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마케팅 군살빼기(Slim Marketing, Vo.16)’ ‘위기 시대의 전략기획(Vol.18)’ ‘조달원가 혁신(Vol.19)’ ‘불확실성 시대 및 경기 하강기의 전략(Vol.21,22)’, 불황기 인재관리 방법(Vol.23) 등을 스페셜리포트로 다뤘습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런 세부 분야의 경영 기법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가져오는 핵심 동력은 바로 ‘기업 문화’입니다. 훌륭한 기업 문화를 갖고 있다면 전략이나 전술상 일부 오류가 있더라도 역량을 갖춘 인재들이 문제점을 극복하면서 성공을 일궈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기 극복과 도약을 꿈꾸는 기업이라면 반드시 기업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는 기업문화 변화의 ‘호기(好機)’입니다. 2년 안팎의 짧은 기간 안에 급격한 조직문화 변화에 성공한 기업들의 사례와 이론, 실전형 솔루션을 종합했습니다. 위기를 탄탄한 조직문화 구축의 계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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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치 않지만 일부 기업은 지속적으로 우월한 성과를 낸다. 많은 경영학 연구자들은 경기변동과 산업구조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좋은 성과를 내는 기업의 공통점으로 우수한 ‘조직 문화’를 꼽는다.
실제 ‘초우량 기업의 조건(In Search Of Excellence)’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d To Last)’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 같은 초대형 베스트셀러들은 모두 성공 기업의 조직 문화를 연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책 저자들은 기업문화가 지속 성장의 핵심 요인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기업 문화를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기업 문화는 사회적 통념과 조직의 특성을 반영하는 데다 축적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배우기(learning)’도 만만치 않지만 ‘버리기(unlearning)’도 정말 어렵다. 따라서 많은 기업은 조직 문화 변화를 장기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드물지만 단기간에 급격한 조직 문화 변화에 성공한 기업도 있다. 엄격한 위계질서, 부서 간 높은 장벽, 혁신 부재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던 조직이 불과 2년 안팎의 짧은 기간 안에 변화와 혁신을 선도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한 사례가 있다. 현대오일뱅크와 KT파워텔이 그 주인공이다. 현대오일뱅크는 전통 산업에 속한 대기업이라는 특징, KT파워텔은 첨단 업종에 속한 공기업 문화를 가진 중소기업이라는 특징을 각각 지니고 있다. 사장 및 임직원에 대한 인터뷰 및 광범위한 자료 분석을 토대로 급격한 조직 문화 변화의 성공 동인을 분석했다.
Case Study 1
현대오일뱅크: 비효율적인 조직 문화와 위기
현대오일뱅크는 2000년 초까지 기업 문화 측면에서 거의 경쟁력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우선 상부에 의사결정권이 집중돼 있었다. 최고경영자(CEO)는 무려 1900여 건에 이르는 구매 관련 결재를 모두 처리했다. 사장실 앞에는 결재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전자결재 시스템이 있었지만 간부들은 종이 문서를 고집했다. 100여 명으로 구성된 스태프 부서 직원들은 고위 임원들의 ‘컨디션’을 파악해 ‘적기’에 서류를 상신하는 것을 핵심 업무로 여겼다.
회의도 연공서열을 중심으로 지정 좌석에 앉아 ‘지시’와 ‘질책’ 중심으로 진행했됐다. 상급자의 말이 곧 ‘법’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토론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직원들의 태만과 부패도 문제였다. 한 직원은 “과거에는 대리만 돼도 결재만 하는 등 위로 올라갈수록 일을 하지 않았다”며 “업무는 별로 없었지만 부장급의 권세는 대단했다”고 회고했다. 철저한 연공서열 문화로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직원들은 관례대로 승진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 회사는 별반 위기를 경험하지 않았다. 심지어 외환위기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국내 정유산업의 진입장벽이 워낙 높아 과점 체제가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득이 줄어들어도 기름 소비를 줄이기 힘든 데다 원유가가 변하면 판매가 조정을 통해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산업 구조의 특성 덕분에 비효율적 구조를 가진 기업도 생존할 수 있는 여건이 보장됐다. 따라서 직원들의 의식 속에는 “정유산업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불패 신화’가 자리 잡았다.
그러나 엉뚱한 시점에 위기가 찾아왔다. 보통 정유 회사는 실제 원유를 인도받기 3개월 전에 계약을 한다. 가격이 결정되는 시기와 제품을 인도하고 돈을 지불하는 시기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기간에 환율이나 유가가 급변하면 손익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외환위기 때도 안정적으로 수익을 낸 경험 탓인지 현대오일뱅크는 따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환율 및 유가 변동성이 훨씬 커지면서 현대오일뱅크는 2000년 1930억 원, 2001년 3910억 원의 대규모 적자를 냈다. 눈 깜짝할 사이 도산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