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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 종합

몰입과 창의성, 돈으로 살 수 있나?

최진남 | 49호 (2010년 1월 Issue 2)
A씨는 대기업에 갓 입사한 햇병아리 사원이다. 배정된 부서에서 고객들의 정보를 입력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하면서, A씨는 멘토인 선배 사원이 알려준 방법보다 더 효율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떠올랐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작업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고 더 정확한 업무 수행이 가능했다. A씨는 이 새로운 아이디어의 가능성에 스스로도 흥분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막상 A씨가 팀원들에게 새로운 업무 방식을 제안하자 ‘신입이 건방지다’ ‘기존 방식이 뭐가 어때서’ 라는 부정적인 반응들이 돌아왔다. 당황한 A씨는 그 후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입을 다물게 되었다.
 
B씨는 어학원에서 근무하는 입사 5년 차로 주어진 업무 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패기만만했던 사회 초년병 시절, B씨는 수강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강좌들을 개설하면 수강생 수가 늘어 회사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다. B씨는 자발적으로 새로운 강좌 커리큘럼을 짜서 회사에 제출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뿌듯했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 후로 어학원에서 새로운 커리큘럼에 관련한 업무를 무조건 B씨에게 맡기는 바람에 B씨의 업무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추가 근무 수당이 지급되기는 했지만 B씨는 시간당 같은 수당을 받으며 기계적으로 시험지를 채점하는 다른 동료들보다 머리 아프게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자기 업무가 더 성가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상사가 B씨의 커리큘럼을 어학원의 다른 지사에도 배포시키며 이를 상사 자신의 공으로 돌리는 경험을 하고 난 후로는 B씨는 의무 사항이 아닌 업무에는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
 

보상은 직원들의 창의성에 도움이 되는가?
최근 창조 경영, 혁신 등이 기업계 화두가 되면서 직원 창의성을 높이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창의성이란 독창적이고 유용한 아이디어, 업무 절차, 제품 및 서비스를 아우르는 개념이다(Baer, Oldham, & Cummings, 2003) 1 창의성은 급변하는 기업 환경에 대응해 조직의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핵심 역량으로, 학자들과 실무자들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도 창조, 창의, 도전 등을 최우선 경영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위 2가지 사례에서 보듯이 직원들의 창의성을 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잰슨 2 의 연구에 따르면, 직원들은 조직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을 어렵고 불편하다고 느낀다. 주로 창의성은 현 상황의 한계점과 개선점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발현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는 직원들은 직무나 회사에 불만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 상황을 바꾸려 한다는 오해를 사기 쉽다. 더구나 사례 A에서 보듯이 익숙하고 별 문제없이 작동하고 있는 기존 업무 방식이나 절차를 바꾸자는 제안은 동료들과 상사들을 짜증스럽게 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직원들로 하여금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에 따라 조직 내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일 방안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왔다.
많은 조직들이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보상 제도를 포함한 인적 자원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Fisher, 2004) 3 .주어진 업무가 아닌, 오히려 그 업무의 한계를 넘어서는 자발적 문제 해결 행위라고 할 수 있는 창의성에 외적 보상을 부여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례 B에서 보듯이 정당한 보상이 없는 상황에서는 시간과 자원의 제약상 직원들이 창의적 성과를 내기 어렵다. 보상이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이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놀랍게도 과연 보상이 창의성을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점은 오랫동안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1980, 1990년대까지도 창의성과 관련해 보상의 부정적인 효과를 강조하는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Deci & Ryan, 1985 4 Amabile, 1983 5 ).현재까지도 상당히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 관점에 따르면, 창의성은 직원들이 업무 자체에 대해 가지고 있는 내적 동기에 근거하며, 보상과 같은 외적 자극들은 직원들의 업무 수행을 제약해 업무와 관련한 자유로운 사고를 저해한다. 뿐만 아니라 보상을 받게 되면 직원들은 일 자체의 의미나 성취감보다는 외적 보상을 얻기 위한 일의 수단적 가치에 몰두하게 된다. 이 경우 직원들은 업무를 좁게 정의해 주어진 과업의 범위 내에서 지시에 따라 기대되는(혹은 기대된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성향을 보이며, 업무 수행과 관련해 주체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일에 대한 보상은 창의성을 죽인다(creativity killer)는 주장까지도 제기되었다.
 
이와 반대로 1990년대 후반부터 보상이 창의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Eisenberger & Rhoades, 2001) 6 .보상은 직원들의 업무 수행을 제약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해당 직원의 업무 수행이 조직에 중요하다는 점을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경우, 조직이 보상으로 직원들의 행동을 통제하기보다는, 직원들의 자신감과 업무 자체에 대한 자기 결정 능력(self determination or empowerment)을 강하게 느끼도록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외적 보상은 직원들의 창의성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는 회사의 외적 보상이 직원 통제용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창의성을 높이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보상 제도를 활용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보상이 실제로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이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형태의 보상이 창의성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많은 경영학 관련 연구들이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진행되어온 점을 고려한다면 보상이 직원들의 창의성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국내 조직의 맥락 안에서 경험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국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를 통해 보상이 국내 기업의 직원 창의성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에서 분석했다.
 
직무의 내재적 가치와 외재적 보상
앞서 밝힌 것처럼 보상이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립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전통 심리학에서는 직무 자체에 대한 관심과 열정 등에 기인하는 직무의 내재적 가치가 창의성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최근 연구들은 외재적 보상으로도 창의성을 높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국내 직장인들이 직무의 내재적 가치와 외재적 보상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양한 산업군에 분포되어 있는 41개 조직(제조업 21개, 연구소/연구개발(R&D)센터 9개, 금융기관 7개, 컨설팅 회사 4개)에서 일하는 직원 241명을 대상으로 연구 7 를 진행했다. 응답자의 주관성에 의해 연구 결과가 편향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 응답자들은 업무의 내재적 가치, 외재적 보상 등에 대해 보고하고, 결과 변인이 되는 창의성은 응답자들의 동료가 보고하도록 했다. 응답자와 동료들이 별도로 작성한 설문지를 연구 팀으로 직접 우편 발송하도록 해 보고 내용의 익명성을 확보했다.

<그림1>에 제시된 연구 결과에서 보듯이 내재적 가치와 외재적 보상 모두 국내 기업 직원들의 창의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고 있다. 일 자체에서 느끼는 도전감, 흥미, 성취감 등에 근거한 내재적 가치는 직원들의 창의성에 대한 심리적 몰입 혹은 창의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동기를 유발함과 동시에, 동료들이 평가한 창의성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고 있었다. 반면에 외재적 보상은 창의적 성과에 직접적인 효과를 주기보다는 창의성에 대한 몰입을 높임으로써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이는 외재적 보상으로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보상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중요함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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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진남[email protected]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최진남 교수는 서울대에서 조직심리학 학사·석사, 미국 미시간대에서 조직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캐나다 맥길대 경영대학에서 조교수로 6년간 재직했다. 이후 2007년부터 서울대 경영대학에서 인사조직관리 분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직행동 분야에서 한국경영학회 중견경영학자상, 한국갤럽 최우수논문상, 서울대 학술연구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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