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관리는 경영자에게 매우 중요하다. 경영자 업무는 점점 늘어나게 마련이다. 따라서 경영자에게 가장 주요한 자원은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경영자의 관심(attention)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전략적 선택이 좌우된다는 ‘관심기반이론(attention-based view)’을 주장하는 경영학자도 많다. 여기서 관심이란 경영자의 제한된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시간 관리와 관련, 많은 자기계발 전문가들은 긴급성과 중요도를 평가해 업무를 순차적으로 처리하는 게 좋다고 강조한다. 중요도와 긴급성을 양 축으로 놓고 매트릭스를 만들어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법론도 꽤 유행했다. 특히 자기계발 전문가들은 업무 계획표를 사전에 완벽하게 작성하라고 충고한다. 자기계발 분야에서 유명세를 탄 스티븐 코비나 브라이언 트레이시 등이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학계에서는 이런 시간 관리를 ‘단순시간성(monochronicity)’이란 용어로 표현한다. 이는 확실한 계획에 따라 한 번에 하나씩 업무를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인 조언에 반하는 연구 결과가 최근 학계에 발표됐다. 영국 시티대학 반젤리스 소우이타리스 교수 등은 최고경영진이 여러 업무를 동시에 진행하는 스타일일수록 첨단 기술기업의 성과가 높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저명 학술지인 <전략경영저널(Strategic Management Journal)> 최신호(Vol.31, 652∼678)에 실렸다.
여러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거나, 불쑥 끼어들어오는 일을 곧바로 수행하는 것을 학계에서는 ‘복합시간성(polychronicity)’이라고 부른다. 런던 증시에 상장된 첨단 기술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경영진의 복합시간성은 기업의 의사결정 속도를 높였고, 성과 향상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반면 경영진의 단순시간성은 기업 성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중요한 일부터 순차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전통적 시관관리 이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이런 연구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첨단 기술기업이 접한 환경과 관련이 있다. 첨단 기술기업들은 극도의 불확실성 속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이 때 미리 중요하다고 판단해놓은 업무보다는 불쑥 끼어들어오는 비공식적 정보나 지식들이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회의 시간과 의제를 미리 정해놓으면 “경쟁사 간부가 최근 누구와 골프를 쳤다”는 식의 비공식적인 정보가 유통되기 힘들다. 하지만 복합시간성을 가진 경영진은 갑자기 끼어들어 오는 보고나 업무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 없다. 이처럼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다양한 정보와 지식들은 의사결정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과거 20세기 대량 생산체제에서는 단순시간성이 효율성을 높였다. 사전에 철저하게 계획하고 경중을 따져 업무에 임해야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외부 환경이 급변하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유연성이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부상했다. 따라서 사전 계획보다는 즉자적인 대응을 중시하는 복합시간성이 오히려 첨단 기술기업의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외부 환경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안정적인 기업에서 일하는 경영자라면 사전 계획을 중시하고 중요한 순서대로 하나씩 업무를 처리하는 전통 방식을 사용하는 게 좋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거의 모든 산업 영역에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으며 불확실성도 높아지고 있다.스티븐 코비나 브라이언 트레이시 같은 자기계발 전문가들의 조언만 고려할 게 아니라 소우이타리스 교수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