더군요. 그 결과로 타사 양념치킨을 따로 시켜서 냠냠했습니다.”
“어렵게 주문해 배달돼 온 아이스 치킨을 처음 마주한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한다’ ‘고추 말린 건 줄 알았다’ ‘뼈가 다 보인다’ ‘닭목 치킨 아닌가’ ‘치킨 다 먹고 뼈를 쌓아놓은 것 같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살코기는 조금밖에 없고 닭뼈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모습에 모두가 실망했다.”
“음식은 먹어봐야 그 진가를 아는 법. 한 조각씩 손에 들고 뜯기 시작했다. 차가운 치킨이라 그런지 고기가 질겨 먹기 힘들었다. BBQ는 아이스 치킨을 ‘빠삭빠삭’하다고 표현했지만 바삭하다기보다는 오래 돼서 딱딱한 느낌이었다. 흔히 ‘치맥’이라 줄여 말하는 치킨과 맥주의 조합은 따뜻한 치킨의 경우에만 매력적이다. 아이스 치킨을 뜯는 우리들 누구도 맥주를 원하지 않았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을까? 요약하자면 1) 마켓 센싱(Market Sensing) 의 실패와 2) 잘못된 마케팅 믹스(4P: Product, Price, Place, Promotion)의 실행이라는 전반적인 마케팅 전략의 실패라고 볼 수 있다. 실패 원인을 자세히 살펴보자.
아이스 치킨 실패의 원인 1 - 마켓 센싱 프로세스의 결여
BBQ의 아이스 치킨 출시 단계에서 첫 번째 문제점은 소비자의 욕구와 시장 흐름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는 ‘마켓 센싱(Market Sensing)’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즉, 한국 소비자 니즈에 맞는 제품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려가 부족했다. 대신 콘셉트의 독특함과 일본에서의 성공 스토리를 중시했다. 지나치게 회사(Manufacturer)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얘기다.모니터그룹의 조사 결과, 국내 소비자들의 치킨 전문점 메뉴 선택 시 고려요인을 살펴보면 음식의 맛이 47.8%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조리 시 위생(17.7%), 신속성 (7.0%), 재료 선택(6.6%), 메뉴의 다양성(6.3%)순으로 나타났다. 즉, 치킨을 주문하는 국내 소비자들은 치킨의 맛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아이스 치킨을 실제 구매하고 먹어본 소비자들의 맛이나 질감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앞서 설명한 일본 유메유메도리의 히야시 치킨은 원전 발전 중단 등에 따른 국가적 전력 부족 상황에서 더운 여름철 다양한 냉메뉴를 통해 더위를 잊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니즈와 이를 반영한 일본 요식업계 전반의 트렌드에 기반한 것으로 한국의 아이스 치킨 출시 상황과는 달랐다. 즉, 철저히 마켓 센싱에 기반한 역발상 신제품 출시였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켓 센싱은 역발상 마케팅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영국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나 LG생활건강에서 내놓은 뽑아 쓰는 티슈 형태의 섬유유연제인 샤프란 아로마시트 같은 제품은 철저한 마켓 센싱에 기반해 성공한 대표 사례다.다이슨은 날개 없는 선풍기를 내놓기 전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 고객들의 안전성에 대한 니즈와 에어컨 대비 선풍기가 갖는 제품가격 및 전기료 측면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다는 시장 기회를 정확히 읽고 날개 없는 선풍기를 내놓았다. 이에 따라 선풍기에 날개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림으로써 안전성과 편의를 배려하는 역발상 제품인 ‘에어 멀티플라이어’를 개발, 공전의 히트를 쳤다. LG생활건강의 샤프란 아로마시트는 소비자 행동관찰 조사를 벌여 섬유유연제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 제품 개발에 반영한 사례다. 조사 결과, 그동안 섬유유연제의 부드러운 감촉이나 향기, 정전기 방지 등 성능을 중시한다는 소비자 설문 조사와는 달리 소비자들은 섬유유연제의 용기 무게 때문에 사용할 때마다 힘들어 할 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적정량을 사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간파했다. 이에 따라 LG생활건강은 액상제품 대비 부피와 무게를 10분의 1로 줄인 시트형 섬유유연제를 개발했다. 제품 사용시 무거운 용기를 들다가 유연제를 바닥에 쏟는 번거로움을 원천적으로 없앤 것이다. 게다가 티슈박스 형태로 만들어 보관과 사용 용이성도 높였다. 세탁물의 양에 따라 한 장씩 뽑아서 쓰는 형태로 만들어 정량 사용도 가능해졌다.
반면 미국에서 개발된 1인용 전동 스쿠터인 세그웨이는 BBQ 아이스치킨처럼 마켓 센싱 프로세스가 결여됨으로 인해 실패한 대표 사례다. 미국 발명가 딘 카멘이 만든 세그웨이는 오뚝이의 균형 메커니즘을 이용해 중심을 잡고 몸의 움직임만으로 전진, 후진, 회전이 가능한 최첨단 스쿠터다. 출시 당시 ‘도시의 출퇴근 풍경을 바꿀 혁신적 제품’이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기대 이하였다. 도로에서 이용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배터리 지속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도시 직장인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출시 1년 반 동안 일부 경찰이나 경비원 등 제한적인 고객군에게만 고작 6000여 대가 팔린 데 그쳤다. 아이스 치킨처럼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혁신적 아이디어에만 집착했던 게 실패 이유였다.
아이스 치킨 실패의 원인 2
- 마케팅 믹스(4P) 전략의 실패
아이스 치킨은 마케팅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4P 전략의 실행 과정에서도 문제점이 노출됐다. 첫째, 제품(Product) 측면에선 독특한 콘셉트로 초기에 일부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적은 양과 익숙하지 않은 식감으로 소비자의 거부감을 유발해 지속적인 판매가 이뤄지지 않았다. 1인분은 반 마리에 불과한데 급랭시킨 아이스 치킨이 일반 치킨에 비해 부피가 작다 보니 포만감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다. 또 광고에서 표현했던 바삭바삭한 식감과 달리 딱딱하고 질긴 식감으로 오히려 제품에 대한 악평을 자초했다.둘째, 가격(Price) 측면에선 한 마리 분량의 일반 프라이드치킨이 1만6000∼1만8000원인 것에 비해 아이스 치킨은 반 마리 분량에 테이크아웃 가격이 9900원, 내점 주문 또는 배달 가격은 1만1900원으로 상당히 비싸게 책정됐다. 이는 아마도 급랭 등 추가 공정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게 책정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배달 주문의 경우 2개 이상만 가능해 실질적인 가격은 최소 2만3800원의 매우 높은 수준이어서 이 또한 판매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셋째, 유통(Place) 측면에 있어서도 판매 경로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문제점이 있었다. 전 매장에서 주문 가능하다고 하는 광고와 달리 실제로 아이스 치킨을 판매하는 매장 수는 매우 적었다.아이스 치킨을 먹기 위해서는 판매 매장이 어디인지 소비자가 직접 알아내서 방문하거나 전화 주문을 해야 했다. 실제로 필자가 본 기고문을 쓰는 동안 필자의 집과 회사 근처 약 5∼6군데의 매장에 전화를 해봤으나 아이스 치킨을 판매하는 가맹점은 없었다. 심지어 본사 콜센터 또한 어느 매장에서 이 메뉴를 판매하고 있는지 알고 있지 못했다. 출시 3개월 만에 ‘팔기를 포기했다’는 해석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지막으로 판촉(Promotion) 또한 매체의 다양성이 제한적이어서 광고 및 구전효과가 미비했을 뿐만 아니라 가맹점주들의 제품에 대한 비선호로 인해 채널 내 마케팅까지 역효과를 내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점도 실패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독특하면 다 성공? 기본에 충실한 마케팅이 정답
우리는 언제나 독특하고 혁신적인 제품이나 사업모델이 나오면 탄성을 지르고 이에 환호한다. 스티브 잡스가 주도한 애플의 iPod, iPhone, iPad가 그랬다. 그 혁신의 정도가 기존의 통념을 깨는 수준의 ‘역발상’적 제품이라면 더 큰 관심을 보여왔다. 하지만 우리는 앞서 살펴본 사례에서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바로 독특하다고 다 성공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고객의 숨겨진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적절한 마케팅 믹스 전략을 통해 실행해야만 실제 현실에서 성공할 수 있다. ‘역발상’의 아이디어는 언제나 독려돼야 하지만 이를 사업화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물론 필자의 해석이 지나치게 교과서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자. 언제 교과서가 틀린 적이 있던가? 핵심은 그 내용을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기억해 활용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장승세 모니터그룹 서울사무소 부사장 [email protected]
필자는 서울대 섬유고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13년 이상의 전략 컨설팅 및 M&A 관련 경험을 갖고 있으며, 특히 성장 전략 및 시나리오 플래닝 분야의 전문가중 한 명이다. 모니터그룹에서는 주로 글로벌 에너지, 화학, 중공업 분야 기업들을 대상으로 신사업 발굴 및 육성, 마케팅 전략 수립, 턴어라운드(Turnaround)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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