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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Science 2.0

레코드 가게의 추억과 경영 과학

장영재 | 62호 (2010년 8월 Issue 1)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학가마다 작은 레코드 가게 한두 군데쯤은 있었다. 가게 벽을 빼곡히 채운 레코드판과 장르별 인기곡 순위 차트는 레코드 가게의 익숙한 풍경이다. 이런 장면이 ‘머릿속 기억’이 아닌 ‘가슴속 작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이 가게가 단순한 소매 기능을 넘어선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많은 대학가 레코드 가게는 음악을 즐기고 공유할 수 있는 작은 휴식 공간이었다. 굳이 뭔가 하지 않아도 단골 고객들은 레코드 가게 주인 아저씨와 음악에 대한 담소를 나눴다. 또 자신들이 사랑하는 음악을 함께 공유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즐거워했다. 당연히 레코드 가게 아저씨는 단골들의 취향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이들은 단골이 찾을 때면 취향에 맞는 음악을 틀어주며 고객 개개인에 맞는 ‘맞춤 문화 공간’을 즉석에서 창출해냈다. 나 자신도 몰랐던, 하지만 내가 좋아할 음악과 조우할 기대감과 설렘이라는 고객 가치를 제공했다.
 
데이터와 수학이 감성을 창조한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단지 값싸고 품질 좋은 상품이 아니다. 고객은 자신의 취향을 존중 받고 이를 바탕으로 한 상품을 추천 받고 싶어한다. 또 상품에 대한 감성을 다른 누군가와 함께 공유하며 즐기려는 욕구가 있다. 특히 책이나 음반 등의 문화 상품처럼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상품일수록 이런 욕구는 더욱 강렬하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감성 마케팅이다.
하지만 대형 유통점에서 혹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감성에 대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감성전달과 매출 증대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묘책은 감성과는 전혀 상반된 곳에서 제시됐다. 바로 ‘데이터와 수학’이다!
필자는 미국 최대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닷컴의 프리미엄 회원이다. 이 서점을 자주 이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저렴한 가격과 온라인 주문의 편리함 때문만은 아니다. 필자가 아마존닷컴의 충성 고객을 자처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존에서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책 추천 목록 서비스 때문이다.
아마존닷컴 인터넷 페이지에는 책 추천 페이지가 있다. 책 추천은 회원 개개인의 취향에 맞춘 목록의 형태로 실시간 업데이트된다. 이 추천 목록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이미 오프라인 서점에서 직접 읽고 구입하기로 찜해 놓거나 광고를 통해 관심을 가진 책들이 고스란히 추천 리스트에 올라온다. 아마존닷컴이 필자의 취향을 매우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판별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아마존닷컴은 어떻게 각 개인의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해 맞춤형 추천 서비스를 제공할까? 그 비밀은 바로 소비자의 책 검색과 과거 구매 목록, 수많은 고객들의 상관관계 데이터를 분석한 수학 알고리즘에 있다.
아마존닷컴의 추천 서비스는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객에게 맞춤 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고객 관계 관리 (CRM) 방식이다. 그러나 기존 CRM과 다르다. 아마존닷컴은 개별 고객의 구매 패턴 분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고객들 상호 간의 다차원 분석을 통해 고객이 무엇을 원할지 미리 판별하는 ‘예측의 과학’을 적용한다. 이 개념을 좀더 알아보자.
 
 
예측의 과학
데이터를 분석해 고객 개개인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CRM의 개념이 처음 소개 됐을 때는 고객이 직접 기입한 개인정보를 분석하는 데 그쳤다. 고객이 회원 가입 시 적어내는 주소, 직업, 출생일, 학력 등과 같은 개인 정보를 분석해 고객에게 지역•연령별로 차별화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처럼 고객이 직접 제공한 개인 정보를 ‘1차 데이터’라 한다.
이후 데이터 처리기술의 발달과 정보 통신의 발달로 고객 구매 데이터를 보다 효율적으로 취합하고 저장할 수 있는 솔루션이 제공됐다. 이에 따라 고객 개개인의 구매행동을 저장해 이를 활용하는 보다 높은 차원의 고객 분석 방법이 나왔다. 고객이 어떤 상품을 구입하는지, 언제 구입하는지, 같이 구입하는 상품들 중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어떤 매장에서 구입하는지 등의 정보를 통해 소비 패턴을 보다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정보를 ‘2차 데이터’라고 한다.
1차 데이터는 고객이 이사를 거거나 직업을 바꾸는 등 신상에 변화가 있지 않는 한 변하지 않는 정적(static)인 데이터다. 반면, 2차 데이터는 고객이 물건을 구매할 때마다 새로운 데이터가 더해지는 동적(dynamic)인 특징을 띠고 있다. 2차 데이터 분석에 고도의 정보 처리 기술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 1차와 2차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고객 개개인의 맞춤 서비스를 구현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분석이 있다. 1차, 2차 데이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고객이 원하는 물건이 무엇인지를 판별해 미리 상품을 제시하는 미래 지향적인 방식이다. 여기서 나오는 게 바로 ‘3차 데이터’다. 이 데이터는 고객들 간의 상관 관계를 나타낸 것으로 고객 개인의 데이터를 점으로 표시할 때 이 점과 점을 잇는 연결선에 해당한다. 이 연결선은 고객들 간의 상호 취향을 수치화한 정보다.
예를 들어 A와 B라는 고객이 있다. 1차 데이터와 2차 데이터는 고객 A와 B서로 각각의 정보를 담고 있다. 3차 데이터는 A와 B의 구매 취향이 얼마나 비슷한지를 수치화한 데이터다.
 
 
그렇다면 3차 데이터 분석이 왜 필요한 것일까? 만약 A와 B의 구매 패턴에 서로 유사성이 있다면 A가 구매한 물건을 B가 구매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즉 소비자들 간의 상호 분석을 통해 개개인이 앞으로 어떤 물건을 구매할지 예측할 수 있게 된다.
 
3차 데이터로 기업 경쟁력을 높인다
아마존닷컴의 추천 알고리즘도 3차 데이터, 즉 수많은 고객들의 상호 연관성 분석을 통한 것이다. 아마존닷컴은 이런 분석을 통해 고객들의 트렌드를 판별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이 구매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상품을 추천리스트에 담아 제시한다.
3차 데이터 분석은 수많은 고객 개개인의 상호 분석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수학 기술과 컴퓨터 기술이 필요하다. 3차 데이터를 활용한 개념은 이미 1980년대 소개됐지만, 이 개념을 실제로 구현하는 기업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또 세계적인 유통기업이 앞다퉈 수학자를 채용하는 이유도 바로 3차 데이터 분석을 통해 대형 체인점에서 상상만 했던 고객 감성의 마케팅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수학 알고리즘을 이용해 감성 마케팅을 구현하고 이를 기업의 경쟁력으로 승화시킨 또 다른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넷플릭스가 있다. 이 회사는 미국 최대의 DVD대여 미디어 기업으로 창업한 지 불과 10여 년 만에 당시 최대의 DVD렌털 기업인 블록버스터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은 바로 넷플릭스 고유의 영화 추천 알고리즘이다. 넷플릭스는 고객의 영화 선별 패턴을 분석으로 영화 취향을 판별하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를 추천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마치 개인 영화 추천 도우미를 두고 있는 듯한 체험을 고객 개개인에게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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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영재

    장영재[email protected]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

    장영재 교수는 미국 보스턴대 우주항공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기계공학, MIT 경영대학원(슬론스쿨)에서 경영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MIT 기계공학과에서 불확실성을 고려한 생산운영 방식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본사 기획실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근무하면서 과학적 방식을 적용한 원가 절감 및 전략적 의사결정 업무를 담당했다. 2020년 KAIST 연구소 기업인 ‘다임리서치’를 창업해 인공지능과 디지털 트윈 등의 혁신 기술을 제조 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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