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y of Pitfalls
편집자주우리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이를 함정(pitfall)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역설(paradox)이라 하기도 합니다. 소득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고 소득과 환경수준이 비례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 주변의 이러한 대표적인 함정들을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가 소개합니다.
우리는 트렌드에 항상 관심을 기울이며 산다. 애써 무시하고 싶지만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트렌드다. 어떤 트렌드는 거대한 노도와 같이 몰려와 우리가 속수무책 당하기도 하고, 어떤 트렌드는 무시해도 별 지장 없이 슬며시 지나가기도 한다. 트렌드를 잘 아는 것은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트렌드에 집착하고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고 행동하다가 자칫하면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왜 우리는 자꾸 트렌드의 함정에 빠지는 것일까? 트렌드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양한 트렌드의 종류
우리가 트렌드라고 뭉뚱그려 말을 하지만 사실 트렌드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판단 기준은 지속 기간과 영향을 미치는 범위다. 자연 생태계처럼 아주 긴 기간을 두고 천천히 변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메타트렌드(meta trend)라고 하고 그 다음으로 20∼30년 터울로 발생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사회문화적 변화를 메가트렌드(mega trend)라고 부른다. IT 트렌드가 바로 그렇다.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계층 사람들에게는 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마이크로트렌드(micro trend)라고 한다. 동성애 트렌드가 여기에 해당된다.
또, 6개월 혹은 1년 정도밖에 지속되지는 않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끈 다음에 급속하게 사라지는 것을 패드(fad)라고 부른다. 어떤 트렌드가 몰려 왔을 때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나는 트렌드를 역트렌드(counter trend)라고 한다. 정보통신 혁명으로 속도가 강조되는 트렌드가 왔을 때 오히려 천천히 가는 것을 강조한 슬로, 슬로비 트렌드가 바로 이에 해당된다. 신상품이 대세일 때 중고 콘셉트의 빈티지(vintage) 트렌드도 그렇다. 예전에는 이런 것을 트렌드로 보지 않았지만 이제 트렌드가 세분화되다 보니 역트렌드도 엄연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트렌드는 기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등 다방면에 걸쳐 존재한다. 기술만 하더라도 정보통신 기술, 바이오 기술, 나노 기술, 에너지 기술, 환경 기술, 로봇 기술, 우주항공 기술은 물론이고 최근 들어서는 문화 기술, 관광 기술, 마음 기술, 쇼핑 기술도 주요 관심사가 됐다. 최근 들어서는 이런 기술들의 융합 현상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트렌드의 함정이란
과거에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배는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순풍이 불면 항해하기가 훨씬 편했다. 반면에 바람이 반대로 불면 항해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요즘처럼 엔진이 달린 배는 바람의 영향을 덜 받기는 하지만 순풍이면 항해 속도가 더 빨라진다. 마찬가지로 어떤 분야에서 기술이 발전하거나 소비자 수요가 계속 생겨 시장이 커지면 이 분야에서 사업을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사업을 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트렌드를 타면 사업하기가 훨씬 좋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인데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어떤 경우에 그럴까?
첫째, 어떤 트렌드가 오래 갈 줄 알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 트렌드가 생각 외로 오래가지 않고 패드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면 기업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둘째, 어떤 트렌드가 매우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줄 알았는데 일부 계층에만 국한돼 더 넓은 시간으로 확산되지 않을 수도 있다. 기업이 만든 상품이 팔리기는 하지만 시장이 제한되는 것이다.
셋째, 특정 트렌드가 오랫동안, 그리고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발생할 수 있다. 이 트렌드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기업들이 서로 이 분야에 뛰어들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져 한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된다. 블루오션이라 생각하고 뛰어들었는데 어느덧 레드오션으로 바뀐 것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트렌드의 함정이 더욱 여러 곳에서 자주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소비자의 행태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에 소비자들은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을 선이라고 봤다.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으면 주위사람으로부터 센스 없다고 비난을 받고, 이러한 비난을 듣지 않으려고 할 수 없이 트렌드를 좇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소비자의 가치관과 인식이 바뀌어 트렌드 팔로잉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오히려 무작정 트렌드를 따르는 행태를 개성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어떤 것이 트렌드라고 하면 매장의 진열대가 모두 트렌드 상품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다른 옵션이 없어서 트렌드 상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일단 발생한 트렌드의 강도가 더욱 증폭됐다. 하지만 이제는 소비자들이 해외 사이트로부터 상품을 직접 구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예를 들면 요즘 젊은 소비자들은 인기 해외사이트인 아이허브(iherb) 같은 곳에서 국내보다 훨씬 다양한 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직접 구매하기 때문에 국내 트렌드를 구태여 따라갈 필요가 없다.
트렌드를 알기 위해 사람들이 기울이는 노력
우리는 트렌드를 알기 위해 국내외에서 유명한 트렌드 전문가의 강의를 듣고 그들의 미래와 시장을 예측하는 책을 탐독한다. 아니면 ‘신사의 품격’과 같은 인기 드라마, 미국드라마, 토크쇼, 광고, 패션/IT/라이프스타일 잡지, SNS를 여기저기 들여다본다. 또 광고대행사나 트렌드 전문회사가 발표하는 자료를 열심히 추적하고 대기업이라면 이들 전문회사에 컨설팅을 맡겨 자신의 회사에 보다 맞은 심층 트렌드 분석을 얻기도 한다. 트렌드를 전문적으로 추적하는 회사로는 Brain Reserve, Zandl Group, Youth Intelligence, LookLook, emars, 한국트렌드연구소,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가 있다. 이들 전문 회사가 구사하는 트렌드 예측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심층면접, 전문가 대상의 델파이 기법, 시나리오 기법, 통계학 모델링 기법 등 기법만 해도 20가지가 넘는다.
전문 기업들은 자체 인력도 동원하지만 트렌드를 헌팅하는 그룹을 만들어 외곽에서 운영하기도 한다. 이들은 트렌드 헌터, 트렌드 와처, 트렌드 스포터, 트렌드 트레커, 트렌드 파파라치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구성원들은 다양한 연령과 직종에 걸쳐 있다.
최근 들어 트렌드를 예측하는 방법으로 스트리트 와칭(street watching) 방식이 많이 채택되고 있다. 유명 디자이너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선남선녀들이 활보하는 홍대 앞이나 신사동 가로수길, 청담동, 분당, 이태원, 명동, 삼청동에 있는 카페 베란다의 의자에 차분히 앉아 행인들을 관찰하곤 한다. 파격적이고 센스 있는 옷을 잘 소화해 입는 행인이 그중에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행인들의 옷차림만 보지 않는다. 이들의 행동, 말하는 것에서도 아이디어를 얻는다. 사람들의 스몰 토크(small talk), 즉 잡담에 트렌드의 단초가 담겨 있다.
트렌드는 사실 우리 주위에 항상 널려 있다. 우리는 단지 그들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기 때문에 눈치를 채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트렌드 와칭의 제일 중요한 조건은 호기심, 그리고 꾸준한 모니터링이다. 모니터링을 지속적으로 해야 특정 트렌드가 확산되는지 축소되는지를 알 수 있다.
트렌드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그러면 우리가 트렌드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트렌드를 초기에 파악해야 한다. 기업 관점에서는 트렌드를 늦게 발견하는 것보다는 일찍 발견하는 것이 당연히 좋다. 트렌드에 맞는 상품을 개발해서 늘어나는 수요에 적절히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렌드를 너무 일찍 발견하다 보면 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기다리다가 지칠 수 있다. 또 그 트렌드의 수명이 짧으면 상품을 개발해도 판매를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트렌드를 파악했다 하더라도 상품을 실제로 개발해 판매에 나설 때에는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미국의 프리미엄 아웃도어 브랜드인 파타고니아(Patagonia)는 일찍부터 친환경적인 로하스(LOHAS) 트렌드를 감지하고 유기농 면화를 이용한 의류를 만들었고 직원들이 환경단체에 가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했다.
둘째, 트렌드에 무관하게 행동한다. 과거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개성과 취향은 무시하고 시대적 조류와 다른 사람들의 취향에 소비에 민감하게 반응해 자신의 구매를 결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구매 행태는 후진국이나 중진국에서 발생하고 소득수준이 올라가면 자신의 정체성과 취향에 따라 구매를 결정한다. 따라서 한 시점에도 매우 다양한 의류 스타일이 혼재돼 특정 트렌드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한다. 특정 트렌드를 따라서 대박을 터뜨리려고 하다가 경쟁의 희생자가 되기보다는 독특한 분야에서 안분지족하면서 사업을 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화장품 용기 트렌드는 계속 바뀌어도 에스티로더의 갈색병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원래 약국에서 시작한 키엘(Kiehl)은 링겔 병 같은 용기에 화장품을 담아 지금까지 판매한다.
셋째, 사실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이 트렌드를 아예 만드는 트렌드세터(trend setter)가 되는 것이다. 어떤 현상이 앞으로 대세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생긴 직관을 가지고 대세가 될 것인지를 파악하고 용기 있게 이를 추진하면 성공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말이 별로 없는 넌버벌 퍼포먼스(nonverbal performance)가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의 공연이 글로벌 시대에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으려면 넌버벌 퍼포먼스여야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최철기 예술감독은 난타, 점프, 비밥 공연을 기획했다. 물론 초기에는 인기를 얻지 못해 부채가 계속 늘어났으나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큰 인기몰이를 한 다음에 한국에 들어와 히트를 쳤다. 한국에 오는 외국관광객에 힘입어 이들 넌버벌 퍼포먼스는 국내 전용관도 생겨 인기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넷째, 때로는 첨단 트렌드를 따르지 않고 오히려 늦게 시장에 진입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선두 주자는 화려하지만 사업 리스크가 많고 상품 자체에도 결함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다른 기업들의 상품을 잘 모니터했다가 시장이 무르익었을 때 아주 공격적으로 진입하는 것도 현명한 전략이다. 이처럼 선두주자의 저주를 피하고 후발주자의 축복으로 바꾼 경우로는 커피전문점 시장에서 카페베네가 있다. 카페베네는 커피 시장에서 후발주자였지만 빈티지(vintage) 콘셉트의 매장 전략, 직원 채용을 대신 해줘 점주의 부담을 줄여주는 전략, 연예인을 내세운 마케팅 전략, 신속하고 공격적인 매장 확장 전략에 힘입어 크게 성장했다.
인간에게는 IQ(이성지능), EQ(감성지능), SQ(사회지능), MQ(도덕지능) 등 다양한 지능이 있다. 여기에 PQ(prediction quotient), 즉 예측지능도 필요하다. PQ에는 앞으로 어떤 것이 올지 미리 아는 능력, 이에 대비해 실제로 실천하는 능력까지도 포함한다. 기업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 PQ 능력이 그 무엇보다도 더 필요하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 [email protected]
필자는 마케팅 컨설팅 회사인 리드앤리더 대표이자 비즈니스 사례 사이트인 이마스(emars.co.kr)의 대표 운영자다. 서울대와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한국은행과 SK에너지에서 근무했고 건국대 겸임 교수를 지냈다. <경제법칙 101> 세계 100대 기업> <하인리히 법칙> <커피로 알아보는 마케팅 베이직> 등의 저서와 <깨진 유리창 법칙>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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