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y of Pitfalls
편집자주우리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이를 함정(pitfall)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역설(paradox)이라 하기도 합니다. 소득과 행복이 비례하지 않고 소득과 환경수준이 비례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 주변의 이러한 대표적인 함정들을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가 소개합니다.
우리 주위에 공짜가 늘고 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공짜투성이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러 가면 입구에서 지하철 신문을 골라서 공짜로 가져갈 수 있고 인터넷에서 정말로 좋은 정보를 공짜로 얻을 수 있다. 통신사의 보조금 덕분에 공짜폰도 즐비하다. 국립공원 입장료 제도가 폐지되면서 북한산에 올라갈 때 국립공원도 공짜로 입장할 수 있다. 우리는 ‘공짜 점심은 없다’, 그리고 러시아 속담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놓여 있다’에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과거에는 그리 많지 않았던 공짜가 갈수록 크게 늘어나고 있다.
우선, 국립공원 무료 입장은 정부가 대중 복지 차원에서 공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경우다. 둘째, 공짜폰처럼 기업들의 과도한 마케팅으로 공짜가 생기고 있다. 물론 기업은 비싼 통화료를 통해 소비자가 부담을 지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공짜는 아니다. 셋째, 서로 광고를 하려는 기업이 늘면서 공짜 미디어가 생기고 있다. 지하철 신문이 그렇고 검색 기능이 뛰어난 구글, 네이버가 해당된다. 넷째, 디지털 경제가 확산되면서 디지털 콘텐츠를 추가 생산할 때 드는 비용인 한계생산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까워지면서 이러한 디지털 콘텐츠가 무료로 유통되고 있다. 더구나 불법 유통이 공짜 범람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
공짜는 영어로 프리(free)라고 하는데 사실 프리는 자유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비용으로부터 자유롭기(free of charge) 때문에 공짜인 것이다. 호의로 혹은 무상으로 의미를 지닌 그라티스(gratis)도 공짜이지만 공짜점심을 free lunch라고 하듯이 free가 훨씬 더 많이 사용된다.
기업이 공짜로 상품을 제공하려는 이유
기업은 왜 공짜로 상품을 많이 제공하려고 하는 것일까?
첫째, 기업은 공짜를 입소문(viral) 수단으로 삼고 있다. 화장품 회사가 화장품 샘플을 뿌리는 이유는 사용자가 샘플을 사용해보고 용량이 많은 진짜 화장품을 사도록 유도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 경영컨설턴트 톰 피터스는 로버트 H. 워터맨과 함께 쓴 저작인 <초우량기업의 조건>이 1982년 출간되기 전에 가제본을 1만5000부 만들어 자신의 책에 관심을 가질 만한 사람에게 무료로 배포했다. 톰 피터스의 이런 행동에 대해 출판사는 기겁을 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그 이후 그는 세계적인 경영컨설턴트로 자리잡았다.
둘째, 기업은 공짜를 중독(addiction) 수단으로 삼고 있다. 케이블 TV가 본격 유료 서비스를 시행하기 전에 많은 영화를 공짜로 상당 기간 제공한 바 있는데 이는 시청자가 케이블 TV 영화의 편리성을 느끼도록 해서 영화관에서보다 훨씬 적은 돈을 내고 케이블TV에서 영화를 보도록 유도한 것이다. 어떤 소프트웨어의 초기 버전을 공짜로 준 뒤 성능이 더 좋은 버전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유료로 구입하도록 하는 것도 이에 해당된다. 이를 프리(free)와 프리미엄(premium)의 합성어인 프리미엄(freemium) 전략 혹은 버저닝(versioning) 전략이라고 한다.
셋째, 기업은 공짜를 교차판매(cross-selling) 수단으로 삼고 있다. 기업은 한 상품을 무료로 제공하지만 소비자가 그 상품을 계속 사용하려면 그 기업의 다른 상품을 유료로 계속 사도록 하는 것이다. 생수를 온수나 냉수로 만드는 생수대는 공짜로 주지만 생수를 정기적으로 배달해주면서 수입을 올린다. 요즘에는 에스프레소커피 머신을 사무실에 공짜로 주면서 커피 원두를 정기적으로 배달해 판매한다. 싸이는 ‘강남 스타일’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무료로 배포하지만 아이튠스에서 음원을 판매하고 대규모 콘서트를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완전히 공짜는 아니지만 복사기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대신 카트리지를 비싸게 판매하는 것이나 면도기를 저렴하게 판매하고 면도날을 비싸게 판매하는 것도 같은 전략이다.
넷째, 기업, 특히 미디어 기업은 공짜를 광고수입(advertisement) 수단으로 삼고 있다. 콘텐츠가 공짜면 사람들이 많이 몰려 들고 그럴수록 콘텐츠 사이에 적절히 광고해주기를 원하는 기업 덕분에 광고 수입을 올린다. 다양한 칼럼니스트들이 기고하는 블로그 신문인 <허핑턴포스트(The Huffington Post)>는 순방문자 기준으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를 이미 제쳤는데 광고와 이벤트 스폰서십 수입으로 창간 6년 만에 흑자를 기록했다.
다섯째, 기업은 공짜를 기부(giving) 수단으로 삼고 있다. 기업이 소비자나 이해관계자로부터 기업 이미지를 올리기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의 일환으로 여러 상품을 기부하고 있다. 홍수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식품기업이 자사 식품을 이재민에게 무상 제공하는 것이 이런 경우다.
여섯째, 기업은 공짜를 속임(gimmick) 수단으로 삼고 있다. 유통업체는 ‘하나를 사면 하나가 무료’ 캠페인을 많이 하는데 사실 이 경우는 ‘두 개를 구입하면 50% 할인’이라는 말과 똑같다. 이러한 오퍼에 익숙한 소비자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지만 처음 겪은 소비자는 지갑을 더 쉽게 연다. 상품을 살 때 받는 증정품, 무료 배송도 사실 그 비용이 상품 가격에 포함돼 있어 공짜가 아니다는 것을 잘 알지만 소비자는 아무래도 기업의 이런 오퍼에 기본적으로 약하다.
공짜의 문제점
이처럼 기업은 공짜로 상품을 제공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고 실제 비즈니스 모델들이 성공적인 것으로 입증됐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가격이 아무리 낮더라도 가격을 지불하는 것과 공짜로 상품을 취하는 것 간에는 비용적, 심리적 부담감이 크게 달라지므로 공짜에 열광한다. 돈을 내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려면 고민을 해야 하고 유료면 현금이든, 신용카드 결제든 간에 결제 과정을 거쳐야 하는 불편이 있다. 그런데 공짜는 이러한 거래비용을 없애주기 때문에 소비자의 반응은 폭발적으로 늘게 된다.
어떤 기업이 다른 기업을 1원에 인수하거나 CEO가 월급을 1원만 받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이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지만 형식적인 계약을 문서상에 남겨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자가 공짜로 무엇을 받게 되면 아예 흔적이 남지 않아 더욱 좋아한다.
그러나 이렇게 공짜가 남발되면 여러 문제점이 나타난다.
우선, 자원 남용 문제가 발생한다. 구글 메일이 저장 용량을 제한 없이 제공하면 구글 메일 사용자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서 좋지만 구글은 저장 용량을 무한대로 늘려야 한다. 물론 구글은 서버 공간을 계속 넓히기 위해 시스템 투자를 늘리고 전기를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 사용자 또한 종전보다 메일을 훨씬 많이 사용하므로 사무실과 집에서 시간 소모와 전기 사용량이 크게 늘고 통신회사는 통신 회선을 늘리기 위해 투자를 늘려야 한다. 공짜 구글 메일은 여러 이해 관계자의 공간, 시간, 전력, 투자 등 여러 측면에서 자원을 과다 사용케 하는 것이다. 이처럼 공짜로 인해 자원이 남용되면 온실가스를 많이 방출해 기후변화 현상을 심화시킨다. 이른바 ‘공유지의 비극’ 현상이 발생한다.
둘째, 독과점 문제가 발생한다. 예전에는 브랜드 파워가 강한 대기업 제품은 더 비싸고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제품은 싼 형태로 기업 간의 균형이 맞춰졌다. 하지만 이제는 대기업이 여러 형태로 공짜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져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초기에 공짜로 제공하려면 자본이 있어야 하고 교차판매를 하려면 기업 내 다른 상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미디어 기업은 많은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어야 광고주들을 많이 유치할 수 있다. 중소기업에는 이런 일을 감당할 여력이 부족하다.
셋째, 기업의 비용을 올려 결국에는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킨다. 주위에서 공짜를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공짜 문화에 익숙한 세대를 공짜 세대라고 부른다. 이들은 기업이 무료로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나비처럼 쏙쏙 골라 가져간다. 한마디로 무임승차(free ride)를 하는 것이다. 기업이 무료 전략을 구사하면 해당 기업의 비용은 올라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돈을 내고 구입하는 고객이 부담하는 가격을 올리게 된다.
공짜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그러면 기업이 이런 공짜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우선, 자사 상품의 품질이 좋지 않으면 공짜 마케팅을 삼가라. 나쁜 품질을 체험한 고객들의 입소문 때문에 오히려 평판이 나빠져 매출이 격감할 수 있다.
둘째, 공짜로 주려면 나중에 주지 말고 미리 줘라. 어떤 제품을 처음에 유료로 판매하다가 나중에 공짜로 제공하면 소비자로부터 큰 반발을 사게 된다. 스마트폰을 처음에 비싸게 팔다가 나중에 공짜폰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하지만 책 출간일이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책을 무료로 나눠주다가 정식 책 발간이 되면 유료 판매하는 것은 좋은 공짜 전략이다. 파울로 코엘료 책을 출간키로 한 하퍼콜린스 출판사는 책이 발간되기 전 한 달 동안 자사 웹사이트를 통해 디지털(pdf) 버전으로 인쇄는 할 수 없는 책을 무료로 제공했다. 이러한 사전 공짜 마케팅 덕분에 코엘료 책이 실제로 나왔을 때 판매 부수는 크게 늘었다. 독자들이 책의 내용을 일부 읽으면서 그 책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셋째, 공짜를 주려면 보완재를 공짜로 함께 주는 것이 좋다. 어떤 미국 영화를 보면 술집에서 물을 달라고 하는 고객에게 바에 있는 직원이 호스로 물을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왜냐하면 맥주를 비롯한 술과 물은 서로 대체재인데 고객이 무식하게 물을 공짜로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요즘 대부분의 맥줏집은 김이나 땅콩 같은 간단한 안주를 공짜로 제공하는데 이는 맥주와 안주가 서로 보완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짜로 무엇을 주는 것을 원천적으로 싫어하는 기업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기업은 공짜전략이 섞인 freemium 전략이 아니라 진정한 premium 전략을 제대로 구사하면 된다. 누구나 인정하는 탁월한 품질과 브랜드를 가진 제품이라면 소비자가 기꺼이 돈을 내고 제품을 구매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공짜로 어떤 상품을 주다가 그 공짜 상품이 아예 진짜 주력 상품으로 돼버린 경우도 있다. 시카고에 본사를 둔 리글리(Wrigley) 회사는 베이킹파우더 한 통을 사는 고객에게 무료 판촉물로 츄잉껌을 두 통 끼워주는 마케팅을 전개했다. 그런데 껌 인기가 크게 솟자 베이킹파우더 사업을 접고 아예 껌 사업으로 전환해 지금에 이르렀다.
하지만 공짜의 사회적, 환경적 폐해를 절감하는 기업이라면 공짜 마케팅을 자제해야 한다. 공짜가 아니라 아주 낮은 가격을 책정하면 소비자의 행동은 놀랍게도 크게 절제된다. 회사의 진정성을 잘 설명하면 이에 공감하는 고객으로부터 더욱 신뢰를 쌓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른바 디마케팅(demarketing) 전략이다.
진짜는 공짜를 두려워해야 한다
그동안 진짜는 가짜를 두려워했다. 진짜 럭셔리는 가짜, 짜가, 짝퉁, 복제품을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프랑스의 럭셔리 기업연합체인 코미테 콜베르(Comite Colbert)가 1954년에 결성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짝퉁을 적발해 퇴출시키는 것이 그중 큰 이유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짝퉁이 있어야 진짜 럭셔리가 될 자격이 있다. 그러나 이제 진짜는 가짜가 아니라 파괴력이 더욱 큰 공짜를 두려워해야 한다.
수학의 역사를 들여다 보면 인도에서 0이 발견된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경제에서 공짜마케팅 전략을 발견해 구사하는 것 또한 대단한 혁신이다. 이제 팽배한 공짜경제는 우리가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 됐지만 문제점 또한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이 공짜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생존, 성공하려면 어떤 방법을 구사해야 하는지 더욱 고민을 해야 한다. 우리가 공짜경제학(freeconomics)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 [email protected]
필자는 마케팅 컨설팅 회사인 리드앤리더 대표이자 비즈니스 사례 사이트인 이마스(emars.co.kr)의 대표 운영자다. 서울대와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한국은행과 SK에너지에서 근무했고 건국대 겸임 교수를 지냈다. <경제법칙 101> 세계 100대 기업> <하인리히 법칙> <커피로 알아보는 마케팅 베이직> 등의 저서와 <깨진 유리창 법칙>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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