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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금융의 몰락, 그 이후

닐 퍼거슨(Niall Ferguson) | 37호 (2009년 7월 Issue 2)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던 이번 금융위기가 끝나면, 미국의 금융 시스템은 이전과 전혀 다른 양상을 띨 것이다. 일각에서는 금융위기로 미국 경제와 달러화가 그간 차지했던 독보적 위치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필자는 금융위기 이후의 미국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대 금융은 1980년대 월가의 숨 막히는 머니 게임과 런던 금융 빅뱅이 전개됐던 1980년대부터 급격히 성장했다. 하지만 현대 금융은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2008년 9월 15일 그 종말을 고했다. 9·11 테러가 일어난 지 7년 후인 2008년 9월 15일, 월가는 9·11보다 더한 타격을 입었다.
 
2008년 9월에는 불과 19일 동안 재앙과도 같은 7가지 사건이 등장했다. 이는 한 시대의 종말을 예고했고, 리먼의 몰락은 그중 하나였을 뿐이다. 9월 7일의 첫 번째 사건은 양대 국책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국유화였다. 9월 14일에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메릴린치 인수를 발표했다.
 
9월 16일에는 리먼 브라더스로부터 사들인 무담보 상업 어음이 엄청난 손실을 입은 탓에 미국 대형 머니마켓펀드(MMF)인 리저브 프라이머리의 순자산 가치가 주당 1달러 이하로 폭락했다. 같은 날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미국 최대 보험회사 AIG의 파산을 우려해 85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했다. AIG는 FRB로부터 구제금융을 지급받는 대신 79.9%의 지분을 넘기는 형태로 국유화를 진행했다.
 
9월 22일에는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은행 지주회사로 변신했다. 이로 인해 한때 세계 금융을 쥐락펴락했던 투자은행(IB)의 존재가 월가에서 사라졌다. 마지막 날인 9월 25일에는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미국 최대 저축은행인 워싱턴뮤추얼을 압류했다. 워싱턴뮤추얼의 몰락은 미 역사상 최악의 은행 도산 사태였다.
 
서브프라임 위기는 2006년부터 시작됐지만, 2008년 9월 결국 미국의 금융 체계는 벼랑 끝으로 떨어졌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가 미국 경제와 세계 금융 시스템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위기에서 몰락까지
현재의 불경기가 전대미문의 불황으로 연결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보자. 전미 경제조사국(NBER)에 의하면 1929년 8월 시작된 불황은 무려 43개월 동안 이어졌다. 역사학자들이 기억하고 있는 최초의 대공황은 1873년에 시작돼 장장 65개월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이어졌다. 현재의 미국 경제가 이처럼 오랫동안 하락세를 이어간다면, 2013년 5월이 지나야 경기 회복을 논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진 상황에서 2013년을 맞이했다고 가정해보자. 강제 통합 및 국유화로 BOA와 씨티라는 미국 최대 은행 두 곳을 합쳐놓은 씨티뱅크오브아메리카(Citibank of America)는 미국 소매은행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2007년 8534개에 달했던 미국의 은행 수도 절반으로 줄었다. 전 세계에는 금융위기 이전 수준의 3분의 1도 안 되는 3000여 개의 헤지펀드가 존재할 뿐이다.
 
지난 4년간 티모시 가이스너 미국 재무장관이 새롭게 도입한 규제 정책은 금융시장 환경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경영진 보상, 은행 자본 총액, 파생상품 거래 등에 새로운 규제가 속속 가해지면서 소매은행 부문은 일종의 공공사업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헤지펀드, 보험회사와 같은 비(非)은행 금융기관도 새롭게 등장한 기관인 규제금융위원회(Financial Authority for the Regulation of Systemic Institutions·FARSI)로부터 철저한 감시를 받고 있다.
 
FARSI의 엄청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여전히 금융위기로 인한 재정 적자를 해결하느라 허덕이고 있다. 미 연방정부의 빚은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 2009년 예산을 발표하면서 예상했던 금액보다 3조 달러나 많은 20조 달러에 이르렀다. 최고 소득세율은 45%에 달했다.
 
주식시장 상황도 좋지 않다. S&P500 지수는 1991년 12월 수준인 418로 떨어졌다. S&P의 하락폭은 대공황이 진행됐던 1929년부터 1934년까지의 하락폭에 견줄 만하다. 미국의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010년 이후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과거 일본이 그랬듯 ‘잃어버린 10년’의 한가운데 서 있다.
 
사람들은 맨 처음 이런 현상을 ‘서브프라임 사태’라는 말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는 곧 ‘신용경색’으로, 다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발전해 나갔다. 2013년 현재는 ‘몰락’이라는 새로운 이름이 등장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몰락은 세계 경제 질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2006년 당시 미국 GDP의 5분의 1에 불과했던 중국의 GDP는 2013년 현재 미국의 절반 수준까지 높아졌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 달러 대신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발행하는 특별인출권(Special Drawing Rights·SDR)을 세계 기축통화로 대체하기로 약속했다. 그 결과 중국 위안화에 대한 달러 가치가 절반으로 급락했다. 세계 석유 가격마저도 SDR로 매겨지고 있다.
 
플로리다 주지사이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젭 부시는 2012년 공화당 대통령 경선에서 새라 페일린을 물리쳤다. 이 여세를 몰아 그는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이제 새 대통령 젭 부시가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펴야 할 때가 왔다. 신임 미국 재무장관 존 폴슨은 전임자가 IMF로부터 빌린 1500만 SDR을 상환하기 위한 협상에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세계 곳곳의 금광에 투자하고 있는 그는 미국을 다시 금본위제 국가로 만들려는 부시 대통령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G4 국가의 외무장관들은 최근 회의에서 수입 의류 및 자동차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루 돕스 미국 상무장관의 발언을 비난하고 나섰다.
 
한편 미국 국방장관 맥스 부트는 이란 부셰히르 근처 방사능 오염 지역에 미국의 로봇 군대를 상주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로봇 부대 상주 계획이 이란의 핵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이란을 공격하려는 이스라엘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임을 밝혔다. 즉 부시 행정부가 선보인 ‘이란 자유화 작전(Operation Iranian Freedom)’의 일환인 셈이다. 비록 미국 실업률이 12%에 달했지만, 많은 미국인들은 이란 내 군사 작전 성공 소식에 고취돼 있다. 2010년 오바마 전 대통령의 테헤란 방문이 엉망이 된 후, 이란은 오바마 행정부에 여러 차례 굴욕을 안겨줬다. 하지만 미국 국민들은 남중국해에서 일어난 미군과 중국군의 해상 충돌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시나리오가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느껴진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1929년부터 1933년까지 미국 주식시장은 여러 차례 반등했지만, 결국 장기적으로는 하강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929년 10월부터 1932년 12월까지 3년 넘게 다우지수는 전체 거래일의 15% 정도 기간에만 불과 2% 상승했다. 하루에 5% 이상 상승한 날은 34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타난 여러 차례의 불황을 보면, 평균 10개월 동안 경기 침체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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