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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정국을 통해 본 ‘K-사주’ 인문학

“성실하게 살되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
사주를 과학 잣대 아닌 K-문화로 봐야

김두규 | 375호 (2023년 0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사주는 미신인가, 과학인가, 통계인가? 질문부터 잘못됐다. 사주는 믿음의 영역이지 과학의 영역이 아니며, 문화이지 진리가 아니다. 사주는 운명, 즉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고 이를 엿보려는 시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화다. 위대한 성인의 반열에 오른 공자나 맹자도 운명론자였으며, 이들도 운명을 거스르기보다는 수용하는 것이 군자와 소인을 판가름하는 요인이라고 봤다. 사주는 또 ‘삼국시대→고려→조선→현대’의 시대적 흐름과 사회경제 체제에 맞게 변화를 거듭해 왔다. 21세기 글로벌 노마디즘 시대에도 사주가 의미를 가지려면 시대착오적인 해석을 뒤로 하고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인한 수명연장, 치안과 재난 구조 발달, 저출산과 만혼, 비혼 등 결혼 풍토의 변화, 직업군의 다양화 등의 맥락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유연한 접근과 현대적 변용이야말로 ‘K-사주’가 애물단지 골칫거리가 아닌 어엿한 문화로 인정받고 나아가 ‘세계-사주’가 되기 위한 선결 조건일 수 있다.



2023년 7월 25일, 미국 음악 전문 매체 빌보드는 BTS 정국의 첫 솔로 싱글 ‘세븐(Seven)’이 메인 싱글 차트 ‘핫100’ 1위에 진입했다고 발표했다. 언젠가 영국 BBC 인터뷰에서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가수”로 정국을 소개한 바 있는데 그 말대로 된 셈이다. BTS의 막내인 정국은 ‘운명을 믿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팔에 새긴 타투에 자신의 운명을 새겨 넣은 것이 이를 보여준다. 정국의 타투는 ‘시계→사슬→마이크→음표’로 이어지는데 시곗바늘은 그가 태어난 시각인 3시 23분을 가리킨다. 시계는 마이크 줄(사슬)로 이어지는데 마이크의 목적어는 음표다. 그는 이를 두고 “태어날 때부터 노래할 운명이라는 뜻”이라고 해석하며 운명을 믿기에 “지난 일을 후회하는 것이 제일 미련한 짓”이라 말한다. 어차피 운명이니까.

결국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사주를 풀이하는 기술, 즉 사주술이 생긴 것도 이 ‘운명’ 때문이다. 사주술은 성실과 신의로 살되 그 종착지는 운명과 하늘의 뜻에 맡기자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운명과 하늘의 뜻을 엿보기 위한 시도인 사주는 과연 미신인가? 과학인가? 아니면 통계인가? 사실 이런 질문은 그 자체로 잘못됐다. 미신이냐, 과학이냐를 따지는 것은 ‘하느님이 있느냐, 없느냐?’와 같은 질문일 수 있다. 믿음의 문제이지 과학의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사주 풀이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다. 사회학적, 사상사적, 문화사적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연구해야 할 대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인문학 지식인들은 사주가 곧 문화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편견이자 오리엔탈리즘에 기반을 둔 입장이다. 서구인의 우월적 관점에서 동양에 대한 지식 체계를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긴 역사를 거치면서 사주에는 지배계급의 의도적인 봉건 윤리관이 반영되기도 했고, 역술가들의 주관적인 견해가 개입되기도 했다. 권력, 기만, 학술, 도참 등이 뒤섞여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땅의 풍토와 역사 속에서 형성돼 왔고, 이 땅의 사회경제 체제에 맞게 변화를 거듭해 왔다는 점에서 분명 우리의 민속이자 문화다. 그리고 지금처럼 ‘K-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시기, ‘K-사주’도 얼마든지 ‘세계-사주’로서 동양을 넘어 서양에 수출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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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맹자 등 성현도 ‘운명’을 믿었을까?

사람이 잘나가면 자기가 잘나서라고 한다. 불행하면 조상 탓을 한다. 조상 탓하기가 죄송하면 운명을 탓한다. 성현도 마찬가지다. 잘나갔으면 운명을 말하지 않았다. 유학 창시자로서 석가·예수와 맞먹는 성인 반열에 오른 공자도 마찬가지다. 공자는 왜 운명론에 빠졌을까? 그는 일찍이 천하를 돌면서 자신의 정치를 펼치고자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고생만 하다가 좌절 후 운명 앞에 굴복했다. 이때 그의 나이 50세였다. “내 나이 50에 천명을 알았다(五十知天命)”는 말도 이런 깨달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운명론에 동의하면서 “사람의 살고 죽음에는 일정한 명이 있고, 부귀 여부는 하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공자는 이후 정치의 꿈을 접고 후학 양성으로 ‘업종 전환’을 한다. 만약 그가 계속 정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주변을 얼쩡거렸다면 ‘탐욕스러운 늙은이’로 비웃음을 사고 지금처럼 성인으로 불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공자의 2인자인 맹자도 운명론을 받아들였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해도 그렇게 되는 것은 하늘의 뜻이고, 이르게 하지 않으려 해도 이르는 것이 운명이다”라고 말했다. 공자와 맹자 모두 군자와 소인 구분을 운명 수용 여부로 판별했다.

“운명이 아닌 것이 없지만 순수하게 그 바른 것을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운명을 아는 사람은 위험한 담장 아래 서지 아니한다. 도를 다하고 죽는 것은 바른 운명이고, 형틀에 묶여 죽는 것은 바른 운명이 아니다”라는 말에 그들의 가치관이 함축돼 있다.

공자와 맹자는 사람마다 정해진 운명이 있음을 인정했으나 그 원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 개인의 운명은 어떻게 정해질까? 운명의 근원, 즉 사람마다 운명이 다른 이유에 천착한 성현은 중국 최초 유물론적 사상가로 평가받는 후한(後漢)의 지식인 왕충(27~97)이다. 왕충은 운명론의 완결자이자 사주술의 선구자다. 가난으로 인해 책을 사 볼 수 없었던 그는 당시 수도 낙양의 책방을 돌며 책이란 책은 모두 읽었다고 한다. 한 번 읽은 책은 그대로 암기를 할 정도로 시대의 천재였지만 그는 ‘흙수저’였다. 배경이 없던 그는 벼슬에 나아가지 못하고 가난에 허덕였다. 끝내는 알 수 없는 운명 앞에 굴복해 다음과 같이 독백했다.

“부귀에는 마치 신령의 도움이 있는 것 같고, 빈천에는 귀신의 재앙이 있는 것 같다. 귀하게 될 명을 지닌 사람은 남들과 함께 배워도 홀로 벼슬을 하고, 함께 관직에 나가도 혼자 승진한다. 그러므로 높은 재주와 후덕한 행실을 지녀도 반드시 부귀해지리라고 보장할 수 없으며 지혜가 모자라고 덕이 천박해도 반드시 비천해지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

마지막 문장 ‘높은 재주와 후덕한 행실’을 언급한 것은 공자·맹자 같은 성현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여기서 운명을 ‘운’과 ‘명’으로 구분한다. ‘운’은 이 글의 끝부분에서 설명하고 ‘명’부터 이야기하자. 명(命)의 근원은 무엇일까? 왕충은 사람이 어머니 배 속에 잉태될 때 하늘로부터 받은 서로 다른 기(氣) 때문이며 이러한 기는 하늘의 별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왕충에 따르면 인간과 별은 운명의 쌍둥이다. 그래서 생겨난 단어가 ‘숙명’이다. 숙(宿)은 별자리를 의미하며 명(命)은 인간에게 예정된 부귀와 빈천, 수명의 길고 짧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수많은 별 가운데 어떤 별이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가? 대표적인 것이 ‘음양오행’이란 별이다. 음양오행은 해(日)와 달(月) 2개와 지구(土)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있는 목성(木)·화성(火)·금성(金)·수성(水) 5개(오행)를 합친 것을 가리킨다. 이 7개 별인 칠성이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전통 사주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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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두규[email protected]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김두규 교수는 한국외대 및 동 대학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에서 독문학, 사회학, 중국학을 수학한 후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해 1994년부터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0년에 공식적으로 독일 문학에서 풍수지리로 전공을 바꾸었다. 2007년부터 2017년 4월까지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풍수지리)으로, 2017년 5월부터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민속학)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주의 탄생(2017)』 『권력과 풍수(2021)』 등 총 24권의 역서와 저서를 집필했고 ‘사주이론들의 사회사적 배경 연구 시론’ 외 10여 편의 사주와 풍수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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