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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Money in the Brain

돈으로 행복을 거래할 수 있을까?

정재승 | 23호 (2008년 12월 Issue 2)
새해 소원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1순위는 단연 ‘새해에는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 2순위로 밀린지 오래다. 외환위기가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 자리를 세계 금융위기가 또다시 덮치면서 대한민국은 요즘 ‘돈병’을 앓고 있다. 돈만 벌 수 있으면 뭐든 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잇고 있다. 꿈이나 명예, 인간적 가치를 좇아 미래를 설계하는 젊은이보다 돈을 벌기 위해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돈은 인간에게 행복감을 준다. 많은 것을 살 수 있고, 누릴 수 있게 해 주며,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사회적 기능으로 인해 돈은 이제 행복이나 쾌락과 등가 가치로 기능하게 됐다. 한 예로 미국의 신경과학자들은 일반인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 안에 넣어 둔 상태에서 아무런 맥락 없이 그냥 ‘지폐’를 보여 줬다. 10달러, 20달러, 50달러짜리 새 돈. 그러자 시험 참가자들의 뇌 중 ‘쾌락의 중추’라 불리는 복측핵(nucleus accumbens) 부분이 미친 듯이 활성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돈은 이제 그 자체로 ‘쾌락의 상징’이 된 것이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간 시험도 있다. 영국 웨버 박사와 그 동료들이 미국의 저명한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뇌 영상 스캔 연구 결과는 동료보다 많은 급여를 받는 것이 남성들의 뇌 속에 있는 쾌락중추를 자극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연구팀은 38쌍의 남성 참가자들에게 같은 일을 따로 하게 한 뒤 이 일에 성공하면 적절한 보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참가자들은 자신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동료가 얼마나 일을 잘 수행했고 이에 대해 얼마의 보상을 받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제공받았다. 연구팀은 이런 정보를 받는 동안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기 위해 뇌 영상 장치를 통해 뇌 활동 양상을 측정하였다.
 
이 결과 참여자들이 자신의 임무를 정확히 완수했을 때 쾌락의 중추 가운데 하나인 선조체(ventral striatum) 부위가 크게 활성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해 금전적 보상을 받지 못했을 때에는 이 같은 뇌 영역의 혈액 순환이 크게 감소했다. 또 금전적 보상이 주어지더라도 상대에 비해 적으면 쾌락의 중추는 별로 반응하지 않았다. 동료에 비해 많은 보상을 받을 때 시험 참가자들의 뇌는 크게 활성화되었다.
 
이 연구 결과가 우리에게 들려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 동안 사람들은 급여를 얼마나 받느냐가 급여를 받을 때의 기분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인자’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는 월급봉투를 받을 때 사람(남성)들이 얼마나 기쁘게 느끼는지는 급여의 절대적 액수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바로 다른 동료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얼마나 많이 받는지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이 ‘남과의 비교’라는 얄팍한 방식으로 좌우되는 것이라면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돈이 ‘행복의 화폐’는 아니라는 연구 결과도 만만치 않다. 이 가운데 ‘행복경제학’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의 기념비적인 연구가 가장 주목받았다. 1974년 당시 이 논문은 2차 대전 이후 일본, 미국, 유럽 국가들의 실질소득 증가와 행복만족도 데이터를 비교해 그래프로 비교한 내용이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세계대전 후 실질소득은 23배나 올랐는데 행복감과 만족도는 아주 조금밖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의 400대 갑부 중 설문에 응답한 억만장자들이 그들의 삶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는 소 몇 마리가 재산의 전부인 동아프리카의 마사이족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설문 조사 결과다. 이 결과는 돈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을 흔히 ‘행복의 역설’ 또는 ‘이스털린 역설’이라고 부른다. 고전 경제학에 따르면 효용(utility), 즉 만족도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게 돈이며 실질소득이 증가하면 행복감 또한 올라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학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었다. 대한민국은 국민소득만 따져도 세계 15개 경제 대국에 속하지만 국민의 행복지수는 178개국 가운데 102위로 그리 높지 않다. 우리 사회가 ‘행복의 역설’을 잘 보여 주는 예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의 마법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가. 왜 사람들은 돈을 좇기 위해 건강, 여유, 가족과의 시간을 버리는 것일까. 이스털린에 의해 시작된 ‘행복경제학’의 미덕은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성장 중심에서 행복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있다. 우리 사회는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성장은 더 높은 성장을 요구한다. 성장중심주의가 가져오는 것은 사실 행복 증가가 아니라 사회적 양극화 심화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경제학자는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다. 그는 인간중심 경제학으로 학문적 관심을 모으면서 인도 출신으로서 아시아 최초의 노벨경제학상을 받기도 한 인물이다.
 
그의 주된 연구 주제는 아시아의 빈곤과 기아다. 주류경제학에서 거의 논의하지 않은 인간의 ‘행복’이라는 요소를 센은 경제학적으로 풀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결국 경제학 발전은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이 바탕에 깔려 있지 않는 학문은 사상누각에 불가하다고 역설한다. 산업국가 대열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 국민이나 최빈국 국민의 경우 그동안 경제학 발전에서 철저히 배제된 것이 바로 그 예다. 하루 1달러도 채 안 되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들에게 신자유주의나 세계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경제학이 행복을 추구하는 학문이라면 타인의 불행을 담보하고 얻은 ‘상대적 소득’만이 인간에게 근본적인 행복을 주는 인간 본성과 행복경제학은 과연 어떻게 융합될 수 있을까. 융합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모두가 소득을 공평하게 분배하고 행복을 나누는 사회가 가능한지, 신경과학자와 행복경제학자들의 공동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필자는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미국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를 거쳐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도전, 무한지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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