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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Management

과공비례:진정성이 예의다

정현천 | 101호 (2012년 3월 Issue 2)








 
시내의 제법 유명한 백화점 주차장에 차를 몰고 들어가려면 매번 마음이 불편한 상황을 겪게 된다. 빛깔 고운 옷을 입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젊다 못해 어려 보이는 여성이 매연과 차량소음으로 뒤범벅인데다 바깥의 덥거나 추운 공기에 그대로 노출된 주차장 입구에서 티켓을 뽑아주며 허리를 90도로 굽혔다가 마치 고전무용을 하는 듯한 손동작으로 안쪽을 가리키며 통신회사의 콜센터 직원과 비슷한 목소리와 어투로 인사를 한다. 그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저 안내사원이 차를 몰고 들어오는 고객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스스로 고객을 위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백화점이 교육을 잘 시켜서 그런 마음자세로 일을 시작하더라도 저렇게 힘든 환경에서 얼마 동안이나 그런 생각이 유지될 수 있을까? 고객 가운데 안내사원의 인사를 받고 나서 쇼핑하기에 더 즐겁고 편안한 마음을 갖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백화점의 주차장 입구가 좁고 붐비며 티켓을 뽑는 잠깐의 시간도 전체적인 운영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누군가 대신 티켓을 뽑아주고 헤매지 않도록 방향을 잘 안내해 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은 한다. 그렇지만 입구에서부터 주차 안내사원에게 안쓰러움을 느끼면서 들어가기 때문에 쇼핑을 하는 동안에도 내내 편안한 마음이 되기가 힘들다. 물론 사람마다 대접받기를 원하는 정도가 다를 것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특히 과시욕을 갖고 타인들에게 상대적인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고객들도 있을 것이다. 고객들에게 어떻게든 만족감을 제공해서 한번이라도 더 방문하게 만들고 하나의 물건이라도 더 사게 만드는 것이 백화점 입장에서 볼 때 이익이기도 하다.
 
반면 또 다른 백화점에 가면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물론 그곳에도 주차 안내사원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계절에 따라 적당한 티셔츠나 파카, 야구모자와 운동화 차림에 턱 밑으로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들은 인사를 할 때 허리를 너무 깊이 굽히지 않고, 경쾌하게 뛰어다니고, 손님과 얘기를 하지 않을 때는 마스크를 코 위로 덮어써서 매연과 탁한 공기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다. 그들의 말투와 동작은 주차장에 잘 진입해서 적당한 주차공간을 빨리 찾도록 도와주는 데 더도 덜도 없이 적당하다. 그래서 편안하다. 마치 동네의 예의 바르고 싹싹한 청년들을 보는 것 같다. 궂은 일을 하고 있지만 자기들이 하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잘 아는 전문가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공비례와 불편함
 
과공비례(過恭非禮)라는 말이 있다. 지나치게 공손하면 오히려 예의에 어긋난다는 말이다. 옛날에 겸손하기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 저녁에 자기 집으로 손님들을 모셔서 술자리를 벌였다. 넓은 마당 가운데 있는 정자에 둘러앉아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어가는데 마침 커다란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달을 보며 한 손님이 “오늘은 달이 유난히 밝고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주인이 두 손을 비비고 굽실거리며 “아이구 뭘요. 작고 변변치 못한 달이라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물론 우스갯소리겠지만 이런 정도의 공손한 대접을 받으면 사람들은 흡족해지기보다는 도리어 마음이 불편해질 것이다.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높여서 기쁘게 해주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바라는 것이나 무슨 의도가 있지나 않을까 생각하게 되고 혹시 상황이 변하고 처지가 바뀌어도 같은 태도로 대해줄까 의심을 할 수도 있다.
 
필자의 상사였던 분 중 지금까지 성공적인 최고경영자로 오래 일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 그분은 1970년대 초반에 경리직원으로 회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신입사원이던 어느 날 회사의 상사, 선배와 함께 은행사람들께 저녁식사를 대접하게 됐다고 한다. 나름대로 의욕이 충만하고 은행과의 관계가 경리부 업무에서 아주 중요함을 알고 있었던 그분은 저녁식사 자리에서 은행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열심히 애를 썼다. 최대한 공손하게 예의를 갖추면서도 시중의 소문과 우스갯소리를 총동원해서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하고 술잔도 열심히 돌렸다. 그런데 같이 갔던 선배 한 사람이 그분을 조용히 옆 방으로 부르더니 다짜고짜 한 대 쥐어박으며 일갈하기를 “갑()일 때 거만하게 굴지 말고 을()일 때 비굴해지지 말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당시의 사정을 보면 회사의 영업상황이 좋아서 자금이 풍부할 때는 은행사람들이 회사의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애를 썼고 회사의 영업상황이 좋지 않거나 큰 투자를 앞두고 있을 때는 회사에서 은행의 자금을 빌려 쓰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런데 그 회사는 업종의 특성상 유별나게도 4∼5년을 주기로 자금이 넘쳐나는 시기와 자금이 부족해서 고전하는 시기가 반복됐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은행과의 관계가 일관된 원칙이 없이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 조변모개(朝變暮改)하게 되면 그 당시에는 어떨지 몰라도 몇 년 후의 후임자나 후배들에게 아주 일하기 어려운 상황을 물려주게 된다는 것이다. 선배로부터 한 대 얻어맞으면서 배운 교훈을 그분은 회사생활의 금과옥조로 삼고 실천했다고 한다. 그 일화를 들려주면서 어떤 상대방과 일을 할 때라도 서로의 입장과 고충을 이해하면서도 원칙을 잃지 않고 각자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돕고 함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진득하게 일해야 한다는 충고를 해줬다. 그분은 당시에는 일반 임원이었지만 곧 최고경영자의 자리에까지 오르더니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강의목눌과 진정성
 
최근 많은 기업들이 Work Smart 또는 조직활성화라는 기치 아래 업무를 간소화하고 도전적이고 창조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더 효율적이고 더욱 높은 성과를 내면서도 구성원들의 개인 또는 가정생활을 존중하고 또 각자의 발전과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강한 조직을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에 당연시됐던 일 가운데 불필요하거나 현재의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을 없애고 새로운 환경에 맞는 방법을 찾아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 규칙에는 건설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하고 문제점과 중요한 이슈는 계층과 조직 간에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돼야 하며 적절한 범위의 위험감수는 장려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문화 가운데 그것을 어렵게 만드는 걸림돌이 있다. 바로 지나친 서열의식과 윗사람에게 과공(過恭)하는 분위기다.
 
조금 과장된 상황을 설정해서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회의실에 들어오면 앉을 자리가 정확하게 서열에 따라 정해져 있고 회의를 주재하는 상사는 항상 제일 늦게 회의실에 입장한다. 그러면 미리 와서 얘기를 나누고 있던 참석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목례를 하고 상사가 앉기까지 기다린다. 보고를 하는 사람은 정자세로 서거나 약간 윗몸을 굽힌 채 두 손을 맞잡고 또박또박 보고를 하고 대부분의 참석자는 열심히 메모를 한다. 보고를 받은 상사가 한마디 평가를 하거나 질문을 할 때까지 참석자들은 거의 발언을 하지 않으며 상사의 발언에 대해서는 또 열심히 메모를 하고 수시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런 분위기에서라면 기존의 어떤 규칙이 도전 받을 수 있고 어떤 이슈가 거리낌없이 토론될 수 있을까? 어떤 위험을 과연 어느 누가 감수할 수 있을까?
 
글로벌 경쟁시대인 오늘날 기업들은 매일같이 새로운 이슈가 생기고 새로운 환경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고객들의 니즈도 다양해지고 거기에 대응하는 기술변화도 빠르며 과거에는 거의 염두에 두지 않았던 CSR 활동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고 국제통상과 관련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일례로 적절한 사람을 뽑아 일을 하게 하고 봉급만 제대로 주면 되던 인력관리만 생각해 보아도 지금은 고정급과 성과급, 4대 보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 인구구성의 변화에 따른 채용과 퇴직관리의 변화, 국제적 문화차이의 고려 등 그 내용이 복잡하기 이를 수 없게끔 바뀌었다. 이렇게 다양한 문제들은 다양한 전문가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당면한 이슈와 관련한 전문가의 정보와 식견은 조직 내에서 빨리 전달되고 흡수돼야 하며 계속 업데이트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계급이나 위치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할에 따라 평가되고 보상을 받아야 한다. 사실상 기업 안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이제 전문가로서 역할을 하고 전문가로서 대접을 받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들이 자기의 담당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키우고 역할을 하는 것보다, 자기의 계급과 위치를 인식하고 적절한 처신을 하고 의견을 내기보다 가급적 의견을 내지 않고 조용히 지냄으로써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 기업이 과연 성과를 내고 생존을 이어갈 수 있을까?
 
물론 예의를 지킨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고 어디에서나 예의 바른 사람은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그러나 현대적인 의미의 예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평등하다는 전제하에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거나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 들거나 어떤 경우에도 나는 당신에게 맞서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행위는 예의가 아니라 과공(過恭)이고 비굴이다.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것이다. 즉,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말과 안색을 교묘하게 꾸미고 약삭빠르게 처신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일의 본질과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지 않기 때문에 보기에는 그럴싸할지 몰라도 입장이 바뀌거나 상황이 변하면 금새 몰라라 하거나 거만해지기 일쑤다. 이에 반대되는 말이 강의목눌(剛毅木訥)이다. 강()은 의지가 강해 물욕에 휘둘리지 않는 일을 뜻하며, 의()는 기가 강하고 과단성이 있는 모습이고, 목()은 나무로 질박한 것을, 눌()은 말수가 적음을 말한다. <논어> ‘子路편에서 공자는 “강의목눌(剛毅木訥)이 근인(近仁)”이라고 했다. 강하고 굳세고 질박하고 어눌함이 그 자체로 이라 할 수는 없지만 가깝다고 한 것이다.
 
그런 것이 요즘 말로 하면 바로 진정성이다. 진정성은 우직함 속에 있는데 우직하다는 것은 일희일비하지 않고 상대방의 생각과 느낌, 필요와 만족에 대해 자기 소견으로 함부로 넘겨짚지 않고 상대방의 말을 잘 새겨들으면서도 묵묵하고 꿋꿋하게 자기의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백화점과 고객의 관계에서나, 경리직원과 은행의 관계에서나, 회사 내의 다양한 위치와 역할에 있어서나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해 비굴하거나 거만하지 않고 대등하게 중요한 존재이지만 서로의 니즈를 채워주는 전문가 또는 고객이 되며, 그것에 필요한 최선의 책무를 다하고 합당한 존중을 당당하게 받는 태도가 필요하다. 조직에서도 위계질서로 일을 하던 시대가 지났으며 리더들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자기존중과 자부심, 당당한 이견과 다양성을 표출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그런 구성원들로 가득한 조직이라야 강한 조직, 높은 성과를 내는 조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우직함과 진정성이 곳곳에 가득할 때 우리 사회가 좀 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정현천  SK에너지 상무  [email protected]
 
필자는 서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1986년 SK그룹에 입사해 회계, 국제금융, 투자가 관리, 구조조정, 해외사업, 전략수립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는 SK에너지 상무로 근무 중이다. 경영학, 경제학, 심리학, 생물학, 인류학, 역사 등 여러 분야의 책을 가리지 않고 읽는 다독가(多讀家)이며 변화 추진을 위한 강사로도 활약하고 있다. 최근 포용을 주제로 한 <나는 왜 사라지고 있을까> 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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