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Innovation
편집자주
한국 최고의 마케팅 사례 연구 전문가로 꼽히는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가 전 세계 도시의 혁신 사례를 분석한 ‘City Innovation’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환경 변화와 거센 도전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도시를 운영한 사례는 행정 전문가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전략과 조직 운영, 리더십 등과 관련해 좋은 교훈을 줍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가장 미국다운 도시, 갱스터 도시, 블루스 도시, 그레이(grey) 도시, 마천루 도시, 바람 도시, 세컨드 시티, 곡물과 금융 선물(futures) 도시, 예술 도시….’
미국 중서부의 대도시인 시카고는 유난히 별칭이 많다. 그만큼 도시의 역사가 깊고 자산도 풍부하다. 최근에는 새로운 별칭이 붙었다. 1989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22년간이나 재임한 리처드 M. 데일리 시장은 시카고를 친환경 도시, 친기업 도시, 컨벤션 도시, 관광 도시로 이끌었다. 시장의 리더십이 도시 브랜드를 만들고 성장의 기반을 확보한 것이다. 데일리 시장의 시카고 개조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그린 시카고’의 도전
데일리 시장은 시카고를 미국에서 가장 친환경 도시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08년 ‘시카고 기후행동 계획(CCAP)’을 출범시키고 도시 여기저기에 나무를 심고 건물 지붕에 공원을 만들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나갔다. 시카고시는 앞으로 매년 8만3000그루의 나무를 심을 계획도 세워놓았다.
CCAP는 크게 녹색지붕 만들기, 청정 에너지원 만들기, 교통수단 개선하기, 쓰레기와 산업폐기물 줄이기, 기후변화에 적응하기의 5가지 사업을 벌이고 있다. 시민들은 데일리 시장이 제안한 그린방갈로 정책에 동참해 건물 옥상에 나무를 심어 녹색공간으로 만들었다. 시청은 사람들이 대체에너지원인 태양열 집적판을 설치하는 데 보조금을 지급했다. 시카고시는 전력 소비량의 4분의1을 지속 가능한 대체에너지원으로 바꿀 계획이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25% 줄이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카고 기후행동 계획의 성과와 추진 상황을 대시보드(Dashboard)로 만들어 정기적으로 공개했다. 시민들이 직접 확인하고 피부로 느끼도록 한 것이다.
도심을 살려라
데일리 시장은 도심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도심의 미시간 호변에 밀레니엄파크를 조성했다. 이 아이디어는 1977년 시카고 시민단체들이 수변 개발을 통해 행위예술 파빌리온을 건립하자고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1997년 데일리 시장은 이곳에 공연장 건립을 추진했고 방치된 철로 부지와 주차공간을 기존의 그랜트파크와 연계한 공원 부지로 개발하는 밀레니엄파크 계획을 세웠다. 은색 스테인리스의 땅콩 모양으로 만들어져 하늘의 구름을 볼 수 있는 클라우드 게이트, 야외에서 멋진 음향의 공연을 들을 수 있는 제이 프리츠커 파빌리온, 수많은 시카고 시민들의 진솔한 모습을 동영상으로 틀어주는 탑 모양의 크라운 분수 등의 명소가 밀레니엄파크에 들어섰다. 데일리 시장은 개발 과정에 민간 기업의 기부를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대형 사업을 하다가 감당하기 힘든 빚더미에 올라 앉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보잉 항공사가 후원한 보잉 갤러리, 체이스은행이 후원한 체이스 산책로, 에너지기업인 BP가 후원한 BP 브리지, 통신기업인 AT&T가 후원한 AT&T 플라자가 밀레니엄파크에 들어섰다.
‘세컨드 시티(Second City).’ 미국 시카고는 한때 세계 최고의 도시로 불리는 뉴욕에 버금가는 대도시였다. 지금도 뉴욕,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인구 3위의 대도시다. 2010년 시카고의 인구는 270만 명이다. 1850년에 인구 3만 명의 시카고는 1900년에 170만 명, 1950년에는 362만 명으로 급증했는데 이때가 최절정기였다. 피크 시기에 비하면 현재 시카고 인구는 25% 줄어든 상태다. 하지만 도시 인구가 인접한 교외 지역으로 이동한 것을 감안하면 시카고 지역은 계속 번성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시카고 도시를 포함한 광역 시카고(Chicago Metro)의 인구는 946만 명에 이르고 있다.
미국 시카고는?
기업도시 시카고
데일리 시장은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미국 도시 중에는 주민들의 반발이나 친환경 도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고층 빌딩 건축 허가나 주택 신축 허가를 잘 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카고는 도시 전체 조경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적극적으로 건물 신축을 허용했다. 시카고 메트로폴리탄 지역에서 1990년부터 2009년까지 20년에 걸쳐 372만㎡나 되는 사무실 공간이 새로 만들어졌다. 부동산 공급이 많아지니 사무실 임대료가 경쟁도시보다 낮아졌다. 또 2002∼2008년 시카고는 2002년 주택 재고의 6%에 해당하는 주택 6만6000채의 신축을 허가했다. 전망이 좋은 미시간 호수 변에도 아파트를 짓도록 했다. 이 결과 시카고의 사무실 임대료는 보스턴이나 샌프란시스코의 3분의2, 아파트 임대료는 뉴욕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사무실 임대료와 주택 가격이 저렴하면 기업이 부담하는 인건비나 임대료 비용이 줄어든다.
이 결과 기업들이 시카고에 들어섰다. 시카고에는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 중 12개 기업, 파이낸셜타임스 500대 기업 중 17개 기업의 본사가 입주해 있다. 시카고에는 보잉 본사, 유나이티드항공과 컨티넨탈항공이 합병한 유나이티드컨티넨탈홀딩스, 크래프트푸드, 맥도날드, 시어즈홀딩스, 모토롤라 등의 본사가 있다. 이 밖에 헬스케어 기업인 박스터 인터내셔널, 애버트 래버러토리가 있고 그루폰, 커리어빌더 같은 벤처기업들도 있다.
시카고 기업 유치전의 백미는 85년간 시애틀에 있었던 보잉을 시카고로 유치한 것이다. 시애틀시는 보잉사의 공장 확대를 허가하지 않았다. 반면 시카고시는 큰 규모의 세제 혜택을 비롯해 각종 인센티브를 보잉사에 제공해 2001년 보잉 본사를 시카고로 유치했다.
예술도시 시카고
시카고는 예술 도시로도 명성이 드높다. 시카고의 춥고 긴 겨울은 야외보다 실내활동을 위한 시설 수요를 자극했다. 1885년 세계 최초의 철제 고층건물이 들어선 이후 마천루의 도시가 된 뒤에는 건물 내부를 가꾸기 위한 미술품 수요가 늘었다. 이 결과 각종 박물관과 미술관이 들어섰다. 1893년 시카고에 열렸던 세계박람회에 맞춰 1891년에 문을 연 시카고아트뮤지엄(Art Institute of Chicago Museum)을 비롯해 미술관과 박물관이 매우 많다. 1998년 시카고시는 뮤지엄 캠퍼스(Museum Campus)를 열고 시민과 관광객이 시카고의 유명한 박물관들을 저렴하게 볼 수 있는 정책을 도입했다. 도심의 호변에 있는 필드자연사박물관, 애들러천문관, 셰드해양박물관 등을 포함해 박물관을 저렴하게 관람할 수 있는 패키지 입장권 제도를 마련했다. 박물관들을 분리시킨 도로까지 다른 곳으로 옮겨 사람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게 했다.
시카고는 아트페어(Art Fair)로도 매우 유명하다. 시카고 아트페어는 상대적으로 늦게 1980년에 생겼으나 스위스의 바젤아트페어, 독일의 쾰른아트페어와 함께 전 세계 3대 아트페어로 발돋움했다.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아트페어는 한때 번성했지만 이제 중단됐고 보스턴과 샌프란시스코 아트페어는 시카고에 미치지 못한다.
관광과 컨벤션의 도시
2008년 통계를 보면 시카고가 관광 도시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2008년 미국 내 여행자 3240만 명이 시카고를 방문했고 비즈니스 여행자는 1170만 명, 외국 관광객은 130만 명이 왔다. 이로 인한 경제유발 효과는 118억 달러에 이른다. 시카고에 이렇게 관광객이 많이 오는 이유 중 하나는 미국 미드웨스트(Midwest)의 중심도시로 허브 공항이 있기 때문이다. 오헤어국제공항으로 항공노선이 집결되고, 도로망도 집결하는 곳이라 이동객이 많다. 시카고의 쾌적한 환경, 아름다운 건축물, 걷고 싶은 대규모 공원 시설도 중요한 관광 포인트다. 대기업이 많이 포진해 있고 컨벤션이 매우 활성화돼 있는 것도 시카고를 관광 도시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시카고는 미국 내에서 라스베이거스, 올랜도에 이어 세 번째로 컨벤션이 많이 열리는 도시다. 시카고 시가 자랑하는 맥코믹 플레이스(McCormick Place) 덕분인데 미시간 호수 연변에 있는 이 공간은 미국 최대 컨벤션 시설이다.
시사점
데일리는 22년간 시카고 시장으로 장기 재직하면서 여러 업적을 남겼다. 취임 초기부터 친환경 정책을 적극 추진해 시카고를 청정 도시로 만들었다. 도심 공원을 획기적으로 확충해 삶의 질을 높였다. 환경에 크게 손상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건물과 주택 신축을 폭넓게 허용해 주거와 사무실 비용을 줄였다. 보잉 같은 대기업의 본사를 유치하고 시카고가 기업이 활동하기에 좋은 친기업 도시라는 이미지를 널리 알렸다. 시카고의 풍부한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과 세계적 수준의 활발한 컨벤션 시설은 관광 도시로 자리를 잡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물론 리처드 M. 데일리가 모든 것을 다 잘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업을 전개하느라 시카고의 재정적자는 2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시카고 도심과 북부, 남서부 지역은 크게 좋아졌지만 다른 지역 개발에는 소홀히 해 지역 불균형을 심화시켰다는 비난도 받는다. 2016년 하계 올림픽 게임을 유치하는 데에 실패해 시카고 시민을 크게 실망시켰다.
이런 비판에도 데일리 시장은 시카고의 오늘을 만든 훌륭한 리더로 평가받고 있다. 도시 경영자가 도시의 자산을 발굴해 매력적인 도시 브랜드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실제로 보여준 시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 시장에서 물러나 시카고대의 해리스 공공정책대학원(Harris School of Public Policy)의 선임연구원(Senior Fellow)을 맡아 향후 5년간 자신의 시장직 경험을 많은 사람들과 나눌 계획이다.
데일리 가문과 시카고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핵심 측근으로 최근까지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람 이매뉴얼(Rahm Israel Emanuel)이 2011년 5월 시카고의 55번째 시장에 취임했다. 이매뉴얼의 선임자는 리처드 M. 데일리(Richard M. Daley)인데 그는 1989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22년간 시카고 시장직을 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6선 시장인데 물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선출됐다. 흥미로운 사실은 리처드 M. 데일리의 부친인 리처드 J. 데일리도 1955년부터 1976년까지 21년간 재임한 시카고의 6선 시장이었다. 아버지 데일리는 같은 아일랜드계인 케네디 대통령의 막강한 후견자였다. 아들 데일리는 오바마 대통령의 후견자로서 시카고시는 물론 미국 정치에도 영향력이 상당히 크다. 버락 오바마의 부인 미셸 오바마도 1990년대 초반에 데일리 시장의 보좌역을 맡은 적이 있다. 데일리 가문은 어떻게 시카고 정계를 오랫동안 장악할 수 있었을까? 시카고는 아일랜드계 주민이 많고 민주당의 파워가 막강한 곳이다. 데일리 부자는 모두 한 지역구를 물려받는 아일랜드계 골수 민주당원이었다. 정치적, 행정적으로 확실히 통제를 할 수 있을 만큼의 투표권을 장악하고 있는 당 조직을 폴리티컬 머신(political machine)이라고 하는데 데일리 가문은 이것을 최대한 활용했다. 폴리티컬 머신은 조직적 부패로 많이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데일리 부자는 큰 대과 없이 시카고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버팔로, 클리블랜드, 디트로이트 같은 미국 중서부의 많은 도시들이 쇠퇴했지만 시카고가 예외적으로 성장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 [email protected]
필자는 마케팅 컨설팅 회사인 리드앤리더 대표이자 비즈니스 사례 사이트인 이마스(emars.co.kr)의 대표 운영자다. 서울대와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한국은행과 SK에너지에서 근무했고 건국대 겸임 교수를 지냈다. <로하스 경제학> <글로벌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하인리히 법칙> 등의 저서와 <깨진 유리창 법칙>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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