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종합
마케팅의 중심에는 항상 소비자가 있다. 마케팅은 소비자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동안 심리학, 통계학, 정보통신, 미학, 언어학 등 다양한 기반 학문을 받아들여 발전해왔다. 최근에는 뇌신경과학 분야의 조사기법을 활용해 소비자의 뇌가 마케팅 활동에 반응하는 패턴을 관찰, 연구하는 ‘뉴로마케팅(Neuromarketing)’이 주목받고 있다. 마케팅과 뇌신경과학의 결합은 1970년대 초부터 시도돼 왔지만 뉴로마케팅이라는 새로운 마케팅 조사 패러다임의 등장은 2002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 국내에서도 뉴로마케팅을 실무에 활용해 가시적인 성과를 얻고 있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뉴로마케팅에 대한 근본적 접근을 통해 마케터들의 이해를 돕고 마케팅 실무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자 한다.
1. 뉴로마케팅의 원리
인간의 뇌는 몸무게의 2% 정도를 차지하는 작은 기관이지만 그 활동은 매우 역동적이어서 하루 전체 에너지 소모량의 20% 정도를 사용한다. 뇌는 태중(胎中)에서부터 다양한 환경적, 유전적인 영향을 받아 생성되며 출생(出生) 후에는 경험과 학습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해간다. 근본적으로 뇌는 우리의 이성, 감정, 성격뿐만 아니라 소비의사결정의 핵심적 역할을 한다. 뇌는 세부 영역별로 다른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복잡한 사고를 필요로 하는 소비의사결정은 여러 뇌 영역이 화합적 또는 경쟁적으로 관여해 만들어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생소한 분야이기는 하지만 마케터들이 소비자들의 뇌가 작동되는 메커니즘에 관심을 가져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뇌의 구조를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담당하는 기능에 따라 신뇌, 중뇌, 구뇌로 나눌 수 있다. (그림 1) 첫 번째 뇌 영역인 ‘신뇌’는 뇌의 가장 바깥쪽을 싸고 있으며 고차원적인 정신활동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을 포함하고 있다. 대뇌피질의 약 40%를 차지하는 전두엽(Frontal Lobe)은 마케터들이 관심을 가져야할 뇌 영역 중 하나다. 소비자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전두엽은 뇌에 저장(기억)된 제품정보와 새롭게 들어오는 마케팅정보를 통합, 선별해 의사결정에 활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두엽이 발달된 소비자들은 본능과 자아를 잘 통제하며 지능적인 소비활동을 한다.
두 번째 뇌 영역인 ‘중뇌’는 ‘감정의 뇌’로서 사람의 감정, 쾌락, 통증을 담당하는 편도체(Amygdala), 선조체(Corpus Striatum), 기저핵(Basal Ganglia) 등의 변연계(Limbic System)를 포함한다. 마케팅 활동에 있어서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 브랜드 친숙도와 선호 등의 감정적 반응이 이 영역에서 주로 관찰된다.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그 제품 브랜드를 소유하면 너무나 행복하고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구매한다는 소비자들은 ‘중뇌형 소비자’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뇌 영역인 ‘구뇌’는 진화적으로 가장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일명 ‘파충류의 뇌’라고도 일컬어진다. 뇌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구뇌는 뇌간(Brain Stem), 소뇌(Cerebellum) 등을 포함하며 생존과 번식을 위해 자동적이고 즉각적으로 결정을 내린다. 본능적인 ‘구뇌’는 여러 가지의 욕구가 충돌했을 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제 일상적인 마케팅 상황에서 소비자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자.
사례 1
40대 평범한 직장인인 박 차장은 요즘 성과급 보너스를 받아 10년 가까이 몰던 자동차를 바꿀 생각에 잔뜩 들떠 있다. 피곤하고 지루하기만 했던 출퇴근시간 러시아워에도 도로에 오고가는 자동차를 살펴보며 마냥 즐겁기만 하다. 틈틈이 인터넷 검색과 주위에 조언을 구해 정보를 모으고 대리점에 들러 시승을 하고 있다. 박 차장은 A와 B 자동차 브랜드를 유력하게 고려하고 있다. A 브랜드는 출시된 지 10년이 넘은 브랜드로 수년째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고, B 브랜드는 최근 출시됐지만 뛰어난 성능으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소비욕구의 생성과 충족에 이르는 과정은 뇌 반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위 사례에 등장하는 박 차장의 뇌 속을 들여다보면 강렬한 소비욕구를 나타내는 중뇌의 측중격핵(Nucleus Accumbens)이 활발하게 움직이고(활성화돼) 있을 것이다. 소비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의사결정 전략을 쓴다. 예를 들어, 고가의 자동차를 구입하는 것과 같은 고관여 상황에서는 세부적인 정보탐색과 정확한 분석을 담당하는 뇌 영역(외측 전전두피질, 측두엽, 우두정피질 등)이 활성화되고 매주 생필품을 구입하는 것과 같은 저관여 상황에서는 직관에 따라 재빠르게 구매를 결정하는 뇌 영역(안와전두피질, 기저핵, 편도체, 외측두피질 등)이 자동적으로 활성화된다. 이 과정에서 브랜드가 가진 인지도(브랜드 파워)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예를 들어,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를 접하면 우리 뇌는 재빠르게 ‘자동 모드’로 전환돼서 세부 정보를 찾기보다는 기존 저장된 브랜드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때 관여하는 뇌 영역이 바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Amygdala)다. 반면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생소한 브랜드를 접할 때는 학습을 담당하는 안와전두피질(Orbitofrontal Cortex)이 보다 활성화돼 추가적인 정보탐색과 분석을 하게 된다.
위의 사례에서 박 차장은 주변의 자동차 브랜드와 인터넷 정보를 탐색하고(시각), 조언(word-of-mouth)을 들으며(청각), 시승을 통해 자동차의 승차감(촉각)을 느끼는 등 다양한 마케팅 정보를 접하고 있다. 이러한 감각 정보는 감각 기관의 수용기 세포를 통해 신호화돼 뇌로 전달되고 뇌에서 이 신호를 해석,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거쳐 기억으로 저장된다. 각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뇌영역은 <그림 2>와 같다.
감각 기관 중에서 특히 시각적 기관인 눈은 오랜 세월을 거쳐 외부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발전돼 왔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시선(視線)은 외적 요인(자극의 특출성)과 내적 요인(목적 달성)으로 인해 이동한다. <그림 3>의 Yarbus(1967) 실험을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그림을 보도록 했을 때(과제 A) 사람들의 시선은 등장인물들의 얼굴, 벽에 걸려 있는 액자, 열려 있는 문, 빛이 들어오는 창문, 테이블 등 주요 대상으로 움직였다. 한편, 등장인물들의 나이를 추측(과제 B)하거나 입은 옷을 기억(과제 C)하도록 했을 때는 과제를 달성하기에 적합한 대상 위주로 시선이 이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인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현대 사회를 ‘주의의 경제(Attention Economy)’라 칭한 바 있다. 소비자의 주의는 아마도 바쁜 현대 정보사회에서 가장 희귀한 자원 중 하나일 것이다. 소비자가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오랫동안 주의를 기울이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마케팅 활동의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례 2
주말 저녁, 박 차장의 집 거실에 가족들이 모여 있다.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이 끝나고 광고를 하는 사이, 다음 주 떠날 스키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간다. 익숙한 광고 음악이 흐르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쳐다본 TV 화면에는 A 자동차가 물 흐르듯 등장한다. 사실 A 자동차는 B보다 가격이 조금 비싸지만 브랜드, 안전성, AS 측면에서 더 좋은 평을 받고 있기 때문에 A 자동차를 구매하는 쪽으로 마음이 많이 기울고 있다. 최종적으로 가족들의 의견을 들은 박 차장은 다음 주 A 자동차를 구매하기로 결정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자극에 동시다발적으로 노출된다. 그렇지만 우리 뇌는 태생적으로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자극의 양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너무 많은 자극들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머리가 아프고 기분이 나빠지는 등의 과부하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뇌는 일명 ‘칵테일파티 효과(Cocktail Party Effect)’라고 하는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를 작동시킨다. 이 놀라운 뇌 작동 메커니즘 때문에 많은 자극들 중 필요한 자극만을 선별, 활용하는 것이 가능해져 우리는 일부러 TV 볼륨을 줄이지 않고서도 가족들과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제품구매를 통해 소비욕구가 충족될 때 소비자가 느끼는 ‘만족감’은 생리학적으로 복측피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에서 선조체(Corpus Striatum)로 분비되는 도파민(Dopamine)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그림 4) 단 음식에 대한 갈망, 마약 및 향정신성 약물 중독 등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소비자의 욕구가 충족돼 만족감을 느낄 때에도 분비된다. 도파민은 예측이 불가능한 도전적인 경험을 할 때 더 많이 분비되며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일단 익숙해지고 예측이 가능해지면 그 분비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따라서 구입한 제품에 쉽게 싫증을 내고 새로운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의 변덕스러운 행동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경험함으로써 도파민을 분비시키고 만족감을 얻으려는 본능적 욕구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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