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한 고객 경험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기술력이나 성능에 천착하기보다 ‘인간으로서의 고객’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인간의 동기를 인지적으로 접근하는 심리학 이론인 목표 시스템 이론(Goal Systems Theory)을 비즈니스에 접목하면 고객의 행동과 구매 동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목표 시스템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목표(Goal)와 하위 목표(Subgoal), 수단(Means)은 인지적으로 연결돼 있다. 어떤 사람이 선택한 수단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하위 목표보다 더 상위에 연결된 목표를 이해함으로써 그 수단을 선택한 진정한 동기를 이해할 수 있다. 일례로 독일 슈퍼마켓 체인 리들(LiDL)은 신선한 식재료를 싸게 구매하는 것은 단순한 하위 목표에 불과하며 진짜 목표는 “원하는 음식을 요리한다”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요리 레서피에 따라 식료품을 분류하고 있다. 목표 시스템 이론이 제안하는 대로 소비자의 상위 목표를 파악해 나가면 구매 행동을 유도하는 진정한 동기를 이해하고 이를 제품 설계에 반영할 수 있다.
기업이 인간의 동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대기업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자신이 맡은 제품과 기술을 애정하는 임원들을 자주 만난다. 건조기의 히트 펌프가 얼마나 효율적인지, 소음은 얼마나 작은지를 강조하거나,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오토매틱 도어가 왜 중요한지 등 제품의 하드웨어 스펙, 사양 등 기능적인 부분에 집중한다. 그러나 제품에 대한 과도한 애정은 고객을 간과하는 맹점이 될 수 있다. 일례로 TV 셋톱박스를 개발하는 기업은 셋톱박스의 발열을 잡거나 집 안에서 잘 안 보이는 곳에 숨겨둘 수 있도록 컴팩트하게 만드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고객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셋톱박스 리모콘이 제대로 작동하는 게 중요하다거나, 셋톱박스를 일종의 오브제처럼 만든다면 집 안 구석이 아닌 잘 보이는 곳에 두겠다는 니즈도 있다. 제품과 기술력에만 집중하면 이렇듯 고객의 숨은 욕구를 제대로 보지 못할 수 있다.
우수한 고객 경험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기술력이나 성능에 천착하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고객’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경영학과 공학의 그림자를 벗어나 심리학이 필요한 셈이다. 하지만 많은 경영 리더가 경영학과 공학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심리학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워한다. 심리학이 재무적 성과를 증명하는 데 무관심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기업 리더들이 보기에 심리학이 다루는 인간이란 존재가 이해하기 어렵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선입견이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인간은 세탁기처럼 설계도를 뜯어볼 수 없고 예상 매출 산식 같은 것도 없어 속마음을 도무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행동을 이해하기도, 미래의 행동을 예측하기도 어려워 정답을 알 수 없는 인간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불편해한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대단한 발전을 이룬 심리학 덕분에 우리는 이제 인간의 동기에 관한 나름의 설계도를 갖게 됐다. 인간의 특정 행동이 어떤 동기에서 시작하는지 이해할 수 있고, 특정 동기를 점화해서(Prime) 행동을 유도할 수도 있다. 특히 대중(Mass)을 상대로 제품을 제조·판매하는 대기업일수록 초개인화 전략을 바탕으로 제품을 다변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간 보편의 동기와 행동을 파악해 제품에 반영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이 글에서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의 동기를 이해하는 현장 중심 접근법과 이론 중심 접근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공감에 기반한 디자인싱킹(Design Thinking)과 직관을 위배하는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을 활용해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을 설계한다. 현재 국민대 경영대학과 테크노디자인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마케팅과 경험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에서 인문학 학사와 경영학 석사를 받았고 토론토대에서 마케팅 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