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는 달성하기 어려운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홀로 조직을 꾸리고 이끌어 가는 사람이다. 회사의 전략 방향을 주도적으로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며 자신이 스스로에게 역할을 부여해야 하는 자리이기에 어렵다. 그만큼 선도자로서 본질을 명확히 짚어내고, 조직이 가야 할 방향성을 안내하는 힘이 중요하다. 이와 동시에 본인의 이상을 실질적으로 구현해 나갈 조직을 디테일하게 통찰하는 눈이 필요하다. 각 본부/부서가 어떤 상태인지를 명확히 알고 각 조직을 어떻게 지원하고 독려해야 하는지에 관해 선명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
2000년대 초반, 삼성그룹은 책 『사장학 개론』을 사내 내부용으로 엮었다. 5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인데 삼성 임직원 대다수가 그 존재 여부를 알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만들어져 삼성그룹 사장단과 핵심 경영진에게만 제공됐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리더 사관학교인 삼성그룹에서, 오랜 수련을 거쳐 사장 자리에 오른 이들에게 이런 책이 별도로 배포됐다는 얘기는 그만큼 CEO라는 자리가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지를 반증한다.
다른 그룹에서 있었던 일이다. 역량이 매우 탁월해 많은 성과를 거둔, 그룹 내에서도 촉망받는 부사장이 있었다. 누구나 그가 사장으로 승진하리라 여겼고 실제로 그리됐다. 승진하고 얼마 후, 그는 그룹 인사팀에 전화 한 통을 걸어 이렇게 말했다. “부사장으로 일할 때까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했습니다. 윗사람을 견주어 보면서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해야지’ 가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장이 되고 나서 휘하 임원들, 동문들과 축하주를 마시느라 2개월이 지났습니다. 문득 정신 차리고 보니 눈앞이 깜깜해지네요. 나는 사장으로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지?라고 자문해 보니 길이 안 보입니다. 갑자기 식은땀이 났습니다. 제 어깨 위에 임직원 수천 명의 생계가 달려 있는데 이렇게 아무 생각이 없었다니… 리더 생활은 오래 했지만 사장은 초보입니다. 초보 사장을 위한 가이드를 만들어 주길 바랍니다.”
조직에서 역할은 그 개인이 담당하는 기능으로 정의된다. 또한 상사, 동료, 부하들이 기대하는 바에서도 나온다. 고위 경영진으로 올라갈수록 회사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전략으로부터 역할이 상당수 규정된다. 그런데 CEO는 독특한 자리다. 회사 전략 방향을 주도적으로 고민하고 결정하는 자리이기에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 그만큼 어려운 자리다.
필자는 현재 국민대 경영대학원에서 조직 문화와 리더십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LG그룹, CJ그룹, 기아에서 인사 자문을 하고 있다. SK그룹 SUPEX추구협의회에서 임원 진단과 분석을, 롯데그룹에서 임원 육성을 담당했다. 저서로는 『조직문화 통찰』 『최고의 조직: 리더가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