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DBR(동아비즈니스리뷰)이 한국형 리더십 연구회, 한국학 중앙 연구원 세종 리더십 연구소가 개최한 ‘한국형 리더십 컨퍼런스’의 내용을 요약해 전합니다. 이 컨퍼런스는 그 어느 때보다 지도층의 리더십 발휘가 절실한 시기에 각계 각층 리더십의 우수 실천 사례를 발굴, 바람직한 한국형 리더십의 역할 모형을 제시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DBR은 한국형 리더십에 관한 활발한 논의가 오랫동안 서구의 리더십을 맹종해왔던 한국 사회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더 많은 한국형 리더십을 발굴할 계기로 작용하기를 기대합니다.
조선시대의 공물(貢物) 제도는 원래 각 지역이 해당 지방의 특산물을 바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각 지방이 짊어져야 할 부담이 천차만별인데다, 특산물의 수송 및 저장에 불편이 많고, 관리들의 부정 행위도 심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전란으로 인한 피해 때문에 농민 부담은 점점 느는데도 국가 수입은 줄어드는 사태가 빚어졌다.
결국 조선 정부는 모든 공물을 쌀로 통일해 바치게 한 납세제도, 즉 대동법(大同法)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대동법은 조선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앞당긴 혁신적인 제도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시행 전에는 대지주 및 아전들의 반발이 심해 국왕도 섣불리 제도를 시행할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일반 농민들의 부담은 줄어드는 대신 소수 대지주의 부담이 늘어나는 게 대동법의 골자였기 때문이다.
효종 때 영의정까지 지낸 김육은 이 대동법의 실행을 가능케 한 일등공신으로 불린다. 당시 조정 내에는 대동법의 반대론자들이 대다수였다. 효종이 김육을 우의정으로 임명하려 하자 그의 정적들은 김육을 우의정으로 임명하지 말라고 효종을 압박했다. 김육은 이에 굴하지 않고 효종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동법을 실시하시려거든 신을 쓰시고, 그렇지 않으면 신을 노망한 재상으로 여기고 쓰지 마십시오.” 배수진을 친 그는 마침내 대동법을 관철시켰다.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과 능력을 지닌 한 재상의 리더십이 한국 역사에 남긴 자취가 이처럼 컸다.
하지만 한국인 중 김육의 이름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눈만 뜨면 리더십에 관한 보도가 쏟아지는 세상이지만 절대 다수는 스티브 잡스, 잭 웰치, 리처드 브랜슨 등 해외 유명인사가 무엇을 했는지에 관한 내용들뿐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한국형 리더십은 과연 무엇이며, 우리는 과연 어떤 사례에서 한국형 리더십의 표본을 찾아볼 수 있을까.
한국형 리더십 연구회, 한국학 중앙 연구원 세종 리더십 연구소가 12월 1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개최한 ‘제3회 한국형 리더십 컨퍼런스’에서 이 문제가 집중 논의됐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허영호 LG이노텍 대표이사, 김정유 육군 대령, 송혜진 숙명여대 교수, 박현모 한중연 세종 리더십 연구소 연구실장 등 리더십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는 기업, 군대 등 다양한 한국 조직에서 실천한 한국형 리더십에 관한 사례 보고가 이어졌다.
한국형 리더십의 8가지 특징
한국형 리더십 연구회는 2010년 5월부터 조선 시대와 현대 한국 사회에 등장한 다양한 리더십 관련 자료 및 사례를 분석해 도출한 한국형 리더십의 8가지 특징을 소개했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표)
김육의 일화는 이 8개 특징 중 미래비전과 하향온정이 특히 잘 발현된 사례다. 1651년(효종 2년) 조선 정부는 충청도에서만 대동법을 시범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조판서 김집을 비롯한 상당수 대신들이 대동법을 강력하게 반대하며 김육과 맞섰다. 여기에 방납을 통해 사리사욕을 챙기던 중앙 관료, 서리, 거상, 지방 토호들까지 합세해 김육을 압박했다.
하지만 김육은 굴하지 않았다. 그는 대동법이 일반 백성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각계각층에게 널리 알리고, 최종 결정권자인 효종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는 “하늘도 백성들이 소망하는 바를 따라주는 데 임금이 하늘의 뜻을 본받는 도리에 있어 어떻게 백성의 뜻에 순응하는 일을 먼저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탐욕스럽고 교활한 아전들과 모리배들이 대동법의 어려움을 원망해 헛소문을 퍼뜨려 교란시킬 것이니 신은 이 점이 염려됩니다”라며 효종의 결단을 추구했다.
그는 대동법이 조선의 근대화를 앞당길 제도라는 점에 추호의 의심도 품지 않고 이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미래지향적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체계적 계획을 수립해 이를 실천할 줄 아는 역량, 즉 미래비전을 제대로 실천한 셈이다. 소수 대지주와 대다수 관료들의 극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한 점은 하급자들과의 끈끈한 정에 기초해 관용을 베풀며, 희생하고, 보호해주고, 키워주려는 애틋한 마음을 뜻하는 하향온정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선승이후구전(先勝而後求戰)으로 완승(完勝)
군 리더십 사례로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63대 청솔대대장(8사단 10연대 2대대장)으로 근무한 김정유 대령의 사례가 소개됐다. 그는 이 기간 중 사단 선봉대대를 비롯해 10여 회의 부대 및 개인 표창을 수상하며 리더로서의 성과를 인정받았다.
청솔 대대장으로 부임한 직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지피지기(知彼知己) 중 지기(知己), 즉 부대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었다. 그는 병사들과 다양한 통로로 만나 부대의 강·약점에 관한 그들의 분석을 경청했다. 청솔대대의 강점은 전통 있는 대대라는 자부심, 강한 전투력, 부대의 뛰어난 자연환경이고, 약점은 군 생활 동안의 비전 및 목표 부재, 휴가 등 기본권 보장의 미흡함, 간부 간의 단결 부족, 일방적 커뮤니케이션과 간부들의 권위 의식 등으로 나타났다.
조직 전체에 명확한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기 위해 김정유 대대장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선승이후구전(先勝而後求戰)’이라는 말을 인용한 개혁에 나섰다. 이는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을 완전하게 갖춰놓은 후에 전쟁을 한다는 뜻으로, 실제 전투에서의 승패가 평시 훈련의 결과에 달려있음을 강조하는 용어다. 그는 “평상시에 부하들이 땀 한 방울을 더 흘리도록 만들어 전시에는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진정한 리더”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선 지휘통제실의 시스템부터 보강했다. 산재된 유문서 장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일괄 통합했고, 지휘통제실 근무자의 임무 분담표를 제작, 활용했으며, 주둔지 방호계획의 보안, 지휘통제실 임무 수행철 등을 만들어 활용했다. 완벽한 작전 임무 수행의 장애물로 지적된 특정 소대 위주의 훈련이라는 문제점도 고치기 위해 애썼다. 그는 전 소총 소대가 임의 지형에서도 지뢰, 철조망 등을 효과적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실시했다. 특히 과거 대부분의 장애물 설치 연습을 평지 위주에서 했던 것과 달리 실제 지형에서 설치하도록 방식을 바꿨다.
자살사고 예방 시스템도 도입했다. 이 제도는 한 이병의 극단적인 선택까지 막을 수 있었다. 청솔대대는 신입 및 전입 병사들을 특유의 정밀 신상 파악 시스템을 통해 분류한다. 이 중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어 대대장 보호·관심 병사로 분류된 병사들은 ‘VISION CAMP’에 입소해야 한다. 청솔대대의 각 분대장은 해당 병사와 1대 1 멘토 관계를 맺고 그를 밀착 관리한다. 그 외에도 ‘벌떼 작전’이란 이름 하에 해당 병사 주위의 모든 사람들, 대대장, 동료 병사, 군의관, 목사 등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해당 병사가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애썼다.
꼭지점 댄스를 추며 신세대 병사들과 어울리는 리더
김 대령은 리더십의 핵심이 ‘배려’와 ‘소통’이라고 강조했다. “기업 리더와 달리 군대 리더들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부하로 뽑을 수 없다. 병사는 군대에 자의로 오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병사들의 개개인의 학습 능력, 전투 능력, 성격, 태도 등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말 한 마디만 해도 알아듣는 병사가 있는 반면, 열 번을 설명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병사도 있다. 이러한 차이를 인지하고 리더가 먼저 조직원 개개인을 배려하는 게 리더십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특히 병사들이 신세대임을 고려해서 사이버 의사소통에도 주력했다. 평상시는 물론 휴가 중에도 미니홈피, e메일 등을 이용해 항상 병사들의 안부를 묻고 업무의 어려운 점이나 개선 사항에 관해 먼저 그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김 대령은 중대장 시절 가수 서태지의 안무를 배웠고, 대대장 시절에는 병사들과 꼭지점 댄스를 하며 격의 없이 어울렸다. 연대장으로 진급한 지금도 2PM과 같은 아이돌 가수의 노래와 안무를 따라 하며 신세대 병사들과 소통하려 애쓴다.
김 대령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려면 쌍방향이 아니라 네방향 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상·하·좌·우를 연결하는 의사소통 체계를 정립하기 위해 직급별 간담회, 멘토링 제도, 칭찬 릴레이, 분대장 리더십 캠프 등을 열어 군대의 경직된 계급·계층 간의 벽을 허물고, 대화를 중시하는 병영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힘썼다.
네방향 의사소통의 정점은 초급 간부들과 즐기는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다. 이 파티는 대대장과 간부들이 각자 간단한 음식을 가져와 즐기며 자유롭게 대화하는 것이다. 이 파티에 참석한 한 부사관은 재정난을 겪고 있는 자신의 집안 사정 때문에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김 대령은 즉각 모금 운동을 벌여 그 부사관을 도왔다. 이를 계기로 그 부사관은 마음의 안정을 찾고 군 생활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했다.
또한 그는 ‘위험한 곳에는 항상 리더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생각, 즉 ‘동사형 인간’을 강조했다. 교육 및 유격 훈련을 할 때도 먼저 시범을 보이고, 상의를 벗은 채 병사들과 참호 격투를 하며 뒹구는 걸 즐겼다. 부대의 간부들과는 축구 동아리를 만들어 지역 대회에서 입상하기도 하고 국방일보 등을 통해 병영 문화 혁신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피력하기도 했다.
병사들의 복무 태도는 엄격하고 딱딱한 부대 문화를 바꾸는 데 중요한 요소다. 젊은 병사들 중에는 군대에서 보내는 2년을 인생의 공백기로 생각하고 부정적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들이 있다. 병사들의 마인드를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김 대령은 병사들에게 “군대 생활은 보물 창고”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외우게 했다. 군대는 짧은 시간 안에 대인관계, 리더십, 인내와 극기, 정신력, 체력 등을 배우고 기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는 병사 개개인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자기계발에 힘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 애썼다. 전역을 앞둔 병사는 꼭 따로 불러 군 생활 전체의 성적표를 전달하고 군 생활을 통해 어떤 점을 얻었는지에 관한 상담을 하는 일도 빼먹지 않았다.
파이넥스 공법 개발에 투영된 한국형 리더십의 실체
기업 리더십 사례로는 포스코의 ‘파이넥스 공법’이 소개됐다. 포스코의 파이넥스 공법은 종래 용광로 공법의 문제점, 용광로 방식의 다음 단계인 코렉스 공법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용광로 공법이나 코렉스 공법은 300년 이상의 오랜 역사를 지닌 공법이지만, 투자비 부담이 높고 두 공정을 거치면서 발생하는 환경 오염 물질의 배출도 많아 문제점으로 꼽혔다. 1980년대 후반 세계 메이저 철강업체들이 용광로 공법을 대체할 21세기 형 최첨단 철강기술 개발 경쟁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포스코는 1992년 말 오스트리아의 푀스트 알피네(VAI)가 개발한 코렉스 공법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 공법을 시행하려니 과거 두 공법을 쓸 때보다 훨씬 많은 돈이 필요했다. 코렉스 공법은 자연 상태의 가루 철광석을 사용할 수 없고 덩어리 철광석만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덩어리 철광석은 세계 철광석 매장량의 20%에 불과한데다 가격도 매우 비쌌다. 게다가 IMF 관리체제 때 환율이 급등하면서 덩어리 철광석을 이용한 코렉스 공법은 연간 5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는 포스코의 천덕꾸러기로 돌변했다.
포스코 경영진은 코렉스 공법을 대체할 수 있는 신기술을 본격 개발하기 시작했다. 결국 쇳가루를 뜻하는 영어 파인(Fine)과 반응 및 공정을 가리키는 리액션(Reaction)이 합쳐진 신조어 파이넥스(FINEX) 공법을 개발했다.
파이넥스 공법에는 한국형 리더십의 8가지 덕목이 골고루 녹아있다. 포스코는 신공법 추진에 앞서 전사적으로 인재를 뽑았다. 지원자 중 개별 면담을 통해 경영진이 직접 나서기도 하고, 팀 구성에서 불필요한 중간 조직을 없애 소통 체계를 강화했다. 중간 조직은 조직의 위 아래를 연결하는 역할도 하지만, 의사결정의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8개 덕목 중 ‘수평조화’를 잘 구현한 사례다.
조직 문화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과거 포스코는 실수와 실패를 잘 용납하지 않는 기업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실패하면 모두 우향우 해서 영일만에 빠져 죽는다”는 ‘우향우 정신’이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포스코 경영진은 파이넥스 공법을 개발하는 일에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고, 몇 번의 실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다려주고 용납했다. 유무형의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연구소와 현장이 하나가 되어 공법 개발을 위한 열린 토론도 계속했다. ‘성취열정’과 ‘미래비전’을 강조한 셈이다.
지도자의 협상 및 설득 능력, 즉 ‘솔선수범’의 덕목도 돋보인다. 포스코의 한 임원은 파이넥스 공법을 개발할 당시 선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오스트리아의 VAI와 협상을 통해 그들의 공동 참여를 이끌어냈다. 또한 포스코 회장과의 담판을 통해 “1000억 원만 지원해주시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공법을 완성시키겠습니다”라며 최고 경영진의 물적 투자도 이끌어냈다.
‘성취열정’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파이넥스 개발에 참여한 팀의 구술 언어 빈도를 분석한 결과, 팀원들은 목표(80회), 성공(74회), 미래(49회), 도전(48회)과 같은 단어를 상당히 자주 사용했다. 파이넥스란 신기술에 자신과 회사의 미래를 걸고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강한 열정을 보여주는 사례다. 고도의 목표 성취 욕구를 지닌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에 파이넥스 개발이 가능했던 셈이다.
이 기사의 제작에는 미래전략연구소 인턴 연구원 진장훈(25·한국외국어대 글로벌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