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d Management
다음의 세 가지 상황에 처한 사람 또는 기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고속도로 진입로를 잘못 찾아 들어 역방향으로 주행을 하게 된 사람, 술자리에서 항상 폭탄주를 만들어 돌리고 한꺼번에 들이키는 것으로 시작하는 사람, 몸에 해로운 인공 식품첨가물 대신 천연원료를 사용한 신제품을 개발해서 대대적으로 출시했는데 예기치 않게 천연원료에도 심각한 부작용이 있음을 알게 된 기업. 우선 세 경우 모두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을 계속하면 아주 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을 고치는 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잘못을 인식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잘못 됐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도 나쁜 점보다 좋은 점이 더 클 것이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세뇌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더라도 이유를 찾고 싶고, 변명을 하고 싶고, 합리화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고속도로를 거꾸로 진입한 운전자는 한참 동안 왜 남들이 차를 거꾸로 몰까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운전을 계속한다. 폭탄주를 즐기는 사람은 알코올이 건강에 미치는 나쁜 영향보다 스트레스를 털어버리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면서 계속 폭탄주를 돌린다. 신제품을 개발한 기업은 그래도 천연원료가 인공첨가물보다 낫다며 천연원료의 문제점을 덮기 위해 계속 시간을 허비한다.
겨울 궁전의 경비병들과 일관성
왜 이처럼 사람들은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조차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애를 쓸까? 로버트 치알디니가 쓴 <설득의 심리학>에 의하면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지금까지 행동해 온 것과 일관되게, 혹은 일관되게 보이도록 행동하려 하는 거의 맹목적인 욕구가 있다. 일단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거나 입장을 취하게 되면 그러한 선택이나 입장과 일치되게 행동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느낀다. 그 부담감은 우리로 하여금 전에 취한 선택이나 입장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우유부단하거나 변덕이 심하거나 기회주의적인 사람은 부정적으로 간주된다. 그에 비해 말을 쉽게 바꾸지 않고 한번 선택한 것을 쉽게 버리지 않으며 강직하고 일관된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은 신뢰할 수 있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예측가능하며 남들에게 불필요한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관성은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터득해온 가치와 일반적으로 일치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관성은 생각을 덜 하게 해준다. 즉 정신적 에너지를 절약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일관성은 극단적인 생각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모든 변수를 점검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과거에 했던 방식대로 하는 것을 정당화시키고 나면 그러한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다시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주 큰 유혹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유명한 철학자 랄프 왈도 에머슨은 “어리석은 일관성은 협소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도깨비 장난이다”라고 말했다.
일관성과 관련해 생각해볼 만한 얘기가 하나 있다. 제정러시아 시대, 페테르스부르크에는 겨울 궁전이 있었다. 여기에 아주 아름다운 잔디밭이 있었고 그 잔디밭 한가운데에는 항상 경비병 둘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경비병은 세 시간마다 교대됐는데 왜, 무엇 때문에 경비를 서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어느 날 새로 부임한 장교가 정문 앞도 아니고 담장 옆도 아닌 잔디밭 한가운데서 경비를 서는 것이 이상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그런데 누구에게도 속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물어 물어서 찾다 보니 늙은 사병 하나가 아주 오래 전에 들은 얘기가 있다고 했다. 200년쯤 전, 어떤 여제 시절에 잔디밭 그 자리에 아주 조그만 꽃이 한 송이 피어났는데 산책을 하던 여제가 누군가가 그 꽃을 밟아 죽일까 걱정이 돼서 꽃 주위에 경비를 서도록 명령했다는 것이다. 그 후 꽃은 시들고 아무런 흔적이 남지 않았지만 경비를 서라는 명령을 중지시킨 사람이 없어서 계속 그 명령을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사례에서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생각할 수 있다. 여제의 명령은 그 위치에서 꼼짝없이 경비를 서라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꽃을 지키라는 것이었을까?
여기서 우리는 다시 ‘테세우스의 배’라는 고전철학의 유명한 화두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스의 크레타섬에는 사람을 잡아먹는 미노타우루스라는 괴물이 살았다. 아테네 사람들은 이 괴물에게 매년 열두 명의 선남선녀를 바쳤는데 테세우스라는 왕자가 어느 날 제물로 바쳐진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고 크레타섬으로 가서 괴물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구해서 돌아왔다. 아테네 사람들이 이를 매우 기뻐해서 테세우스가 타고 다녀온 배를 광장에 전시하고 그의 업적을 기렸다. 그런데 세월이 수백 년 흐르다 보니 배가 너무 낡아 오래된 판자를 바꿔 끼우면서 수리를 해야 했다. 어느 순간 원래 배를 이루고 있던 판자는 모두 없어지고 완전히 새로운 판자로 이뤄진 배가 광장에 전시됐다. 이 배는 과연 ‘테세우스의 배’일까? 만약 누군가가 기존의 판자를 모두 모아 다른 곳에 똑같은 배를 만들었다면 어느 쪽이 진짜 ‘테세우스의 배’일까? 이에 대해 영국 경험론의 태두인 토마스 홉스는 질료보다 형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광장에 전시된 배가 ‘테세우스의 배’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판자는 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존재일 뿐 배 그 자체는 아니며 우리가 일관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은 질료인 판자가 아니라 형상을 갖춘 현실적인 존재인 배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러시아 경비병들에게 있어서 잔디밭 한가운데 서있는 행위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꽃을 지킨다는 목적 또는 가치와 합쳐져서야 비로소 의미가 있고 일관성의 추구대상이 될 수 있다. 여제의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려면 꽃이 시들어 죽은 후에도 그 자리에서 계속 경비를 서는 것이 아니라 잔디밭 가운데에 조그만 화단을 가꿔야 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일관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은 유형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흐르는 가치, 정신, 또는 궁극적인 어떤 것이다.
일관성의 폐해를 막으려면
그러면 일관성은 과연 좋은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은 이렇다. 일관성은 일종의 지름길이다. 그 자체로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로 인도하는 지름길은 좋고, 나락으로 떨어지도록 인도하는 지름길은 나쁜 것처럼 좋은 것의 일관성은 좋고, 나쁜 것의 일관성은 나쁘다. 처음에는 좋은 지름길이었다가 나중에 길이 끊기고 숲이 우거지는 것처럼 좋게 시작한 일도 시간이 흘러 여건이 변하면서 나빠질 수 있다. 그러므로 사고나 의사결정 또는 행동에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본능적인 충동을 갖고 있는 우리는 그 일관성이 좋은 일관성인지, 나쁜 일관성인지에 대해 심사숙고하고 끊임없이 판별해 내야 한다. 개인들의 습관 속에서, 기업의 전통 속에서 아무 저항과 반대 없이 면면히 이어지는 수많은 일관성들을 점검해야 한다.
물론 본능적인 충동에 저항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일찍이 소크라테스는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내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모른다고 여기면 비로소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묻고 따지며, 합리적이지 않은 것들을 걸러내게 된다.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이라는 화두가 경영계를 휩쓸던 2003년 11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는
우리 인식의 지평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제한하면 의외의 혁신이나 발전은 이뤄지지 않는다. 아는 만큼만 보이는 현실이 아는 것과 일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식은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만들어주지만 불행하게도 한번 만들어진 해결책은 어지간해서 바뀌지 않는다. 심지어는 문제를 가져온 환경적인 요인들이 바뀌거나 문제의 성격이 달라져도 똑같은 해결책이 끈덕지게 달라붙어 유일한 것으로 행세한다. 그래서 챌린저호와 같은 왕복우주선이 발사 도중에 폭발하고, 성수대교 같은 대형 교량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며, 잘나가던 코닥 같은 기업이 한순간에 부도를 맞는 일이 생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이런 일관성의 폐해를 막으려면 구성원들 가운데 적어도 일부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자세로 다음 4가지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알았다는 결론을 너무 일찍 내리지 말 것(The principle of deferment). 둘째, 완벽한 지식을 갖춰야만 실행에 나서는 자세를 버릴 것(The principle of prematurity). 셋째,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들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볼 것(The principle of irrelevance). 넷째,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것을 검토하고 버릴 것(The principle of waste). 모른다는 상태 그 자체로 머무르라는 얘기가 아니라 모른다는 것을 부족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산이자 기회로 생각하며 겸손한 태도로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가운데 실제로 뭘 모르는지를 적극적으로 찾아내라는 것이다. 페테르스부르크에 새로 부임한 젊은 장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 장교는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일에 대해 모른다는 가정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그 이유를 여기저기 묻고 다녔다. 그 결과 잘못된 일관성의 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잘못된 것이 아닌지 의심을 하면서도 이미 저지른 일이라는 이유로 자기합리화를 계속하기 때문에 그만 두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앞의 사례에서 천연원료로 신제품을 개발한 기업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럴 때 <설득의 심리학>을 쓴 로버트 치알디니는 이런 방법을 권유한다. ‘지금 이 시점에 알고 있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더라면 똑같은 결정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이다. 천연원료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도 그것을 써서 신제품을 개발했을까? 그 질문에 정말로 심사숙고해보고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면 지금이라도 결정을 뒤집어서 과감하게 일관성의 고리를 끊으라는 것이다. 처음 결정을 한 이후에 새로 얻은 정보나 지식, 느낌의 대부분은 그 결정을 지지하기 위해 편향되게 얻었거나 생긴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것들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현천 SK에너지 상무 [email protected]
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1986년 SK그룹에 입사해 회계, 국제금융, 투자가 관리, 구조조정, 해외사업, 전략수립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는 SK에너지 상무로 근무 중이다.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생물학, 인류학, 역사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 다독가(多讀家)이며 변화 추진을 위한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포용을 주제로 한 <나는 왜 사라지고 있을까>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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